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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同裯], 동주[凍酒], 동주[東珠], 동주[同舟], 동주공제[同舟共濟]


동주[同裯]  이불을 같이 덮고 자는 것으로, 매우 친밀하게 대함을 뜻한다. 이세민이 조정에 나가 공무를 보는 여가에 문학관에 가서 십팔학사(十八學士)들과 학문을 토론하다가 밤이 깊으면 그곳에서 함께 자기도 했다고 한다. <通鑑節要 卷10>

동주[凍酒]  차갑게 식은 술을 가리킨다. 구양수(歐陽脩)의 시 송사희심학사북사(送謝希深學士北使)에 “장막 바깥에서는 찬바람이 부는데, 차디찬 술을 마시고도 얼굴이 붉어지네.[穹廬鳴朔吹, 凍酒發朱顔.]”라고 하였다.

동주[東珠]  감동주(嵌東珠). 만주어로 탑나(塔娜)라고 한다. 중국의 동북쪽 일대에서 생산되는 진주로, 극히 희소하였다. 청나라 때 관모의 장식으로 사용하여, 동주의 많고 적음으로써 등급을 구분하였다. 황자(皇子)는 10과(顆), 황손(皇孫)과 패륵(貝勒)은 7과 등이다.

동주[東珠]  냇물의 진흙 바닥이나 모래땅에 사는 조개 속에서 만들어진 진주. 혼동강(混同江)과 오랄(烏拉: 요녕성遼寧省 부근) 영고탑(寧古塔)의 여러 하천에서 산출되는 보옥(寶玉)이다. 맑고 희며 큰 것은 5분(分) 정도이고 작은 것은 콩알만 하다. 청나라에서는 이것을 왕공(王公) 등의 관식(冠飾)으로 썼는데, 구슬의 수로 관등(官等), 품질(品秩)을 구분하였다.

동주[同舟]  후한의 곽태(郭泰)가 낙양(洛陽)에 갔다가 당시의 명사인 이응(李膺)을 만났는데 이응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서로 친구를 삼으니, 명성이 경성(京城)을 진동하였다. 그 뒤에 곽태가 향리로 돌아갈 때 낙양의 선비들이 하수(河水)에까지 나와 전송하였는데, 그 수레가 수천 대나 되었다. 이응이 오직 곽태와 같이 배를 타고 가자,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신선이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68 郭泰列傳>

동주[同舟]  한 배를 타고 함께 위험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동주공[東周公]  주(周)나라 말기에 고왕(考王)이 아우인 환공(桓公)을 하남(河南)에 봉하여 세운 제후국이 서주(西周)이고, 이후 환공의 손자 혜공(惠公)이 막내아들을 공(鞏)에다 봉하여 세운 나라가 동주이다. 평왕(平王)이 호경(鎬京)에서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 이후의 주나라를 일컫는 ‘동주’와는 다르다.

동주공제[同舟共濟]  환란을 같이 했다는 뜻이다.

동주군[東周君]  주 나라가 도읍을 동쪽 낙읍(洛邑)으로 옮긴 뒤인 제13대 임금 평왕(平王) 이하의 왕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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