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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東眞]  만주족(滿州族)이 세운 나라. 금(金) 나라 말엽에 함평로 선무사(咸平路宣撫使)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요동(遼東)을 점거하여 세운 나라이다. 만노는 금이 쇠약하고 몽고가 일어나자 금에 반(叛)하여 스스로 대진국(大眞國) 천왕(天王)이라 했다. 그 뒤 몽고의 세력에 밀려 동쪽 두만강(豆滿江) 유역으로 이동하고 국호를 대하(大夏) 또는 동하(東夏)라 하였다. 이것이 사가(史家)들이 말하는 동진국으로 간도(間島) 지방을 통치하다가 몽고에게 멸망당했다.

동진[東晉]  진(晉)나라가 서진(西晉)과 동진(東晉)으로 나누어졌는데, 서진(西晉)이 전조(前趙)에 의해 멸망했다가 그 이듬해 재흥(再興)된 이후의 진(晉)나라를 이른다. 서진(西晉) 왕실의 후예인 낭야왕(瑯琊王) 사마예(司馬睿)가 세워서 건강(建康: 지금의 남경南京)에서 즉위하여 원제(元帝)가 되고 강남(江南) 땅을 보유하였다. 역사에서 그 나라를 동진(東晉)이라고 칭하였다. 북방의 16국과 공존하다가, 420년에 유유(劉裕)가 동진을 멸망시키고 유송(劉宋)을 세웠다.

동진[董晉]  724~799. 당(唐)나라의 재상으로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 3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다. 상서좌승(尙書左丞), 태상경(太常卿) 등을 역임하였고,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한유(韓愈)는 25세 때 변주(汴州)에서 동진을 보좌한 바 있다. <舊唐書 卷145 董晋列傳>

동진[董晉]  중당기(中唐期)의 명신으로 자는 혼성(混成)이고 하중(河中) 우향(虞向: 현재의 산시山西 영제永濟) 사람이다. 현종(玄宗) 중기에 명경과에 급제한 뒤 비서성교서랑을 시작으로 벼슬이 선무군절도부대사(宣武軍節度副大使), 지절도사(知節度事),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고 농서군개국공(隴西郡開國公)에 봉해졌다. 사후에 태부(太傅)가 추증되고 공혜(恭惠)란 시호가 내려졌다.

동진[銅塵]  구리[銅] 속의 틈을 통과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대상. 금진(金塵)과 같다.

동진[同塵]  속세(俗世)의 홍진(紅塵)과 함께 섞인다는 뜻으로, 세인과 같은 짓을 함. 세파(世波)에 휩쓸림.

동진[同盡]  함께 죽다.

동진[東秦]  동진(東秦)은 제(齊)나라 땅이었던 산동(山東) 지역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에 진 소왕(秦昭王)이 서제(西帝)라 칭하고 제 민왕(齊湣王)이 동제(東帝)라 칭하며 두 나라가 동서로 병립하였기 때문에 뒤에 제나라 혹은 제나라 땅을 동진(東秦)이라고 하였다.

동진국[東眞國]  1216년(고려 고종3) 금(金)나라의 요동 선무사(遼東宣撫使)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세운 나라이다. 지금의 만주 요양(遼陽)에 도읍을 정하고 연호를 천태(天泰)라 하였다. 건국 초기에는 국호를 대진(大眞)이라 하였는데 몽고에 쫓겨 두만강 유역으로 이동하면서 동진국이라 하였다. 고려를 여러 차례 침략하였으며, 금나라가 망하기 1년 전인 1233년에 포선만노가 몽고군에게 살해당함으로써 19년 만에 멸망하였다. 멸망 이후에도 그 지역에 부족이 남았는데 고려에서는 남은 부족에 대해서도 흔히 동진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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