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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표[銅標], 동표서랑[東漂西浪], 동표주[銅標柱], 동풍간려[東風干呂], 동풍기[東風起]


동표[銅標]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만든 구리 기둥의 푯말이다. 동주(銅柱)와 같은 말로, 국경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지금의 월남(越南)에 해당하는 교지국(交趾國)을 원정(遠征)한 뒤에, 두 개의 동주를 세워서 한(漢)나라와 남방 외국의 경계선을 표시하였는데, 이를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교남이 모두 평정되었다.[嶠南悉平]”라고 한 내용에 대한 주석에서 광주기(廣州記)를 인용하여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를 세워 한나라의 경계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也.]”라고 하였다.

동표서랑[東漂西浪]  동쪽으로 표류하고 서쪽으로 방랑한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님을 이르는 말이다.

동표주[銅標柱]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구리쇠로 만든 기둥이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현재의 월남(越南)에 해당하는 교지국(交趾國)을 정벌하고 동표주를 세웠다. 동표(銅標).

동풍[東風]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봄바람. 샛바람. 춘풍(春風). 이백(李白)의 시 춘일독작(春日獨酌)에 “봄바람에 훈기가 돌고, 물과 나무 봄빛에 무성해지네.[東風扇淑氣 水木榮春暉]”라고 하였다. 또, 두목(杜牧)의 시 적벽(赤壁)에 “동풍이 주유에게 불어주지 않았다면, 오나라 두 미녀 동작대 안에 갇혔을 테지.[東風不與周郞便 銅雀春深鎖二喬]”라고 하였는데,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이 연합하여 조조(曹操)의 수군을 적벽(赤壁)에서 화공으로 물리쳤을 때 제갈량(諸葛亮)이 조조(曹操)의 수군(水軍)을 불(火)로 공격하기 위해 동남풍(東南風)을 이용했다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실린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동풍간려[東風干呂]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 취굴주(聚窟洲)에 “천한(天漢) 3년에 월지국(越支國)에서 사자를 보내 향(香) 넉 냥과 맹수 1마리를 바치며 말하기를 ‘나라에 떳떳한 점괘가 있어 그 점괘에 「동풍(東風)이 율(律)에 들어와 100일을 그치지 않고, 청운(靑雲)이 여(呂)에 들어가 여러 달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까닭에 중국에 도를 좋아하는 임금이 있는 줄로 추측하였습니다.[國有常占, 東風入律, 百旬不休; 青雲干呂, 連月不㪚者, 當知中國時有好道之君.]’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동풍기[東風起]  도리(桃李)가 다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다시 피기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북쪽 동산에 동풍이 건듯 불어오니, 별의별 꽃들이 차례차례 피는구나.[北園東風起 雜花次第開]”라는 구절이 있고, 소식(蘇軾)의 시에 “수줍은 꽃의 자태 아쉬워하지 마소, 뒷날 동풍이 건듯 불어오리니.[幽姿不可惜 後日東風起]”라는 구절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9 北園·蘇東坡詩集 卷20 雨中看牧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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