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두릉시[東津杜陵詩] 두릉(杜陵)은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그의 시에 “면주 땅 부강(涪江) 동쪽 나루터[綿州江水之東津]”로 시작되는 ‘관타어가(觀打魚歌)’와 “고기잡이 구경하러 동진에 다시 왔네.[東津觀魚已再來]”라는 구절의 ‘우관타어(又觀打魚)’가 있다. <杜少陵詩集 卷11>
동진백운구[東盡白雲求] 전란 속에 헤어진 벗을 그리워하며 찾는다는 뜻이다. 두보(杜甫)가 그의 다섯 번째 아우 두풍(杜豐)에게 보낸 시 제오제풍독재강좌……(第五弟豐獨在江左……)에 “내년에 봄물을 타고 내려가, 동쪽 끝 흰 구름을 찾아봐야지.[明年下春水 東盡白雲求]”라고 하였다. 당시 두보(杜甫)의 아우 두풍이 형제들과 떨어져 항주(杭州)와 월주(越州) 지역에 홀로 있었다. 항주나 월주는 중국에서 동쪽 끝이고, 백운(白雲)은 가족이나 벗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동진사[同進士] 고려와 조선 초기 문과 급제의 한 등급이다. 고려 때에는 문과의 급제를 시험 성적에 따라 갑(甲)·을(乙)·병(丙)으로 구분하고, 그 등외(等外)를 동진사라 하다가, 1007년(목종10)에 을·병·동진사로 구분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다가, 1438년(세종20)에 동진사과를 정과(丁科)로 고쳐 을·병·정의 세 등급으로 하였고, 1468년(세조14)에 정과를 폐하고 갑·을·병의 세 과(科)로 하였다.
동진사[同進士] 과거 등급의 하나. 문과(文科)에서 갑(甲), 을(乙), 병(丙)의 등급에 속하지 못한 등외(等外)의 급제자를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과거에서 을과(乙科) 3인, 병과(丙科) 7인, 동진사(同進士) 23인, 합하여 33인을 자·오·묘·유년에 뽑았는데, 조선 정종 때 동진사를 고쳐서 정과(丁科)라 했다.
동진사출신[同進士出身] 4등으로 급제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송나라 때 과거 급제자를 5등급으로 분류하여, 1등과 2등에게는 진사급제(進士及第)를 내리고, 3등에게는 진사출신(進士出身)을 내리고, 4등에게는 동진사출신(同進士出身)을 내리고, 5등에게는 동학구출신(同學究出身)을 내렸다.
동진여회[同塵與灰] 세상살이의 수고로움을 함께 나눔. 티끌과 재가 된 후에도 함께 살고 싶다. 이백(李白)의 시 장간행(長干行)에 “열다섯에 비로소 얼굴을 펴고, 먼지와 재가 될 때까지 함께 하길 원했습니다.[十五始展眉, 願同塵與灰.]”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시 만가(挽歌)에 “옛날엔 사람 사는 집에 거하였는데, 지금은 귀신 이웃들에게 의탁하네. 옛날엔 일곱 척의 몸이었으나, 지금은 재와 먼지로 변하였네.[昔居四民宅, 今託萬鬼鄰. 昔為七尺軀, 今成灰與塵.]”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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