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도인[東坡道人]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동파도조운[東坡悼朝雲] 동파(東坡)가 조운(朝雲)을 곡함. 소식(蘇軾)이 자신의 애첩(愛妾) 조운(朝雲)이 운명하자 도조운시(悼朝雲詩)를 지어 애도한 일을 말한다. 조운(朝雲)은 소식(蘇軾)의 첩 이름으로, 소식이 혜주(惠州)로 쫓겨 갈 때에도 함께 데리고 갔는데, 백낙천(白居易)과 번소(樊素)의 관계에 빗대어 조운에게 준 조운시(朝雲詩)와 3년 뒤에 조운이 죽었을 때 애도한 도조운(悼朝雲)이라는 시가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권38과 권40에 나온다. 번소(樊素)는 중국 당(唐) 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가기(家妓)로 노래를 잘하였다. 백거이(白居易)가 앵두를 번소의 입술에 비유하여 읊은 시가 있다.
동파등집[東坡等集] 동파등집(東坡等集)은 동파집(東坡集) 40권과 동파후집(東坡後集) 20권을 말하며, 주의(奏議)는 15권인데 주소(奏疏)를 기록한 것이고, 내외제(內外制)는 내제(內制) 10권과 외제(外制) 10권으로 각각 내외의 제문(制文)을 기록한 것이며, 화도시(和陶詩) 4권은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시들이다.
동파매화[東坡梅花] 동파의 매화 시. 소식(蘇軾)의 시 ‘11월 26일, 송풍정하, 매화성개[十一月二十六日, 松風亭下, 梅花盛開]’를 가리킨다. 그 시의 전문은 “춘풍령 근처 회남촌에서, 옛날에 매화로 인해 애가 끊어졌는데. 어찌 알았으랴 떠돌다 다시 만난 날이, 비바람 치는 변방의 근심스런 황혼녘일 줄. 여지포에서 긴 가지 반쯤 잎이 졌었고, 광랑원에서 기울어진 나무 홀로 빼어났었네. 어찌 그윽한 광채에 야색이 남아 있을 뿐이랴, 다만 찬 미모가 겨울 온기에 밀려날까 두려웠네. 송풍정 아래 가시 넝쿨 우거진 속에서, 두 그루 매화 아침 햇살에 밝게 피어나서. 해남의 구름 탄 신선 살포시 섬돌에 내리고, 달빛 아래 흰 옷 입고 와서 문을 두드렸네. 취기 가시고 꿈 깨어 일어나 나무 주위를 도니, 묘한 뜻 있지만 끝내 말이 없구나. 선생이여 홀로 술 마시며 탄식하지 마소서, 다행히 지는 달 있어 맑은 술잔 들여다보고 있으니.[春風嶺上淮南村, 昔年梅花曾斷魂. 豈知流落復相見, 蠻風蜒雨愁黃昏. 長條半落荔支浦, 卧樹獨秀桄榔園. 豈惟幽光留夜色, 直恐冷艷排冬温. 松風亭下荆棘裏, 兩株玉蕋明朝暾. 海南仙雲嬌墮砌, 月下縞衣來扣門. 酒醒夢覺起繞樹, 妙意有在終無言. 先生獨飮勿歎息, 幸有落月窺淸樽.]”이다. <東坡全集 卷22>
동파불인[東坡佛印]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이고, 불인(佛印)은 송(宋) 나라 때의 고승으로 시에 능하여 특히 소식, 황정견(黃庭堅)과 서로 친하게 지냈던바, 소식의 희답불인(戱答佛印) 시에 의하면 “혜원법사는 술 받아 도잠에게 먹이더니, 불인은 돼지고기 구워 소자첨을 대접하네.[遠公沽酒飮陶潛 佛印燒猪待子瞻]”라고 하였다.
동파삼백[東坡三白]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유공보(劉貢父)에게 “나는 동생과 과거 공부를 할 때 매일 삼백(三白)을 먹었는데 매우 맛이 좋아서 이후로는 세상에 따로 팔진미(八珍味)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我和我弟弟準備考試時, 每天都吃三白, 那種味道, 真不是蓋的, 我簡直不相信世界上還有比這更美味的食物!]”라고 하므로 삼백이 무엇인가고 묻자, 동파가 “한 줌 소금과 생무우 한 접시에 백반 한 그릇이다.[一撮鹽, 一碟生蘿蔔, 一碗飯, 就是三白.]”라고 대답한 데서 나온 말이다. <琅琊代醉編 皛飯毳飯>
동파소씨[東坡蘇氏]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사천성 미산(眉山) 사람이다. 소순(蘇洵)의 아들이며 소철(蘇轍)의 형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22세 때 진사에 급제하고, 과거 시험의 위원장이었던 구양수(歐陽脩)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후원으로 문단에 등장하였다.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는 그의 대표작이다.
동파습와력[東坡拾瓦礫] 소식(蘇軾)의 시 동파(東坡) 8수(首)의 자서(自序)에 “내가 황주(黃州)에 있던 2년 동안 날마다 곤궁에 시달리니, 친구인 마정경(馬正卿)이 식량조차 군핍한 나를 불쌍히 여겨 군(郡)에 청하여 묵은 땅 수십 묘畝)를 얻어서 내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땅이 황폐한 지 오래라 잡초와 가시, 기왓장, 자갈들로 가득하였으며 게다가 흉년이 든 해라 땅을 개간하느라 고생하여 근력이 거의 다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쟁기를 놓고 탄식하며 이 시를 지어 나 자신의 고생을 불쌍히 여기고 내년에 수확하여 이 고생을 잊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하였고, 그 시에서 “홀로 외로운 나그네가 있으니, 하늘 끝에서도 도망칠 곳이 없어라. 이곳에 와서 기왓장과 자갈 줍노니, 흉년이라 흙이 기름지지 않구나.[獨有孤旅人, 天窮無所逃. 端來拾瓦礫, 歲旱土不膏.]”라고 하였다.
동파식저[東坡食猪] 소동파(蘇東坡)는 돼지고기를 좋아하여 식저육시(食猪肉詩)를 지었는데, “황주에서 돼지고기를 좋아하여 값이 썩은 흙과 같도다.[黃州好猪肉 價錢等糞土]”라고 하였다. 또, 소식(蘇軾)의 시 희답불인(戱答佛印)에 “혜원법사(慧遠法師)는 술 받아 도잠에게 먹이더니, 불인은 돼지고기 구워 자첨을 대접하네. 벌이 온갖 꽃 따다가 꿀을 만든 뒤에는, 모를레라 맵고 쓴 것을 누굴 위해 달게 했는지.[遠公沽酒飮陶潛, 佛印燒猪待子瞻. 采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甛.]”라고 하였다. 불인(佛印)은 송대(宋代)의 고승(高僧)으로 시에 능하여 특히 소식, 황정견(黃庭堅)과 서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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