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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와 문장도 덕성으로 단련되어 나와야 한다 <채근담/취고당검소>


절의가 청운을 아래로보고

문장이 백설곡보다 고상할지라도

그것이 덕성으로 도야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사사로운 혈기와 기능의 말단에 불과하다.


節義傲靑雲,  文章高白雪,
절의오청운,  문장고백설,
若不以德性陶鎔之,  終爲血氣之私,  技能之末.
약불이덕성도용지,  종위혈기지사,  기능지말.

<채근담菜根譚/명각본明刻本(만력본萬曆本)/전집前集>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소창유기小窓幽記 : 성醒>


  • 절의[節義]  절개(節槪·節介)와 의리(義理). 의절(義節). 신념을 굽히지 않는 꿋꿋한 태도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절의는 부부간의 관계에서는 정절로, 벗간에는 신으로,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충으로 이어지는 덕목이다.
  • 오시[傲視]  교만(驕慢)하게 남을 깔봄. 깔보다. 오만스럽게 대하다. 경시하다.
  • 청운[靑雲]  푸른 빛깔의 구름. 높은 이상(理想)이나 벼슬. 학식이 높아 성현(聖賢)의 경지(竟地)에 이름. 속세에서 초연함. 푸른색의 구름이 어두운 색의 구름보다 높이 떠있는 데에서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현귀(顯貴)한 자리에 있는 고관(高官)으로 흔히 벼슬길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순탄하게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평보청운(平步靑雲) 또는 평지청운(平地靑雲)이라 한다. 참고로, 사기(史記) 권79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에, 위(魏)나라 수가(須賈)가 범수(范睢)에게 “나는 그대가 스스로 청운의 위에 오를 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賈不意君能自致於靑雲之上.]”라고 사죄한 데서 보이고,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행실을 닦고 이름을 세우려는 여항의 사람이 청운의 선비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전할 수 있겠는가.[閭巷之人欲砥行立名者, 非附靑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라고 한 데서 보이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문신선증유(聞新蟬贈劉)에 “백발은 머리에 빠르게 생기는데, 청운은 손에 들기 이리 늦은고.[白髮生頭速 靑雲入手遲]”라고 하였고, 황석암하작(黃石巖下作)에 “옛날 품었던 청운의 뜻을, 지금은 바꿔 백운으로 향했다네.[昔日靑雲意 今移向白雲]”라고 하였고,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들어 올리면 청운 위에 있고 억누르면 황천 아래에 있다.[抗之則在靑雲之上, 抑之則在黄泉之下.]”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송위서기부안서(送韋書記赴安西)에 “그대 홀연 귀하게 되니, 청운과 진창이 마주보듯 현격하도다.[夫子忽通貴, 雲泥相望懸.]”라고 하였고, 후한(後漢) 양웅(揚雄)의 시 해조(解嘲)에 “길을 얻은 자는 청운에 오르고, 길을 잃은 자는 구렁에 처박힌다. 아침에 권세를 쥐면 경상(卿相)이 되고, 저녁에 권세를 잃으면 필부(匹夫)가 된다. 이를 비유하자면 강호(江湖)의 언덕이나 발해(渤海)의 섬에 네 마리의 기러기가 날아와 앉아도 많은 것이 되지 않고, 한 쌍의 오리가 날아가 버려도 적은 것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當途者升靑雲 失路者委溝渠 旦握權則爲卿相 夕失勢則爲匹夫 譬若江湖之崖 渤澥之島 乘雁集不爲之多 雙鳧飛不爲之少]”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백설[白雪]  금곡명(琴曲名)이다. 그 설이 동일하지 않다. 사희일(謝希逸)의 금론(琴論)에는 “유연자(劉涓子)가 거문고를 잘 타서 양춘백설곡(陽春白雪曲)을 지었다.”라고 하였고, 금집(琴集)에는 “사광(師曠)의 소작이라.”라 하였으며, 박물지(博物志)에는 “태상(太常)이 소녀(素女)를 시켜 오십현(五十絃)의 비파를 타는 곡조 이름이라.”라고 하였다. 참고로,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에 “옛날에 사광이 백설을 연주하자 하늘에서 신물인 검은 학이 내려왔다.[昔者師曠奏白雪之音, 而神物爲之下降.]”라고 하였고, 위(魏) 혜강(嵇康)의 금부(琴賦)에 “정성을 다스리고, 묘곡을 연주하며, 백설가 날리고 청각을 부른다.[理正聲 奏妙曲 揚白雪 發淸角]”라는 구절이 있다.
