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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수빙연[童子愁氷硯], 동자옥배[董子玉杯], 동자왕기[童子汪踦], 동자유중[董子帷中]


동자서[董子書]  동자(董子)는 서한(西漢)의 철학가이자 경학가인 동중서(董仲舒)를 이른다. 서(書)는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열전(董仲舒列傳)에 보이는 그가 쓴 현량과(賢良科) 대책문(對策文)을 가리킨다.

동자수빙연[童子愁氷硯]  소식(蘇軾)의 시 화유경문설(和劉景文雪) 시에 “동자는 언 벼루 녹이기를 걱정하고, 미인은 언 술잔 녹이는 게 고통일세.[童子愁氷硯, 佳人苦膠杯.]”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34>

동자옥배[董子玉杯]  동자(董子)는 한(漢) 나라 동중서(董仲舒)를 이른다. 옥배(玉杯)는 동중서의 저서인 춘추번로(春秋繁露)의 편명인데, 그 내용은 춘추(春秋)의 대의(大義)를 서술한 것으로 특히 여기서는 노 문공(魯文公)이 상중(喪中)에 장가들었다는 것을 세밀히 비판하였다. <春秋繁露 卷1>

동자왕기[童子汪踦]  춘추 시대 국난(國難)에 나서서 싸우다가 죽은 노(魯)나라의 동자 왕기(汪踦)를 이른다.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 “노(魯)나라와 제(齊)나라가 낭(郎) 땅에서 싸울 적에 공숙 우인(公叔禺人)이 상장(喪杖)을 메고 성 안으로 들어와 쉬고 있는 자를 만나 말하기를 ‘국가에서 부역시킴이 비록 백성들을 병들게 하고 세금을 부담시킴이 비록 무거우나, 군자가 국가를 위하여 도모하지 못하고 사가 죽지 못한다면 옳지 않으니, 내가 이미 책망하는 말을 하였다.’라고 하고는, 그 이웃 마을의 동자(童子) 왕기(汪踦)와 함께 싸움터로 달려가서 싸우다가 모두 죽었다. 노나라 사람이 동자 왕기를 상례(殤禮)로 장례하지 않고자 해서 중니(공자)에게 물었는데, 중니께서 말씀하기를 ‘창과 방패를 잡고서 사직을 보호하였으니, 비록 상례로 장례하지 않으려 한다 할지라도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戰于郞, 公叔禺人遇負杖入保者息, 曰:‘使之雖病也, 任之雖重也, 君子不能爲謀也, 士弗能死也, 不可. 我則旣言矣.’ 與其隣重(童)汪踦往, 皆死焉. 魯人欲勿殤重汪踦, 問於仲尼. 仲尼曰:‘能執干戈以衛社稷, 雖欲勿殤也, 不亦可乎!’]”라고 하였다.

동자유중[董子帷中]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가 장막을 내리고 강송(講誦)하였으므로 제자들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으며, 정원과 채소밭이 있어도 3년 동안이나 방에서 나와 살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문에 매진했다는 고사가 있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동자이음[同字異音]  글자가 같으나 음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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