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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銅蹄], 동제[東帝], 동제[東第], 동제[東制], 동제[銅鞮], 동제곡[銅鞮曲]


동제[銅蹄]  동제는 백동제(白銅蹄)의 준말로, 말을 가리킨다.

동제[東梯]  동쪽 층계.

동제[東帝]  봄을 맡은 신인 동방청제(東方靑帝)를 가리킨다.

동제[東第]  신분이 높은 사람이 거처하는 멋진 저택을 말하는데, 옛날 중국에서 왕후(王侯)나 현달한 귀관(貴官)의 저택이 황성(皇城)의 동쪽에 몰려 있었던 데에서 나온 말이다.

동제[東制]  우리나라의 법제를 말한다.

동제[銅鞮]  가곡 이름이다. 양 무제(梁武帝)가 양양(襄陽) 땅의 동요(童謠)에 있는 양양백동제(襄陽白銅鞮)를 근거로 지었다는 악부곡(樂府曲)이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양양의 아이들 모두 손뼉 치면서, 길 막고 너나없이 백동제를 부르네.[襄陽小兒齊拍手, 攔街爭唱白銅鞮.]”라고 하였다.

동제[銅鞮]  악부(樂府)의 하나인 백동저곡(白銅鍉曲)으로 백동제(白銅蹄) 또는 백동제(白銅鞮)로도 쓰는데, 고문진보 전집 권8에 나오는 양양가(襄陽歌)의 주에 “악부에 동저가(銅鍉歌)가 있는데 해석하기를 ‘저(鍉)는 오랑캐들이 맹세할 때에 피를 마시는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운부(韻府)에는 제(鞮)로 되어 있는데 주에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가죽 신발이니, 바로 지금의 화(靴)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인 듯하다.”라고 하여 동저(銅鍉)로 쓰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동제곡[銅鞮曲]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가요(歌謠) 이름으로, 백동제(白銅蹄)라고도 한다. 양 무제(梁武帝)가 옹진(雍鎭)에 있을 적에 “양양 땅의 백동제가, 도리어 양주 아이를 묶네.[襄陽白銅蹄, 反縛揚州兒.]”라는 동요(童謠)가 있었는데, 식자들이 백동제는 말[馬]을 이른다고 하였다. 그 뒤에 의사(義師)가 일어남에 미쳐서 실제로 철기(鐵騎)들이 양주(揚州)의 선비들을 모두 묶어 동요와 같이 되었다. 이에 무제가 즉위한 뒤에 다시 신성(新聲)을 만들었는데, 황제가 스스로 가사(歌詞)를 지어 세 곡으로 만들었다. <隋書 卷13 音樂志上>

동제란도[銅鞮攔道]  남조(南朝)때 양양(襄陽)의 동요(童謠) 가운데 양양백동제(襄陽白銅鞮)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양 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이 즉위한 뒤에 이를 고쳐서 백동제(白銅鞮)라는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이백(李白)의 시에 “양양의 어린것들 일제히 손뼉치며, 거리 막고 다투어 백동제 노래 부르누나.[襄陽小兒齊拍手 攔街爭唱白銅鞮]”라는 구절이 있다. <李太白集 卷6 襄陽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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