  • 백설곡[白雪曲]  전국(戰國)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歌曲) 이름인데, 양춘곡(陽春曲)과 함께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화답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고 한다. 전하여 흔히 고상한 시문(詩文)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초나라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영중에서 노래하는 나그네가 맨 처음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을 노래했을 때는 국중에서 그것을 이어 화답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를 노래했을 때는 국중에서 그것을 이어 화답하는 자가 수백 명이었으며, 양춘(陽春)과 백설(白雪)을 노래하자 그에 화답하는 자가 수십 명에 불과했다.……이것은 곧 곡조가 고상할수록 화답하는 자가 더욱 적기 때문이다.[客有歌于郢中者, 其始曰下里、巴人, 國中屬而和者數千人; 其爲陽阿、薤露, 國中屬而和者數百人; 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數十人.……是其曲彌高, 其和彌寡.]”라고 하였다. <文選 卷23 對楚王問>
  • 덕성[德性]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 덕의(德義)를 갖춘 본성(本性). 도덕적(道德的) 의식(意識). 사람의 지성(至誠)한 본성.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바른 이치로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7장에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고 문학(問學)을 말미암으니, 광대함을 지극히 하고 정미함을 다하며, 고명함을 다하고 중용을 따르며, 옛것을 잊지 않고 새로운 것을 알며, 후함을 돈독히 하고 예를 높이는 것이다.[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도용[陶鎔]  흙을 빚거나 쇠를 녹여 물건을 만들 듯이 물건이 만들어짐. 점점 교화(敎化)되어 감. 훌륭한 품성을 갖추도록 잘 가르쳐서 기름.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고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는 것처럼 인재를 배양해서 육성한다는 뜻으로, 보통 대신이 나라를 다스리는 비유로 쓴다.
  • 도야[陶冶]  교화하고 육성하는 것. 온화한 마음을 기르는 것.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아 기름. 도공(陶工)이 그릇을 만들고, 야공(冶工)이 쇠(金)를 부음(鑄)과 같이 스승이 제자(弟子)의 재예(才藝)를 기르는 것. 타고난 성품이나 재능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잘 가르치거나 단련하는 것. 원래는 도공(陶工)과 주공(鑄工)의 병칭이었다. 도기를 만들 때 뜨거운 불 속에 넣고 쇠를 다룰 때 뜨거운 불에 녹이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닦고 기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회남자(淮南子)에 “천지를 포괄하고 만물을 도야한다.[包裹天地, 陶冶萬物.]”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해민(解悶)에 “성령을 닦는 데는 다른 게 없으니, 애오라지 시를 짓고 길게 읊을 뿐이네.[陶冶性靈存底物, 新詩改罷自長吟.]”라고 하였다.
  • 사행[私行]  개인 생활에서 행하는 사사로운 행위. 관리가 개인적인 일로 여행함. 남몰래 가만히 하는 행위. 남몰래 넌지시 함. 또는 넌지시 한 행위. 사사로운 용무로 감. 개인적인 일. 관리의 사사로운 여행. 사사로운 행차.
  • 말예[末藝]  변변치 못한 기능이나 기술. 변변찮거나 쓸모없는 재주. 하찮은 공예. 문예(文藝)를 낮추어 부르는 말, 혹은 변변찮은 재주 또는 쓸모없는 재주를 일컬음. 사장학(詞章學).

【譯文】 不能養德,  終歸末節.
節操義行傲視靑天白雲,  文字篇章高過陽春白雪,  如果不用道德品性陶鑄熔煉它們,  終究只是血性勇氣的私溺,  技術能力的末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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