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銅板] 구리로 만든 판. 운판(雲板)이라고도 한다. 이를 두드려 소리를 낸다.
동판[同判] 동판(同判)은 통판(通判)을 가리키는데, 송(宋) 장헌태후(章獻太后) 아버지의 휘(諱)가 통(通)이었기 때문에 일찍이 통직랑(通直郞)을 동직랑(同直郞)으로 바꾸고 통주(通州)를 숭주(崇州)로 바꾸었으며 통판(通判)을 동판(同判)으로 바꾸었다. <齊東野語 避諱>
동판[桐板] 오동나무 판자이다. 예로부터 관재(棺材)로 많이 쓰였다.
동판도평의사사[同判都評議使司]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동판사(同判事)이다.
동팔참[東八站] 우리나라 사신이 중국에 왕래할 때 이용하였던 요로(要路)에 있던 8개의 역참으로, 요동(遼東)의 낭자산(狼子山), 첨수참(甜水站), 연산관(連山關), 통원보(通遠堡), 송참(松站), 봉성(鳳城), 탕참(湯站), 구련(九連) 등을 이르는데, 중국의 동쪽에 있으므로 이렇게 불렀다. <燕行錄選集 燕行錄日記 十二月 初一日> 그러나 기록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동팔참[東八站] 보통 압록강 접경 지역인 구련성(九連城)에서 시작해 ‘탕참(湯站)→책문(柵門)→봉황성(鳳凰城)→진동보(鎭東堡) 또는 송참(松站)→진이보(鎭夷堡) 또는 통원보(通遠堡)→연산관(連山關)→첨수참(甛水站)→요동(遼東)→십리보(十里堡)→심양’에 이르는 지역의 역참을 가리킨다. 동팔참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1712년에 북경에 다녀온 김창업은 봉황성에서 요동까지를 동팔참이라 불렀고, 1798년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서유문(徐有聞)은 책문에서 심양까지를 동팔참이라 불렀다. 또, 산천풍속총록(山川風俗總錄)에서는 “봉황성에서부터 요동까지는 동팔참이라 부른다.[自鳳凰城至遼東, 謂之東八站.]”라고 하여 동팔참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동팔참[東八站] 압록강(鴨綠江)에서 중국의 산해관(山海關) 사이에 있던 여덟 군데의 역참(驛站). 우리 나라의 사신이 중국에 왕래하는 데 중요한 요로(要路)였다. 요동에 있는 낭자산(狼子山)·첨수참(甜水站)·연산관(連山關)·통원보(通遠堡)·송참(松站)·봉성(鳳城)·탕참(湯站)·구련(九連) 등 8개의 역참인데, 중국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보통 ‘동팔참’이라고 불렀다.
동팔참[東八站] 원(元)나라 때 압록강과 요동 사이에 설치한 8개의 역참이다. 시대에 따라 명칭에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구련성(九連城)·탕참(湯站)·봉황성(鳳凰城)·송참(松站)·통원보(通遠堡)·연산관(連山關)·첨수참(甛水站)·두관참(頭關站)을 가리킨다.
동패서상[東敗西喪] 동쪽에서 패하고 서쪽에서 잃는다는 뜻으로,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실패하거나 망함을 이르는 말. 이르는 곳마다 실패(失敗)하거나 망함. 이르는 곳마다 실패하여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동편[彤編] 동관(彤管)과 같은 말로, 대롱이 붉게 장식된 붓을 가리킨다. 옛날에 여사(女史)가 이 붓으로 궁중의 정령(政令) 및 후비(后妃)의 일을 기록하였다. <詩經 邶風 靜女>
동편[彤編] 동편(彤編)은 동사(彤史)와 같은 말로, 궁중 생활의 기록을 맡은 여관(女官)이나 또는 그 기록을 뜻하는데, 전하여 현숙한 여인들의 선행에 대한 기록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 여자 사관(史官)들이 자루가 붉은 붓으로 궁중의 정령(政令)이나 훌륭한 여인의 언행 등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붉은 붓을 동관(彤管)이라 하고 이 붓으로 서술한 기록을 동편 또는 동사라 칭하게 되었다.
동편방[東偏房] 궁전의 동쪽에 딸려 있는 임금의 거실(居室). 간단한 정사를 이곳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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