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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구[銅藏具], 동장무간[同藏無間], 동장묵수[銅章墨綬], 동장안문[東長安門]


동장구[銅藏具]  부처를 넣어 놓는 구리 그릇을 이른다.

동장군[董將軍]  동장군(董將軍)은 명나라 신종 때 장군 동일원(董一元)이다. 1597년(선조30) 일본군이 조선을 재침하였을 때 명나라의 구원병을 인솔하고 유정(劉綎) 등과 함께 조선에 들어왔다. 사천(四川)에서 일본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의 군을 공격하다가 적장의 꼬임에 빠져 패배했다.

동장대[東將臺]  서장대(西將臺)의 대칭으로, 화성 동쪽에 있는 장대이다.

동장록[動藏錄]  한국문집총간 속49집에 수록된 관복재유고(觀復齋遺稿) 권2 동장록발(動藏錄跋)> “내가 일찍이 전인들이 병사를 운용한 일을 모아 기록하여 다섯 편을 만들고, 동장록이라고 하였으니, 손무(孫武)가 ‘공격을 잘하는 자는 구천의 위에서 움직이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구지의 아래에 숨는다.’고 한 말에서 따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장무간[同藏無間]  남녀의 옷을 한 옷장에 넣고 따로 따로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늙어서 서로가 스스럼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부부의 거처에 간격이 없음. 남녀가 같은 방에서 거처함. 예기(禮記) 내칙(內則) 경문에 “부부의 예는 오직 70세가 되어야 함께 거처하여 분별이 없다. 그러므로 첩이 비록 늙었으나 나이가 아직 50이 되지 않았으면 반드시 5일의 모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장차 모실 자는 재계하고 옷을 빨아 입고 의복을 삼가며 머리를 빗고 머리싸개로 머리털을 싸매어 상투를 만든 다음 비녀를 꽂고 총(總)으로 머리털의 밑을 묶으며 모(髦)의 먼지를 털며 향주머니를 차고 신을 신고 신 끈을 매니, 비록 비첩이라도 의복과 음식을 반드시 비첩 중의 장자(長者)보다 뒤에 해야 한다. 정처(正妻)가 집에 있지 않거든 첩이 모시되 감히 정처의 저녁을 당하지 않는다.[夫婦之禮, 唯及七十同藏無間. 故妾雖老, 年未滿五十, 必與五日之御. 將御者, 齊漱澣, 愼衣服, 櫛縰笄總角, 拂髦, 衿纓, 綦屨. 雖婢妾, 衣服飮食必後長者. 妻不在, 妾御莫敢當夕.]”라고 하였다.

동장묵수[銅章墨綬]  지방관이 차는 관인(官印)과 인끈으로, 외직(外職)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때 2천 석(石) 이하의 관리가 몸에 차던 동인(銅印)과 묵수(墨綬)로, 보통 현령(縣令)을 뜻하는 말이다.

동장안문[東長安門]  천안문(天安間)과 대청문(大淸門) 사이에 있던 문으로 서장안문(西長安門)과 짝을 이룬다. 자금성(紫禁城)의 태화전(太和殿) 앞에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첫째는 태화문(太和門), 둘째는 오문(午門), 셋째는 단문(端門), 넷째는 천안문(天安門), 다섯째는 태청문(太淸門)이다. 천안문과 태청문 사이의 좌우에 서장안문(西長安門)과 동장안문(東長安門)이 있어 백관(百官)이 통행하는 문으로 사용하였다. 김창업(金昌業)의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에 “천안문과 태청문 사이의 좌우에는 서장안문과 동장안문 두 문이 있는데, 이곳은 백관이 통행하는 문이다.[天安太淸之間, 左右有西長安東長安兩門, 此百官通行之門也.]”라는 구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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