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이사[東海而死] 전국 시대에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포위하자 위(魏)나라의 변사(辯士) 신원연(新垣衍)이 조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진왕(秦王)을 황제로 섬기도록 설득하였다. 그러자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이를 듣고서 말하기를, “저 진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하고 죄악으로써 천하에 정사를 편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뛰어들어 죽을지언정 차마 그 백성은 될 수가 없다.[彼卽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라고 하여 신원연을 감복시키고 진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傳>
동해이준[東海而準]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효(孝)란 세워 두면 하늘과 땅에 가득 차고, 펼쳐 두면 사해에 퍼지고, 후세에 전하면 아침저녁이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밀어서 동해에 이르게 하면 동해와 수준이 같아지고, 이것을 밀어서 서해에 이르게 하면 서해와 수준이 같아지고, 이것을 밀어서 남해에 이르게 하면 남해와 수준이 같아지고, 이것을 밀어서 북해에 이르게 하면 북해와 수준이 같아진다.[夫孝 置之而塞乎天地 溥之而橫乎四海 施諸後世而無朝夕 推而放諸東海而準 推而放諸西海而準 推而放諸南海而準 推而放諸北海而準]”라는 증자(曾子)의 말에서 보인다.
동해일부지치[東海一婦之致] 중국 한(漢) 나라 때 동해군(東海郡)에 어떤 효부(孝婦)가 있었는데, 자식도 없이 일찍 남편을 여의었으나 시어머니를 아주 잘 봉양하였고, 시어머니가 그를 재가시키려고 하였지만 끝내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며느리가 재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목을 매어 자살하였는데, 그곳 태수(太守)가 고의로 시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 여자를 처형하였다. 그러자 동해 지역이 3년 동안 큰 가뭄이 들었는데, 후임 태수가 부임하여 즉시 그 효부의 누명을 벗겨 주고, 소를 잡아 효부의 묘에 제사를 지내자 곧바로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說苑 貴德>
동해제련[東海齊連] 전국시대 장평전(長平戰) 이후 진(秦)이 조(趙) 나라 서울을 포위하자, 위(魏) 나라 임금은 신원연(新垣衍)을 조 나라에 보내어 진왕을 황제로 추대하도록 조왕을 설득하라고 시켰는데, 마침 조 나라에 와 있던 제(齊) 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신원연을 만나 그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여 이를 저지하였다. 이 때 노중련은 “만일 진 나라가 황제가 된다면 우리 선비와 인민들을 종으로 부릴 것이니, 나는 차라리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지언정 그의 백성이 될 수 없다.[彼卽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라 하였다 한다.
동해조오[東海釣鼇]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의 동쪽 바다에 큰 자라 15마리가 천제(天帝)의 명에 따라 5개의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었는데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그중 6마리를 낚아 가서 구워 먹었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남아의 큰 기개와 원대한 포부를 비유한 말이다. 이백(李白)이 일찍이 한 재상(宰相)을 알현하면서 해상조오객(海上釣鼇客)이라 자칭하자, 재상이 묻기를 “선생이 창해(滄海)에 임하여 큰 자라를 낚으려면 무엇을 낚시와 줄로 삼겠는가?” 하니, 이백이 말하기를 “무지개를 낚싯줄로 삼고, 밝은 달을 낚시로 삼겠소.[以虹霓爲絲 明月爲鉤]”라고 하기에 재상이 또 묻기를 “미끼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라고 하니, 이백이 말하기를 “천하에 의기 없는 장부를 미끼로 삼겠소.[以天下無義氣丈夫爲餌]”라고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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