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바다에 빠져 죽겠다. 노중련이 신원연을 설득하다 [赴海而死부해이사 : 蹈海而死도해이사] <전국책/조책>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의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위(魏)나라 안회왕(安釐王)은 장군 진비(晉鄙)로 하여금 조나라를 구원하게 하였지만, 진나라를 꺼리고 국경의 탕음(蕩陰)에서 멈추고 더 나아가지 않았다. 이리하여 위왕은 외국출신 장군인 신원연(新垣衍)을 보냈다. 그는 한단에 잠입하여 평원군(平原君)을 통해 조왕에게 말하였다.

“진나라가 서둘러 조나라를 포위한 것은 전에 제(齊)나라의 민왕(湣王)과 제위를 다투어 제왕이 되면서도 제나라가 진나라에서 보낸 제호(帝號)를 반상(返上)한 덕분인데, 얼만 안 가서 제(帝)에서 이전의 왕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지금 제나라는 민왕 무렵과 비교해서 날로 약해지고 오늘날에는 홀로 진나라만이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꼭 한단을 탐내서가 아니라 제(帝)가 되고 싶은 것이 본심입니다. 조나라가 만약에 사자를 내세워 진나라의 소왕을 제(帝)로 만들면 진나라는 반드시 기뻐하고 병력을 거둘 것입니다.”

평원군은 주저하고 좀처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에 노중달(魯仲連)이 때마침 조나라에 와 있다가 진나라가 초나라를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위나라의 장군이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제(帝)로 받들게 한다는 말을 듣자 평원군을 찾아가 말하였다.

“일이 장차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평원군이 말하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백 만의 군세가 바깥에서 패배하고, 지금 또한 안으로는 한단을 포위당하여 물러설 수 없습니다. 위왕은 장군 신원연에게 조나라가 진나라를 제로 받들도록 하였고, 현재 그 당사자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노중련이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주군을 천하의 현공자로 생각하였으나, 지금부터는 주군이 천하의 현공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위)나라에서 온 신원연은 어디에 있습니까? 한번 주군을 위해 문책하여 되돌아가게 만들겠습니다.”

평원군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를 불러 선생과 대면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신원연을 만나 말하였다.

“동국에 노련선생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이곳에 와 있습니다. 두 분을 위해서 대면케 하려고 하는데 장군께서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러자 신원연이 말하였다.

“노련선생은 제국의 고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신하입니다. 사자로서의 직분이 있기 때문에 노련선생을 만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러나 평원군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말씀드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원연은 허락을 하였다.

노중련은 신원연을 만나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신원연이 말하였다.

“보아하니 이처럼 포위된 성읍 안에 있는 것은 모두 평원군에게 바라는 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선생의 얼굴을 보니 평원군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 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포위된 성읍을 빠져나가려 하지 않습니까.”

노중련이 말하였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옛날의 포초(鮑焦)는 탁한 세상에서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터무니없는 잘못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은 그 마음속을 모르고 일신을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나라는 예도 의도 팽개치고 수급을 올리는 공을 높이는 나라이며, 속여서 무사를 쓰고 노예와 같이 백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가 탐내는 대로 제(帝)가 되고 잘못하여 마침내 천하를 다스리게 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동해로 가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連有赴(蹈)東海而死]. 나는 진나라 백성이 되지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장군을 뵙고자 한 것은 조나라를 돕고자 해서입니다.”

신원연이 말하였다.

“어떻게 도우려는 것입니까?”

노중련이 대답하였다.

“나는 양나라와 연나라로 하여금 돕게 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초나라는 당연히 도울 것입니다.”

신원연이 말하였다.

“연나라의 경우는 나도 그렇다고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양나라의 경우는 나도 양나라 사람입니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양나라의 도움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노중련이 말하였다.

“양나라가 돕지 않는 것은 아직 진나라의 제왕이라고 하는 해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나라가 만약 진나라가 제를 칭함의 해로움을 깨닫는다면 조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신원연이 말하였다.

“진나라를 제왕이라고 하는 해로움이 어떤 것입니까.”

노중련이 말하였다.

