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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董氈], 동전서전[東銓西銓], 동절지탄[棟折之歎], 동절최붕[東折榱朋]


동전[董氈] 송사(宋史) 외국(外國) 토번(吐蕃)에 의하면 “동전(董氈)은 토번주(吐蕃主) 곡시라(唃廝囉)의 셋째아들이다. 곡시라(唃廝囉)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일찍 죽었다. 신종조(神宗朝)에서 동전(董氈)은 여러 차례 이헌(李憲)과 함께 군사를 모아 서하(西夏)를 쳤다. 서하(西夏)는 일찍이 동전(董氈)과 사적 교제가 있었기 때문에 후리(厚利)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였지만 동전(董氈)은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동전미긍부[董傳未肯附]  양웅(揚雄)이 당시의 세력 가진 정부(丁傅) 동현(董賢)에게 붙지 않고 태현경(太玄經)을 짓다가 뒤에 왕망(王莽)에 붙어서 미신부(美新賦)를 지었다.

동전벽옥화[東田碧玉花]  당(唐)나라 조당(曹唐)의 시에 “백마의 붉은 고삐 풀려서 동쪽 밭의 벽옥화(碧玉花)를 훔쳐 먹는 것도 모르누나.[不知白馬紅繮解 偸喫東田碧玉花]”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640 曹唐 穆王宴王母於九光流霞館>

동전서전[東銓西銓]  동전(東銓)은 동반(東班)인 문신을 전형하는 이조(吏曹)를 가리키고, 서전(西銓)은 서반(西班)인 무신을 전형하는 병조(兵曹)를 가리킨다.

동전장[東銓長]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이른다.

동전직[同殿直]  문소전의 수직(文昭殿守直)을 이른다.

동전퇴[銅錢堆]  촉 땅 사람들이 철전(鐵錢)을 사용하다가 무산을 지나면 동전(銅錢)을 쓰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에 연유하여 무산의 강 위에 있는 두 돌이 동전퇴(銅錢堆)와 철전퇴(鐵錢堆)로 명명되었다 한다.

동절지탄[棟折之歎]  위개(衛玠)가 죽고 나서 사곤(謝鯤)이 그를 위해 통곡했는데, 어떤 사람이 통곡하는 이유를 묻자 사곤이 “기둥과 대들보가 꺾였으니, 나도 모르게 애통할 뿐이네.[棟梁折矣, 不覺哀耳.]”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36 衛玠列傳>

동절최붕[東折榱朋]  마룻대가 부러지면 서까래가 무너진다는 뜻으로, 상관(上官)이 쓰러지면 부하도 쓰러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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