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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차사대[東坡借四大], 동파토설[東坡吐舌], 동파화격[東坡畵格], 동파효반[東坡皛飯]


동파차사대[東坡借四大]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이고, 사대(四大)는 불교에서 세상의 만물을 이루는 근본이 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를 말하며, 특히 인체(人體)를 가리키기도 한다. 송나라의 고승(高僧) 불인(佛印)이 일찍이 금산사(金山寺)에 있을 때, 본래부터 불인과 시(詩)로써 서로 사귀어 오던 소식이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불인을 뵙자, 불인이 말하기를 “내한(內翰)이 여기를 왜 왔는고? 여기는 앉을 곳이 없다.[內翰何來? 此間無坐處矣.]”고 하니, 소식이 장난삼아 말하기를 “화상(和尙)의 사대를 빌려 선상(禪牀)으로 삼고 싶다.[借和尚四大, 用作禪牀.]”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동파토설[東坡吐舌]  송(宋)나라 선제(宣帝) 때 소식(蘇軾)이 하옥되었다가 풀려나온 뒤에 장방평(張方平)이 그를 구원하기 위해 올리려고 했던 상소를 읽어 보고는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고 안색이 변했던 일을 가리킨다. 그 내용이 너무 과격하여 하마터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오히려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言行龜鑑 卷6>

동파학사[東坡學士]  동파학사(東坡學士)는 북송(北宋) 시대 학자이며 문장가인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호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일찍이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고, 이백(李白)과 마찬가지로 적선(謫仙)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는 아버지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삼부자(三父子)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들기도 했다. 일찍이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논박했다가 항주(杭州), 호주(湖州), 황주(黃州) 등지로 좌천, 폄척되었고, 뒤에 풀려나와 한림학사, 한림 승지(翰林承旨), 예부 상서(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시문서화(詩文書畫)에도 모두 뛰어났다. 동파전집(東坡全集)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宋史 卷338 蘇軾列傳>

동파화격[東坡畵格]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이다. 자는 자첨(子瞻)으로 아버지 소순(蘇洵)·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삼부자가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꼽혔다. 또 그는 그림을 잘 그렸는데 기교를 쓰지 않아 문인화(文人畵)를 부흥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동파회록좌무전[東坡懷祿坐無田]  동파가 녹을 생각한 건 토지가 없어서임. 동파(東坡)는 소식(蘇軾)의 호인데, 소식의 차운주개조장관견기시(次韻周開祖長官見寄詩)에 “점차 전사를 꾀하면서도 녹봉에 연연하고, 파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또 물가를 곁하였네.[漸謀田舍猶祿 未脫風濤且傍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蘇東坡集 卷十九>

동파효반[東坡皛飯]  동파(東坡)는 송(宋) 나라 소식(蘇軾)의 호이고, 효반(皛飯)은 백반(白飯)을 가리킨다. 동파가 유공보(劉貢父)에게 “나는 동생과 과거 공부를 할 때 매일 삼백(三白)을 먹었는데 매우 맛이 좋아서 이후로는 세상에 따로 팔진미(八珍味)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我和我弟弟準備考試時, 每天都吃三白, 那種味道, 真不是蓋的, 我簡直不相信世界上還有比這更美味的食物!]”라고 하므로, 유공보가 삼백이 무엇인가고 묻자, 동파가 “한 줌 소금과 생무우 한 접시에 백반 한 그릇이다.”[一撮鹽, 一碟生蘿蔔, 一碗飯, 就是三白.]고 대답한 데서 나온 말이다. <琅琊代醉編 皛飯毳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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