“옛적에 제나라의 위왕이 인의의 도를 행하고, 천하의 제후를 이끌어 주나라에 입조한 일이 있습니다. 주나라는 가난하고 또한 쇠약해졌기 때문에 제후 중에서는 입조하는 자가 없었는데도 제나라만이 입조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 남짓해서 주나라의 열왕이 죽고, 제후는 모두 조상을 하였으나 제나라가 늦게 조상을 하자 주나라는 노여워하고, 제나라에 ‘천자께서 붕어하시고 뒤를 이은 천자가 상복하셨는데도 동번의 신 전영제는 오는 것이 늦었다. 그러니 목을 베어야 하겠다’라고 하자. 위왕은 분연히 성이 나서 ‘건방지구나. 너의 어미는 하녀일 것이다’라 하고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전에 주나라에 입조하고, 사후에는 그것을 욕했다는 것은 그 요구가 정말로 아니꼬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또한 빈약해져 있다고는 하나 천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신원연이 말하였다.

“선생도 저 노복을 보았을 것입니다. 열 사람이나 되는 노복이 한 사람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힘이 부치고 지력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닙니다.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노중련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양나라는 진나라와 비교하면 노복이라는 말입니까.”

신원연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노중련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진왕을 선동하여 양왕을 삶아 젓을 담그도록 하겠습니다.”

신원연이 아주 불쾌한 듯 말하였다.

“선생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진왕을 선동하야 양왕을 삶아 젓을 담그도록 하겠다니요. 그런 일을 선생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노중련이 말하였다.

“그 정도의 일을 가지고 무얼 그러시오. 자, 들어보시오. 옛적에 귀후・악후・문왕은 주(紂)의 삼공(三公)이었습니다. 귀후에게 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아름답다 여겨 주에게 시집보냈으나 주는 그가 못생긴 딸을 바쳤다며 귀후를 삶아 젓을 담갔습니다. 악후가 준열하게 간하고, 거침없이 강한 어조로 계속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악후를 포육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탄식하자 유리의 곳집에 100여일을 감금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진나라와 더불어 양나라도 또한 제왕의 호칭을 하면서 무엇 때문에 갑자기 포육이나 젓갈이 되는 신분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제나라의 민왕이 연나라로 쫓겨나는 망명길에서 노나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유자(夷維子)가 회초리를 들고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노나라 사람에게 ‘그대는 어떻게 우리 주군을 대접하겠는가’라고 묻자. 노나라 사람이 ‘나는 열 개의 태뢰(소・돼지・양 고기가 갖추어진 최상급의 식사)로 그대의 주군을 대접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유자가 ‘그대는 어디서 그런 예의를 본받아서 우리 주군을 대접하려는 것인가. 우리 주군은 천자이시다. 천자가 순시하실 경우 제후는 정당을 사양하여 자리를 내드리고, 부고・성문의 자물쇠나 열쇠를 봉납하고, 방석을 들고 자리를 물러나 밥상을 당하에서 음미하고, 천자가 식사를 끝낸 후에야 비로소 물러나 정무를 보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노나라 사람은 성문의 자물쇠를 잠가 버리고 마침내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노나라에서 들어주지 않으므로 민왕은 설에 가려고 추를 통과하려 하였습니다. 때마침 추의 군주가 돌아가셨으므로 민왕은 궁전 안으로 들어가 조상을 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유자가 추의 후계자에게 ‘천자가 조상할 경우에는 주인은 반드시 관을 등지고 남쪽에 북면한 자리를 만들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나서 천자가 남면하여 조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추나라의 신하들은 이 말을 듣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는 칼을 안고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바람에 추로 들어갈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추나라와 노나라의 신하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주군의 생전에는 마음 편안하게 섬기지 못했고, 사후에는 망군의 입에 구슬을 품게 해줄 수도 없었지만, 그러나 천자의 예를 여기에 행하려면 어디까지나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나라도 만승의 나라이고, 양나라도 만승의 나라입니다. 둘 다 만승의 나라에 웅거해서 서로 주군이라고 이름하는 신분이면서 한번 싸워서 이겼다고 하여 북종하고 제왕으로 받들려고 합니다. 이래서는 삼진의 중신들을 추와 노의 복비(僕婢)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게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가 단념하지 않고 마침내 제왕이 되면 제후의 중신을 교체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에게서 그 지위를 뺏어 자기 자신이 말하는 현명한 자에게 그 지위를 주고, 자기 자신이 미워하는 자로부터 뺏어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줄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의 여식과 천첩을 제후의 부인이나 측실로 삼아 양나라의 궁중에 살게 할 것입니다. 양왕께서는 어떻게 평안히 지낼 수 있을 것입니까. 장군으로서도 어떻게 지금까지의 총우(寵遇)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신원연은 일어나 재배하고 사죄하면서 말하였다.

