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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癘人憐王여인련왕] <전국책>


어떤 세객(說客)이 춘신군(春申君)을 설득하려 말하였다.

“은(殷)나라의 탕(湯)은 호(亳)를 수도로 삼고,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은 호(鄗)를 수도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두 나라 모두 백 리에도 지나지 않는 소국이면서도 천하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순자(荀子)는 천하의 현인입니다. 그 순자를 주군께서는 백 리의 나라에 상당하는 땅을 봉(封)해 주어 세력을 갖추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주군께 좋지 않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춘신군이 말하였다.

“옳은 이야기이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어 순자와 절교를 선언하게 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조(趙)나라로 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상경(上卿)으로 맞았다.

그러자 또 세객이 춘신군에게 말하였다.

“옛적에 이윤(伊尹)이 하(夏)나라를 떠나 은(殷)나라로 가자, 은나라는 번영하여 왕이 되고 하나라는 망하였습니다. 관중(管仲)이 노(魯)나라를 떠나 제(齊)나라로 가자, 노나라는 약해지고 제나라는 강해졌습니다. 말하자면 현자가 있는 곳은 모두 군주가 존귀해지고 나라는 번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자는 천하의 현인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그와 절교하셨습니까.”

춘신군이 말하였다.

“옳은 말이다.”

그리고는 조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순자를 돌려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순자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내며 사절하였다.

“‘문둥병 환자가 왕을 동정한다.[癘人憐王]’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오만불손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상세하고 똑똑히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하의 협박을 받고 죽음을 당하는 군주를 위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대체로 인군인 자가 연소하고, 게다가 재능을 자랑하거나 간신을 간파하는 법술을 알고 있지 않으면, 중신들이 국정을 전단하고 비밀리에 자기가 주살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명한 연장의 군주를 주살하여 유약한 군주를 세우거나, 정당한 적출의 군주를 폐하고 불의의 군주를 세우거나 하는 법입니다.

춘추(春秋)에서는 이를 훈계하여 ‘초(楚)나라의 왕자 위(圍)는 정(鄭)나라에 초빙되어 가려고 하다가 아직 국경을 나서기 전에 초왕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와 병문안을 하고 마침내 관의 끈으로 왕을 교살하여 제멋대로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으며, 또한 ‘제(齊)나라의 최저(崔杼)의 아내는 미인이었는데 장공(莊公)이 사모하여 불의의 밀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저는 군당을 이끌고 장공을 공격하였다. 장공이 나라의 절반을 나누어주겠다며 사정을 하였지만 최저는 승낙하지 않고, 선조의 묘전에서 자인(自刃: 칼로 제 생명을 끊음)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그것도 승낙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공이 도망치려고 하여 바깥 울타리를 뛰어넘는데, 활로 넓적다리를 쏘아 마침내 그를 죽이고 아우 경공(景公)을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근대에서 보더라도 이태(李兌)는 조(趙)나라에서 기용되자 주부(主父: 무령왕武靈王)를 사구(沙丘)에서 굶기다가 백일 만에 죽여 버렸고, 탁치(淖齒)는 제(齊)나라에 기용되자 민왕(閔王)의 힘줄 뽑아서 선조의 묘당의 대들보에 달아 하룻밤 만에 죽였습니다.

말하자면 문둥병 환자는 종기를 앓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든 먼 옛적과 비교하면 아직 관의 끈으로 목을 졸리거나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는 괴로움이 아니며, 다음에 든 근대와 비교하면 힘줄을 뽑히거나 굶겨 죽이는 정도의 고뇌도 아닙니다. 즉, 신하의 위협을 받아 시해당한 주군들의 마음의 고뇌와 육체의 고통은 틀림없이 문둥병보다도 더 심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문둥병 환자가 인군을 동정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다음과 같이 부(賦)를 지어 덧붙여 보냈다.

수주(隋珠)가 진보라는 것을 알면서 찰 줄을 모르고
위포(褘布)와 비단의 차이를 구별할 줄 모르네
여주(閭妹)나 자사(子奢) 같은 미녀는 중매 못하고
모모(嫫母) 같은 추녀를 얻고는 기뻐하네
장님은 잘 보이고 귀머거리는 잘 들린다고 생각하며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길을 흉이라고 생각하네
아, 하늘이 어찌 현우의 구별을 모를 리 있으리
시경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늘은 신명(神明)하시니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지 말라고

