戚戚苦無悰[척척고무종] 근심으로 괴로워 즐거움이 없으니
携手共行樂[휴수공행락] 손을 마주잡고 함께 나가 즐기려네
尋雲陟累榭[심운척루사] 구름 찾아 여러 층의 누대 오르고
隨山望菌閣[수산망균각] 산길 따라 층층이 누각을 바라보네
遠樹曖芊芊[원수애천천] 멀리 있는 나무는 침침히 우거지고
生煙紛漠漠[생연분막막] 피어나는 안개는 분분히 자욱하네
魚戲新荷動[어희신하동] 물고기 노는지 새 연잎이 움직이고
鳥散餘花落[조산여화락] 새 흩어져 나니 남은 꽃 떨어지네
不對芳春酒[부대방춘주] 향기로운 봄 술은 쳐다보지도 않고
還望靑山郭[환망청산곽] 다시 푸르른 산의 성곽만 바라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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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東園유동원(遊東田유동전) / 동원에서 놀다 / 謝脁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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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의 제목이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에는 유동원(遊東園)으로 되어 있고, 문선(文選) 22권에는 제목이 유동전(遊東田)으로 되어 있는데, 남사(南史) 제본기(齊本紀)에 “혜문태자(惠文太子)가 누관(樓館)을 종산(鍾山) 아래에 짓고 동전(東田)이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이선(李善)의 주(注)에는 “사조(謝脁)가 종산 동쪽에 별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노닐다가 돌아와서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사조[謝朓] 사현휘(謝玄暉). 시인(詩人). 중국(中國) 남조(南朝) 시대(時代)의 제(齊)나라 문학가로 사부(辭賦)와 산문(散文)에 고루 능했다. 자(字)는 현휘(玄暉)이고 진군(陳郡) 양하(陽夏: 현재의 하남河南 태강太康 부근) 사람이다. 부친이 산기시랑(散騎侍郞)을 지냈고 모친은 송(宋)나라 문제(文帝)의 딸 장성공주(長城公主)였다. 영명(永明) 원년(483), 해갈입사(解褐入仕)했다. 영명(永明) 전기와 중기 조정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위에 있으면서 걱정 없는 귀족생활을 즐겼다. 영명체(永明體)라 불리는 오언체(五言體)에 능했는데 이백(李白)이 찬미할 정도로 시의 기풍이 청신(淸新)고 사경(寫景)에 묘하였다. 산수시(山水詩)에 능하여 집안 사람인 사령운(謝靈運)과 함께 대소사(大小謝)로 병칭되었고, 경릉왕(竟陵王) 소자량(蕭子良)의 저택을 출입하는 경릉팔우(竟陵八友)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문학적 명성을 날렸다. 선성태수(宣城太守)를 지낸 그를 사람들이 사선성(謝宣城)으로 불렀다. 한때 정치적인 부침을 겪으면서도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을 지내며 집안과 개인이 모두 명성을 날리다가, 동혼후(東昏侯) 소보권(蕭寶卷)의 영원(永元) 원년(499), 시안왕(始安王) 소요광(蕭遙光)의 제위 찬탈 모의와 관련된 무고로 투옥된 뒤 옥사(獄死)하였다. 남제서(南齊書) 사조전(謝朓傳)에 “사조(謝脁)의 자(字)는 현휘(玄暉)로 어려서 학문을 좋아하여 좋은 이름이 있었고, 문장이 청아하고 아름다웠으며 초서(草書)와 예서(隷書)를 잘 쓰고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여, 심약(沈約)이 항상 ‘200년 이래로 이런 시는 없었다.’라고 말하다.[朓字玄暉, 少好學, 有美名, 文章淸麗, 善草隸, 長五言詩, 沈約常云: ‘二百年來無此詩也.’]”