“처음에 선생을 범용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지금에야 선생이 천하의 고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만 귀국하겠습니다. 진나라를 제왕으로 부르라는 말은 두 번 다시 꺼내지 않겠습니다.”

진나라의 장군 정안평은 이 말을 듣자 군사를 50리 밖으로 후퇴시켰다. 때마침 거기에 위나라의 공자 신릉군 무기가 진비를 죽이고 그 군사를 탈취하여 조나라를 구원하고 진나라를 친다는 말이 떠돌아 진군은 철수하고 말았다.

그래서 평원군은 노중련을 봉하려고 하였으나 노중련은 굳이 사양하고 좀처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평원군은 연석을 베풀고 주연이 무르익었을 때 일어서 나오더니 천 금을 보내고 노중련을 위해 장수를 빌었다.

그러나 노중련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고사가 귀하다는 것은 사람을 위하여 우환을 덜고, 환란을 풀고, 분쟁을 조정하되 인사를 받지 않는 점에 있습니다. 만약에 받는다면 그것은 상인입니다. 나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평원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 뒤 한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

<전국책 : 조책(3)>


秦圍趙之邯鄲, 魏安釐王使將軍晉鄙救趙. 畏秦, 止於蕩陰, 不進. 魏王使客將軍新垣衍閒入邯鄲, 因平原君謂趙王曰: “秦所以急圍趙者, 前與齊湣王爭强爲帝, 已而復歸帝, 以齊故. 今齊湣王已益弱. 方今唯秦雄天下, 此非必貪邯鄲, 其意欲求爲帝. 趙誠發使尊秦昭王爲帝, 秦必喜, 罷兵去.”
平原君猶豫未有所決. 此時魯仲連適游趙, 會秦圍趙. 聞魏將欲令趙尊秦爲帝, 乃見平原君曰: “事將奈何矣?” 平原君曰: “勝也何敢言事? 百萬之衆折於外, 今又內圍邯鄲而不能去. 魏王使將軍辛垣衍令趙帝秦, 今其人在是. 勝也何敢言事?”
魯連曰: “始吾以君爲天下之賢公子也, 吾乃今然后知君非天下之賢公子也. 梁客辛垣衍安在? 吾請爲君責而歸之.” 平原君曰: “勝請召而見之於先生. 平原君遂見辛垣衍曰: “東國有魯連先生. 其人在此, 勝請爲紹介而見之於將軍.” 辛垣衍曰: “吾聞魯連先生, 齊國之高士也; 衍, 人臣也; 使事有職, 吾不願見魯連先生也.” 平原君曰: “勝已泄之矣.” 辛垣衍許諾.
魯連見辛垣衍而無言. 辛垣衍曰: “吾視居北圍城之中者, 皆有求於平原君者也. 今吾視先生之玉貌, 非有求於平原君者, 曷爲久居此圍城之中而不去也?” 魯連曰: “世以鮑焦無從容而死者, 皆非也. 令衆人不知, 則爲一身. 彼秦者, 弃禮義而上首功之國也., 權使其士, 虜使其民; 彼則肆然而爲帝, 過而遂正於天下, 則連有赴東海而死矣, 吾不忍爲之民也! 所爲見將軍者, 欲以助趙也.”
