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타[銅駝] 구리쇠로 만든 낙타로 대부분 궁문(宮門)이나 침전(寢殿)의 앞에 세운다. 업중기(鄴中記)에 “중양문(中陽門) 밖 길 양쪽에 두 마리 동타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 모양은 말과 비슷하고 길이와 높이는 각각 한 발씩이고 발은 소와 비슷하고 꼬리는 석 자이고 등은 말안장처럼 생겼다.[二銅駝如馬形, 長一丈, 高一丈, 足如牛, 尾長二尺, 脊如馬鞍, 在中陽門外, 夾道相向.]”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상은(李商隱)의 시 곡강(曲江)에 “육기(陸機) 죽기 전 화정(華亭)의 학 울음소리를 그리워하였고, 색정(索靖)은 늙어 궁궐 문 앞의 동타(銅駝)를 탄식하며 울었지.[死憶華亭聞唳鶴, 老憂王室泣銅駝.]”라고 하였다.
동타[銅駝]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육기(陸機)의 낙양기(洛陽記)를 인용하여 “낙양에 동타가(銅駝街)가 있는데, 한나라 때 동타 두 마리를 주조하여 궁궐남쪽 네거리에 마주보게 세워두었다. 속담에 ‘금마문(金馬門) 밖에는 어진 이들이 많이 모이고, 동타 거리에는 소년들이 모여드네.’라고 하였다.[洛陽有銅駝街, 漢鑄銅駝二枚, 在宮南四會道相對. 俗語曰: ‘金馬門外集眾賢, 銅駝陌上集少年.’]”라고 하였다. 또, 위지(魏志)에 “위 명제(魏明帝) 경초(景初) 2년에 장안의 여러 종(鐘), 거(簴), 동타[橐]와 동인(銅人), 승로반(承露盤)을 옮겼는데, 승로반은 꺾이고 동인은 무거워서 가져가 갈 수 없었으므로 패성문(覇城門 장안성의 궁문)에 두었다.[明帝景初二年, 徙長安諸鍾簴槖銅人承露盤, 盤折銅人重不致, 留霸城.]”고 하였다.
동타[銅駝] 동타(銅駝)는 한(漢)나라 때 낙양(洛陽)의 궁문 밖에 비치한 동(銅)으로 주조(鑄造)한 낙타(駱駝)를 가리킨다. 낙중기(洛中記)에 “한나라 궁궐 남쪽 네거리에 높이가 아홉 자나 되는 구리 낙타 두 마리를 주조해 마주보게 세워두었는데, 머리는 양과 같고 목은 말을 닮았다.[有銅駝二枚, 在宮之南四會道, 頭高九尺, 頭似羊, 頸身似馬, 有肉鞍兩箇相對.]”고 하였다. 동타가 묻힌다는 것은 진(晉)나라 때 색정(索靖)이 천하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는 그 동타를 가리키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네가 곧 가시덤불 속에 묻히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나라가 망한 것을 뜻한다. <晉書 卷30 索靖列傳>
동타맥[銅駝陌] 동타가(銅駝街). 동타맥(銅駝陌)은 중국 낙양성 궁문 밖의 번화가로, 한(漢)나라 때 이곳에 구리로 만든 낙타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나중에는 번화가 또는 행락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유우석(劉禹錫)의 시 양류지(楊柳枝)에서 “금곡원에 꾀꼬리들 어지러이 날고, 동타맥 거리에는 봄바람이 부네.[金谷園中鶯亂飛, 銅駝陌上好風吹.]”라고 하였다.
동타형극[銅駝荊棘] 국가가 쇠망(衰亡)할 줄을 미리 알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뜻한다. 서진(西晉)의 상서랑(尙書郞) 색정(索靖)이 장차 서진(西晉)이 멸망할 줄을 예감하고는, 낙양(洛陽) 궁문(宮門) 앞에 서 있는 구리 낙타[銅駝]를 가리키며 “앞으로는 네가 가시나무 덤불 사이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탄식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0 索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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