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 <전국책/제책>


정곽군(靖郭君)이 식객 제모변(齊貌辨)을 잘 대해 주었다. 제모변은 사람됨이 흠이 많아 문인(門人)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사위(士尉)가 정곽군에게 간하였으나 정곽군이 들어주지 않자 사위는 떠나버리고 말았다. 맹상군(孟嘗君)이 가만히 간하니, 정곽군이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너희들을 다 없애고 우리 집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참으로 제모변을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리고는 이에 제모변을 상사(上舍)에 거처하게 하면서 장자로 하여금 시중들게 하고 아침저녁 식사까지 갖다 바치게 하였다.

몇 년이 흘러 제(齊) 위왕(威王)이 죽고 선왕(宣王)이 즉위하였다. 정곽군은 평소 선왕과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으므로 사직하고 설(薛)로 돌아가 제모변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모변이 선왕을 만나 보러 가겠다며 하직 인사를 하러 왔다. 정곽군이 말하였다.

“왕이 나를 미워하는 정도가 아주 심하오. 그대가 가면 틀림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제모변이 말하였다.

“본디 살기를 바라지 않으니, 청컨대 반드시 가겠습니다.”

정곽군은 제지할 수가 없었다. 제모변이 제 땅에 이르자 선왕이 이 소식을 듣고 노여움을 품은 채 그를 맞이하였다. 제모변이 선왕을 뵙자 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정곽군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아끼는 인물이라던데 과연 그런가?”

제모변이 말하였다.

“저를 사랑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왕께서 태자가 되셨을 때 제가 정곽군에게 ‘태자의 관상이 어질지 못합니다. 턱이 너무 크고 돼지 눈처럼 보이니, 이런 얼굴은 신의를 배반합니다.[過頤豕視, 若是者信反.] 태자를 폐위시키고 다시 위희(衛姬)의 어린 아들 교사(郊師)를 세우느니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정곽군께서 울면서 ‘안 되오.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하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제 말을 듣고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같은 환난은 틀림없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하나의 예입니다. 또 설(薛) 땅에 이르자 초나라 소양(昭陽)이 몇 배의 땅으로 설 땅과 바꾸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저는 그때 ‘그 제의를 반드시 받아들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정곽군께서 ‘설 땅은 선왕(先王)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비록 후왕(後王)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장차 선왕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게다가 선왕의 사당이 바로 이곳 설에 있는데 내 어찌 선왕의 사당을 초나라에 넘겨 줄 수 있겠소!’라고 하면서 또다시 저의 의견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그 두 번째 예입니다.”

선왕(宣王)은 크게 탄식하면서 얼굴색이 흔들리며 말하였다.

“정곽군이 과인에 대하여 한결같이 이와 같았군요! 과인이 어려서 몰랐습니다. 객께서 과인을 위하여 정곽군을 불러올 수 있겠습니까?”

제모변이 말하였다.

“말씀대로 준행하겠습니다.”

정곽군은 위왕이 내려 준 옷을 입고 위왕이 준 검을 차고 나섰다. 선왕은 스스로 교외까지 나와서 정곽군을 맞으며 멀리서 보고 눈물을 흘렸다. 정곽군이 이르자 인하여 재상자리를 맡아 줄 것을 청하였다.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부득이 수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7일 만에 병을 핑계로 굳게 사양하였다. 정곽군이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고 다시 사흘 만에야 겨우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당시에 정곽군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고 하겠다. 능히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비방에도 전혀 꺾일 줄 몰랐던 것이며, 그래서 제모변이 생사를 도외시하고 기꺼이 환난에 나선 것이다.

<전국책 : 제책(1)>


靖郭君善齊貌辨. 齊貌辨之爲人也多疵, 門人弗說. 士尉以証靖郭君, 靖郭君不聽, 士尉辭而去. 孟嘗君又竊以諫, 靖郭君大怒, 曰: “剗而類, 破吾家, 苟可慊齊貌辨者, 吾無辭爲之.” 於是舍之上舍, 令長子御, 旦暮進食.
數年, 威王薨, 宣王立. 靖郭君之交, 大不善於宣王, 辭而之薛, 與齊貌辨俱留. 無幾何, 齊貌辨辭而行, 請見宣王. 靖郭君曰: “王之不說嬰甚, 公往, 必得死焉.” 齊貌辨曰: “固不求生也, 請必行.” 靖郭君不能止. 齊貌辨行至齊, 宣王聞之, 藏怒以待之. 齊貌辨見宣王, 王曰: “子, 靖郭君之所聽愛夫?”
齊貌辨曰: “愛則有之, 聽則無有. 王之方爲太子之時, 辨謂靖郭君曰: ‘太子相不仁, 過頤豕視, 若是者信反. 不若廢太子, 更立衛姬嬰兒郊師.’ 靖郭君泣, 而曰: ‘不可, 吾不忍也.’ 若聽辨而爲之, 必無今日之患也. 此爲一. 至於薛, 昭陽請以數倍之地易薛. 辨又曰: ‘必聽之.’ 靖郭君曰: ‘受薛於先王, 雖惡於後王, 吾獨謂先王何乎! 且先王之廟在薛, 吾豈可以先王之廟與楚乎?’ 又不肯聽辨. 此爲二.
宣王大息, 動於顔色, 曰: “靖郭君之於寡人一至此乎? 寡人少, 殊不知此. 客肯爲寡人來靖郭君乎?” 齊貌辨對曰: “敬諾.” 靖郭君, 衣威王之衣, 冠, 舞其劒. 宣王自迎靖郭君於郊, 望之而泣. 靖郭君至, 因請相之. 靖郭君辭, 不得已而受, 七日謝病, 强辭, 靖郭君辭不得三日而聽.
當是時, 靖郭君可謂能自知人矣. 能自知人, 故人非之, 不爲沮. 此齊貌辨之所以外生・樂患・趣難者也.   <戰國策 : 齊策(一)>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