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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평완씨[東平阮氏], 동평왕우[東平王宇], 동평왕창[東平王蒼], 동평호선[東平好善]


동평완[東平阮]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일찍이 동평상(東平相)이 되었던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三國志 卷21>

동평완씨[東平阮氏]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일찍이 동평상(東平相)이 되었던 완적(阮籍)을 가리킨다. <三國志 卷21>

동평왕[東平王]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여덟 째 아들로 동평왕에 봉해진 유창(劉蒼)을 가리킨다. 어머니는 광열왕후(光烈王后)이고, 명제(明帝)의 아우이다. 젊어서 경사(經史)를 좋아하였고 본래 지혜가 많았으며, 공경(公卿)과 더불어 관면(冠冕)·거복(車服)에 대한 제도를 의정(議定)하게 하였다. 유창은 사려가 깊고 위풍이 당당하여 명제(明帝)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명제가 그에게 가정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즐거운지에 대해 물었을 때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낙입니다.[爲善最樂]”라고 하였으며, 광무제(光武帝)가 수명(受命)하자 중흥송(中興頌)을 지어 올렸는데, 그 문장이 전아(典雅)하였다. 시호를 헌(憲)이라 하였다. <後漢書 卷42 光武十王列傳 東平憲王>

동평왕우[東平王宇]  한(漢)나라 선제(宣帝)의 아들인데, 감로(甘露) 2년(B.C. 52)에 동평왕(東平王)에 봉해졌다. 원제(元帝)가 승하하고 성제(成帝)가 즉위하자 내조(來朝)하였는데, 이때 글을 올려 제자(諸子)의 책들과 태사공(太史公)의 글을 하사해줄 것을 청하였다. 당시 성제(成帝)의 원구(元舅: 큰외삼촌)인 평양후(平陽侯) 왕봉(王鳳)이 대사마(大司馬)와 대장군(大將軍)의 직위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런 서책이 제후왕에게 있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반대하자 마침내 하사하지 않았다. <漢書 宣元六王傳>

동평왕창[東平王蒼]  후한(後漢)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여덟 째 아들이며, 명제(明帝)의 아우인유창(劉蒼)을 가리킨다. 그는 경술(經術)을 좋아하고 지혜가 있었으며, 명제(明帝)가 “요즈음 동평왕이 집에 있으면서 무엇이 가장 즐거운가?”라고 묻자, “선(善)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동평요복[東平腰腹]  동평(東平)의 허리. 임금을 잘 보필하는 인재라는 의미이다. 동한(東漢) 광무제(光武帝)의 여덟째 아들 동평왕(東平王)은 슬기로워 황제를 잘 보필하였는데, 평소에 도술(道術)을 좋아하여 머리를 길러 그 머리털이 허리를 10번 감았다고 한다.

동평헌왕[東平憲王]  동한(東漢) 광무제(光武帝)의 아들 유창(劉蒼)이 동평왕(東平王)에 봉해지고 죽은 뒤의 시호가 헌(憲)이기 때문에 그를 이렇게 칭한다. 그는 명제(明帝)를 보필하다가 명망이 높아지자 스스로 물러났으며, 장제(章帝) 때에는 지방에 있으면서 황제의 자문에 성실히 응하였다. 명제가 “집에 있으면서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가?”라고 묻자 “선행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爲善最樂]”라고 대답한 일화가 있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22 帝系部 宗子>

동평호선[東平好善]  동평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여덟째 아들로 동평왕(東平王)에 봉해진 유창(劉蒼)을 가리키는데, 천자(天子)가 일찍이 그에게 “집에 있으면서 무슨 일이 가장 즐거우냐.[處家何等最樂]”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선행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爲善最樂]”고 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42 光武十王列傳 東平憲王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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