辛垣衍曰: “先生助之奈何?” 魯連曰: “吾將使梁及燕助之, 齊・楚則固助之矣. 辛垣衍曰: ”燕, 則吾請以從矣; 若乃梁, 則吾乃梁人也, 先生惡能使梁助之耶?“ 魯連曰: 梁未睹秦稱帝之害故也; 使梁睹秦稱帝之害, 則必助趙矣.”
辛垣衍曰: “秦稱帝之害將奈何?” 魯仲連曰: “昔齊威王嘗爲仁義矣, 率天下諸侯而朝周, 周貧且微, 諸侯莫朝, 而齊獨朝之. 居歲餘, 周烈王崩, 諸侯皆弔, 齊後往. 周怒, 赴於齊曰: ‘天崩地坼, 天子下席, 東藩之臣田嬰齊後至, 則斮之!’ 威王勃然怒曰: ‘叱嗟! 而母婢也!’ 卒爲天下笑. 故生則朝周, 死則叱之, 誠不忍其求也, 彼天子固然, 其無足怪.”
辛垣衍曰: “先生獨未見夫僕乎? 十人而從一人者, 寧力不勝, 智不若耶? 畏之也.” 魯仲連曰: “然梁之比於秦, 若僕耶?” 辛垣衍曰: “然.” 魯仲連曰: “然吾將使秦王烹醢梁王.” 辛垣衍怏然不悅, 曰: “嘻! 亦太甚矣, 先生之言也. 先生又惡能使秦王烹醢梁王?”
魯仲連曰: “固也, 待吾言之: 昔者, 鬼侯・之鄂侯・文王, 紂之三公也. 鬼侯有子而好, 故入之於紂, 紂以爲惡, 醢鬼侯. 鄂侯爭之急, 辨之疾, 故脯鄂侯. 文王聞之, 喟然而歎, 故拘之於牖里之車百日, 而欲舍之死. 曷爲與人俱稱帝王, 卒就脯醢之地也?
“齊閔王將之魯, 夷維子執策而從, 謂魯人曰: ‘子將何以待吾君?’ 魯人曰: ‘吾將以十太牢待子之君.’ 維子曰: ‘ 子安取禮而來待吾君? 彼吾君者, 天子也. 天子巡狩, 諸侯辟舍, 納於筦鍵, 攝衽抱几, 視膳於堂下; 天子已食, 退而聽朝也.’ 魯人投其籥, 不果納, 不得入於魯. 將之薛, 假涂於鄒. 當是時, 鄒君死, 閔王欲入弔. 夷維子謂鄒之孤曰: ‘天子弔, 主人必將倍殯柩, 設北面於南方, 然后天子南面弔也.’ 鄒之羣臣曰: ‘必若此, 吾將伏劒而死.’ 故不敢入於鄒. 鄒・魯之臣, 生則不得事養, 死則不得飯含, 然且欲行天子之禮於鄒・魯之臣, 不果納.
今秦萬乘之國, 梁亦萬乘之國, 俱據萬乘之國, 交有稱王之名, 賭其一戰而勝, 欲從而帝之, 是使三晉之大臣不如鄒・魯之僕妾也. “且秦無已而帝, 則且變易諸侯之大臣, 彼將奪其所謂不肖, 而予其所謂賢; 奪其所憎, 而與其所愛. 彼又將使其子女讒妾爲諸侯妃姬, 處梁之官, 梁王安得晏然而已乎? 而將軍又何以得故寵乎?”
於是辛垣衍起, 再拜謝曰: “始以先生爲庸人, 吾乃今日而知先生爲天下之士也. 吾請去, 不敢復言帝秦.” 秦將聞之, 爲卻軍五十里. 適會魏公子無忌奪晉鄙軍以救趙擊秦, 秦軍引而去. 於是平原君欲封魯仲連, 魯仲連辭讓者三, 終不肯受. 平原君乃置酒, 酒酣, 起, 前, 以千金爲魯連壽. 魯連笑曰: “所貴於天下之士者, 爲人排患・釋難, 解紛亂而無所取也. 卽有所取者, 是商賈之人也, 仲連不忍爲也.” 遂辭平原君而去, 終身不復見. <戰國策 : 趙策(三)>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
error: Alert: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