<전국책 : 초책(4)>


  • 손자[孫子]  순자(荀子: 순경荀卿)를 가리킨다. 조(趙)나라 사람이다. 한 선제(漢宣帝) 유순(劉詢)의 이름을 휘(諱)하여 손자(孫子)라 하였다. 맹자(孟子)와 대립되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으며 저서 순자(荀子)가 전한다.
  • 이윤[伊尹]  이름은 지(摯). 탕(湯)을 도와 하(夏)나라의 걸(桀)을 쳤다.
  • 여인련왕[癘人憐王]  여병(癘病: 염병 등 아주 고통스러운 병)을 앓는 자가 도리어 위협을 받고 시해(弑害)당하는 왕이 자신보다 더 불쌍하다고 여긴다는 뜻의 속담이다.
  • 왕자위[王子圍]  초(楚)나라 영왕(靈王). 공왕(共王)의 아들이며, 강왕(康王)의 동생이다. 강왕(康王)의 아들 원(員)이 즉위하자 상국(相國)이 되어 병권(兵權)을 장악하였다. 원(員)이 즉위한 지 4년 만에 정(鄭)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원(員)이 병들자 되돌아와 원(員)과 그 두 아들을 죽이고 자립하여 왕(王)이 되었다. <左傳 昭公元年>
  • 최저[崔杼]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대부. 그 아내가 미인이었는데 장공(莊公)과 사통하자 이를 기화(奇貨)로 장공(莊公)을 시해하고 경공(景公)을 세워 스스로 상(相)이 되었는데 뒤에 경봉(慶封)이 공격해 오자 목을 매어 죽었다. 시호(諡號)는 무자(武子)이다. <左傳 襄公二十五年>
  • 경공[景公]  장공(莊公)의 이모제(異母弟). 이름은 저구(杵臼)이다. 안영(晏嬰: 안자晏子)을 재상으로 삼아 나라를 잘 다스렸다.
  • 이태[李兌]  조(趙)나라 장수로 사구(司寇)가 되었다.
  • 요치용제[淖齒用齊]  제 민왕(齊閔王) 40년에 연(燕)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제(齊)나라를 침입하여 수도 임치(臨淄)가 함락되자 민왕은 거(莒)로 출분(出奔)하였다. 이때 초(楚)나라가 장수 요치(淖齒)를 보내 제나라를 구원했는데 민왕은 그를 상(相)으로 삼았다.
  • 옹종포질[癰腫胞疾]  피부에 홍종(紅腫)이 나고 화농(化膿)하는 독한 창병(瘡病), 혹은 그 고통을 이른다.
  • 수주[隋珠]  수주(隨珠).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 주(註)에 “수후(隨侯)가 다친 큰 뱀을 치료해 주었더니, 그 뱀이 강 속에서 큰 구슬을 물어다가 은혜를 갚았는데 이를 수후지주(隋侯之珠)라 한다.”고 하였다. 隋(수)는 수당(隋唐)시대 이전은 隨(수)로 표기해야 한다.
  • 위포여사[褘布與絲] 위(褘)가 순자(荀子)에는 잡(襍)으로 되어 있는데 잡포(雜布)를 말한다. 사(絲)는 비단이다.
  • 여주[閭姝]  고대 미인 이름, 혹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 미인이라고도 한다. 순자(荀子)에는 여추(閭娵)로 되어 있다.
  • 자사[子奢]  고대 정(鄭)나라 미인(美人) 이름이다. 순자(荀子) 주(註)에는 자도(子都)의 오기(誤記)라 하였다.
  • 모모[嫫母]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의하면 황제(黃帝) 때의 추녀(醜女)인데 매우 어질었다고 한다.

客說春申君曰: “湯以亳, 武王以鄗, 皆不過百里, 以有天下. 今孫子, 天下賢人也, 君籍之以百里勢, 臣竊以爲不便於君. 何如?” 春申君曰: “善.” 於是使人謝孫子. 孫子去之趙, 趙以爲上卿.
客又說春申君曰: “昔伊尹去夏入殷, 殷王而夏亡. 管仲去魯入齊, 魯弱而齊强. 夫賢者之所在, 其君未嘗不尊, 國未嘗不榮也. 今孫子, 天下賢人也, 君何辭之?” 春申君又曰: “善.” 於是使人請孫子於趙.
孫子爲書謝曰: “ ‘癘人憐王’, 此不恭之語也. 雖然, 不可不審察也. 此爲劫弑死亡之主言也. 夫人主年少而矜材, 無法術以知姦, 則大臣主斷國私, 以禁誅於己也, 故弑賢長而立幼弱, 廢正適而立不義.
春秋戒之曰: ‘ 楚王子圍聘於鄭, 未出竟, 聞王病, 反, 問疾, 遂以冠纓絞王, 殺之, 因自立也. 齊崔杼之妻美, 莊公通之. 崔杼帥其君黨而攻莊公. 請與分國, 崔杼不許; 欲自刃於廟, 崔杼不許. 莊公走出, 踰於外牆, 射中其股, 遂殺之, 而立其弟景公.’ 近代所見: 李兌用趙, 餓主父於沙丘, 百日而殺之; 淖齒用齊, 擢閔王之筋, 縣於其廟梁, 宿夕而死.
夫癘雖癰腫胞疾, 上比前世, 未至絞纓射股; 下比近代, 未至擢筋而餓死也. 夫劫弑死亡之主也, 心之憂勞, 形之困苦, 必甚於癘矣. 由此觀之, 癘雖憐王可也.“
因爲賦曰: “寶珍隋珠, 不知佩兮. 褘布與絲, 不知異兮. 閭妹子奢, 莫知媒兮. 嫫母求之, 又甚喜之兮. 以瞽爲明, 以聾爲聰, 以是爲非, 以吉爲凶. 嗚呼上天, 曷惟其同!” 詩曰: “上天甚神, 無自瘵也.” 【戰國策 : 楚策(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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