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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하일[冬日夏日], 동임[洞任], 동임관[同任官], 동자[童子], 동자[瞳子], 동자[董子]


동일하일[冬日夏日]  사랑스런 해는 곧 겨울날의 다스운 태양을 말하고, 두려운 해는 곧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을 이른다. 춘추 시대 노국(潞國)의 대부(大夫) 풍서(酆舒)가 진(晉)나라 가계(賈季)에게 묻기를 “진(晉)의 대부 조순(趙盾)과 조최(趙衰) 중에 누가 더 어진가?”라고 하자, 가계가 말하기를 “조최는 겨울날의 태양이요,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이다.[趙衰冬日之日也 趙盾夏日之日也]”라고 하였는데, 그 주석에 “겨울날의 태양은 사랑스럽고, 여름날의 태양은 두려운 것이다.[冬日可愛 夏日可畏]”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정사(政事)의 관맹(寬猛)에 비유한다. <春秋左氏傳 文公7年>

동임[洞任]  한 동네의 일을 맡아보던 사람으로, 이임(里任)과 같다.

동임관[同任官]  같은 직임의 벼슬아치를 이른다.

동자[童子]  나이가 어린 남자아이. 승려(僧侶)가 될 뜻을 가지고 절에 와서 머리를 깎고 불도(佛道)를 배우면서도 아직 출가(出家)하지 않은 사내아이. 동남(童男). 동관(童丱). 동수(童豎). 수초(垂髫). 보살(菩薩)의 이칭(異稱). 은자(隱者)의 어린 제자.

동자[瞳子]  눈동자. 안구의 한가운데에 홍채로 둘러싸여 있는 동그랗고 검게 보이는 부분.

동자[董子]  동자(董子)는 전한(前漢)의 대유(大儒)인 동중서(董仲舒)의 존칭이다. 경제(景帝) 때 박사가 되었으며 무제(武帝) 때에는 강도 상(江都相)과 교서 상(膠西相)을 역임하였다. 현량대책(賢良對策)을 올려 유학을 존중하고 백가 사상(百家思想)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여 경학의 지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춘추번로(春秋繁露) 등이 있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동중서가 현량 대책문(賢良對策文)을 올렸는데, 그 가운데에 “그러므로 임금이 된 자는 자기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로잡음으로써 백관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로잡음으로써 만백성을 바르게 하고, 만백성을 바로잡음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한다. 그리하여 사방이 바르게 되면, 멀고 가까운 곳 모두가 감히 한결같이 바른 길로 나오지 않음이 없게 되어 사특한 기운이 그 사이에 범접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故爲人君者 正心以正朝廷 正朝廷以正百官 正百官以正萬民 正萬民以正四方 四方正 遠近莫敢不壹於正 而亡有邪氣奸其間者]”라는 내용이 나온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자[董子]  동중서(董仲舒)로, 서한의 사상가, 금문경학(今文經學)의 대가이다. 춘추(春秋)의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고 공양전(公羊傳)을 정밀하게 연구했다. 경제 때 박사가 되었고 무제 때 현량문학지사(賢良文學之士)가 되어 강도왕(江都王)의 재상이 되었다. 후에 교서왕(膠西王)의 재상이 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병을 이유로 관직을 그만두고 집에서 수학하며 저술하였다. 조정에 큰 일이 있으면 늘 사람을 보내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지금 전하는 그의 저술로는 춘추번로(春秋繁露)가 있다.

동자[董子]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강도상(江都相)을 지낸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무제가 즉위하여서 현량(賢良)과 문학(文學)의 선비를 많이 등용하였는데, 동중서는 현량으로 뽑혔다. 동중서는 하늘과 사람은 서로 감응한다는 요지로 대책(對策)을 올리면서 육예(六藝)의 과(科)와 공자(孔子)의 학술을 배우지 않은 자는 등용하지 말라고 건의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이 대책을 채택함으로써 유교가 중국의 정통 학문으로 되었다. 동중서는 정승을 지낸 뒤 벼슬을 그만두고 저술을 하다가 생을 마쳤는데, 특히 춘추(春秋)에 밝아서 춘추번로(春秋繁露)를 지었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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