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거[童子擧] 소년을 대상으로 하여 치룬 과거(科擧)이다. 당(唐)나라에서는 10세 이하, 송(宋)나라에서는 15세 이하의 동자(童子)에게 경서(經書)를 시험하였다.
동자경장[董子更張] 동자(董子)는 동중서(董仲舒)를 가리킨다. 동중서는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비유하자면 금슬이 조화가 되지 않음이 심하면 반드시 줄을 풀어 다시 조여야만 연주할 수 있고, 정치가 행해지지 않음이 심하면 반드시 변화시켜 교화해야만 다스릴 수 있다.[竊譬之琴瑟不調 甚者 必解而更張之 乃可鼓也 爲政而不行 甚者 必變而更化之 乃可理也]”라고 하였다. <前漢書 卷56 董仲舒傳> <資治通鑑 卷17 漢紀九 世宗孝武皇帝>
동자공리[董子功利] 동자(董子)는 전한(前漢) 동중서(董仲舒)의 존칭이다.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에 “그 의(義)만 바르게 하고 이(利)는 꾀하지 말 것이요, 그 도(道)만 밝히고 공(功)은 계교하지 말 것이다.[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라는 그의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서 주희가 “동중서가 수립한 것이 매우 높으니, 후세 사람들이 옛사람보다 못한 까닭은 도의와 공리의 관문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仲舒所立甚高 後世所以不如古人者 以道義功利關不透耳]”라고 평한 말이 근사록(近思錄) 권14 관성현(觀聖賢)에 나온다.
동자과[童子科] 당송(唐宋) 시대에 어린 소년에게 보이던 과거 시험으로 당대(唐代)에는 10세 이하, 송대(宋代)에는 15세 이하로 정하였다. 당대(唐代)에 10세 이하 동자로 경서에 능통한 자에게 실시하되, 경서를 암송시켜 매권(每卷) 전체를 조금도 결함 없이[十分] 통하는 자는 관직에 참여시키고, 다음 칠분(七分)쯤 통하는 자는 출신(出身)에 참여시킨다.
동자군[童子軍] 기우제를 지낼 때에 비가 내리게 해 달라는 내용의 축사(祝辭)를 합송(合誦)하는 아이들이다. 기우동자군(祈雨童子軍).
동자기우제[童子祈雨祭] 석척 기우제(蜥蜴祈雨祭)이다. 비를 관장하는 용과 비슷한 동물인 도마뱀[蜥蜴] 10마리를 독에 넣은 후, 푸른 옷[靑衣]을 입고 손발을 푸르게 염색한 동자 여러 명이 물에 적신 버들가지로 두드리면서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동자 기우제’라고도 한다.
동자무시[童子無緦] 동자(童子)는 시마복을 입지 않음. 동자는 워낙 어려서 먼 친속에게까지 은의(恩義)가 미치지 않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에, 먼 친속을 위한 삼월 시마복은 입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동자는 갖옷을 입지 않고, 솜옷을 입지 않고, 신발 머리에 장식하는 끈을 매지 않으며, 시마복을 입지 않고, 상가(喪家)의 일을 거들되 마질(麻絰)을 착용하지 않는다.[童子不裘 不帛 不屨絇 無緦服 聽事不麻]”라는 말이 나온다.
동자무질[童子無絰] 동자는 수질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는 김장생 등이 주장한 것이다.
동자문[童子問] 송 나라 보광(輔廣)의 시동자문(詩童子問) 10권을 말한다.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다.
동자물상[童子勿殤] 왕기(汪踦)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동자(童子)로서 제(齊)나라에 맞서 싸우다가 죽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성인(成人)의 예로 장사하고자 하여 공자에게 “그에게 상례(殤禮)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국난을 위하여 죽었으니, 상례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能執干戈以衛社稷, 雖欲勿殤也, 不亦可乎!]”고 답하였다. 상례는 미성년자의 죽음에 적용하는 상례(喪禮)이다. <禮記 檀弓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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