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유대[東坡留帶]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원우(元祐) 4년 6월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 겸 항주 지주(知杭州)로 발령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임지인 항주(杭州)로 가던 중 윤주(潤州)를 지나다가 현지의 유명한 금산사(金山寺)에 잠시 들렀다. 마침 그곳에 불인요원(佛印了元)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와 법거량을 펼치게 되었다. 동파가 방장실(方丈室)로 들어가 앉으려 하자 불인(佛印)이 “앉을 자리가 없어 거사(東坡)를 모실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동파가 “잠시 스님의 육신(四大)을 자리로 빌려 앉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불인(佛印)은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만약 바로 대답을 하면 앉도록 하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옥대(玉帶)를 풀어놓고 가야합니다.”라고 하였다. 동파가 쾌히 승낙하면서 말해보라고 하니 불인(佛印)이 “이 산승의 육신은 다 빈 것(四大皆空)이요, 오온 또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사는 어디에 앉겠습니까?[山僧四大本無, 五蘊非有, 內翰於何處坐?]”라고 하였다. 이 말에 동파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고, 마침내 옥대를 풀어놓고[留帶]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동파육[東坡肉]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조리한 요리. 돼지의 갈비 부분의 고기를 간장으로 양념하여 장시간 조린 요리. 소동파(蘇東坡)가 항저우(杭州)에 살고 있을 때 자주 만들었다고 알려진 돼지의 갈빗살 찜 요리이다.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에 있는 호수인데, 북송(北宋) 때에 시인 소식(蘇軾)이 항주를 다스릴 때에 서호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고 이때에 함께 고생한 주민들에게 삶은 돼지고기를 나누어 주며 함께 먹었다고 한다. 이것을 동파육(東坡肉)이라 한다. 서호와 동파육은 대개 소식의 선정(善政)을 뜻하는 어휘로 사용한다.
동파입극[東坡笠屐] 소동파(蘇東坡)가 귀양살이할 때에 나갔다가 비를 만나 삿갓을 빌려 쓰고 나막신을 신고 돌아왔는데, 그 뒤에 사람들이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라고 전하였다.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삿갓 쓰고 나막신 신고 있는 형상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원(元)나라 때 문인(文人) 정원우(鄭元祐)의 그림이다. 청(淸)나라의 문인 송락(宋犖)의 제동파입극도(題東坡笠屐圖)에 의하면,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일찍이 경주 별가(瓊州別駕)로 폄척되어 있을 때, 한번은 그곳의 문인 여자운(黎子雲) 형제를 방문하러 가던 도중에 비를 만나서 급히 한 농가(農家)에 들어가 대삿갓과 나막신을 빌려 착용하였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西陂類稿 卷28> 조선 말기의 화가인 소치(小癡) 허유(許維)도 동파입극도를 모방하여 그린 그림이 전한다.
동파점[東坡店] 경기도(京畿道) 파주(坡州)에 있는 역 이름이다.
동파지림[東坡志林] 송대(宋代)의 소식(蘇軾)이 당시의 일사(逸事)와 기문(奇聞)을 모아 엮은 책으로, 전체 5권이며, 동파수택(東坡手澤)이라고도 한다. 후편(後篇)은 동파대전집(東坡大全集)에 수록되었으며, 청대(淸代)에 우통(尤侗)이 지은 독동파지림(讀東坡志林) 1권이 있다. <四庫全書總目提要 子部 雜家類>
동파지신여가지사[東坡之神與可之似] 동파(東坡)의 정신과 여가(與可)의 솜씨. 여가(與可)는 송(宋)나라 문동(文同)의 자(字)로, 대나무 묵화(墨畫)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고 대나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호를 차군암(此君庵)이라고 짓기까지 하였다. 그가 소동파(蘇東坡)에게 양주(洋州) 운당곡(篔簹谷)의 비스듬히 누워 있는 대나무를 그려 주었다. 소동파의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에 “지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대 마디를 일일이 그리고 잎을 일일이 그려 놓으니, 그러고서야 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를 그리려면 반드시 먼저 가슴속에 대가 이루어진 뒤에 붓을 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리고 싶은 형상이 떠오르면 급히 붓을 휘둘러 그 떠오른 형상을 그려야 한다. 마치 토끼가 놀라 일어나고 새매가 토끼를 잡기 위해 내려앉듯이 해야 하니, 조금이라도 느슨히 하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今畫者乃節節而為之, 葉葉而累之, 豈復有竹乎! 故畫竹必先得成竹於胸中, 執筆熟視, 乃見其所欲畫者, 急起從之, 振筆直遂, 以追其所見, 如兔起鶻落, 少縱則逝矣.]”라고 하였다. <蘇東坡集 卷32 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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