라고 하였고, 양서(梁書) 유견오전(庾肩吾傳)에서는 “양(梁) 간문제(簡文帝)가 상동왕(湘東王)에게 보낸 편지에서 ‘근래의 사조(謝脁), 심약(沈約)의 시와 임방(任昉), 육수(陸倕)의 산문은 실로 문장(文章)의 최고이고 글쓰기의 전범이다.’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그가 삼산(三山)에 올라 경읍(京邑)을 바라보고 지은 시[晩登三山還望京邑만등삼산환망경읍]는 너무도 훌륭하여 심약(沈約)이 일찍이 300년 내로 이런 시를 지은 이가 없다고 칭찬하였다는 고사가 있고, 이백(李白)의 시 제동계공유거(題東溪公幽居)에 “청산과 가까운 집 사조와 한가지요, 푸른 버들 드리운 문 도연명과 흡사하네[宅近靑山同謝朓 門垂碧柳似陶潛]”라고 하였다. 또, 이백(李白)의 시 금릉성서루월하음(金陵城西樓月下吟)에 “맑은 강물 조촐함이 표백한 명주 같다는 그 표현, 사현휘를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소이로다.[解道澄江淨如練, 令人長憶謝玄暉.]”라고 찬미(讚美)한 이야기는 유명(有名)하다. 또, 일찍이 선성태수(宣城太守)로 있을 적에 산 남쪽에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앞 산의 경치를 감상하였으므로, 후대에 이 누대를 사공루(謝公樓), 사루(謝樓)라 하고 그 산 이름을 사공산(謝公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고, 선성(宣城)에 있는 경정산(敬亭山)은 벌거벗어 초목도 없고 그렇다고 볼만한 산세가 있는 곳도 아닌데, 사조가 경정산에 대한 시 한 수를 짓자, 마침내 오악(五嶽)과 그 명성을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고사도 있다. 저서로는 사선성집(謝宣城集)이 있다.
- 척척[戚戚]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모양. 사귀어 지내는 사이가 매우 가까움. 서로 친밀한 모양.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 우수(憂愁)하며 슬퍼하는 모양. 걱정하다. 겁내다. 우울해하다. 근심으로 비통해하다. 참고로,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군자는 툭 트여 너르고 여유롭고, 소인은 속이 좁아 늘 걱정에 사로잡힌다.[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권58하 풍연열전(馮衍列傳)에 “자식들이 집안일을 하였고, 노년에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 곤궁하게 지냈으나, 큰 뜻이 있어 빈천을 근심하지 않았다.[兒女常自操井臼, 老竟逐之, 遂埳壈於時, 然有大志, 不戚戚於賤貧.]”라고 하였다. 풍연(馮衍)의 아내가 사납고 질투가 심하여 잉첩(媵妾)을 거느릴 수 없게 하였다고 한다.
- 척척[慼慼] 슬픈 모양. 마음에 시름이 많은 모양. 근심하고 슬퍼하는 모양. 근심하는 빛이 있음. 한유(韓愈)의 동생행(董生行)에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 밭 갈고, 밤이면 돌아와 옛사람의 책을 읽도다. 종일토록 쉬지 못하였으니, 혹은 산에서 나무하며, 혹은 물에서 고기 잡네.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당(堂)에 올라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스러워하지 않고, 처자식은 원망하지 않도다.[嗟哉董生, 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慼慼, 妻子不咨咨.]”라고 하였다.
- 휴수[携手] 손을 끌고. 손을 잡고. 서로 손을 잡다. 손에 손을 잡다. 함께 지내다. 서로 협력하다. 합작하다. 손을 마주 잡는다는 뜻으로 함께 감을 이르는 말이다. 시경(詩經)의 북풍(北風)은 백성들이 학정(虐政)을 피하여 고향을 등지고 떠나가면서 부른 노래인데, 거기에 “사랑하여 좋아하는 이와 손을 잡고 함께 타고 가리라.[惠而好我 携手同車]”라고 하였다. 또, 산당사고(山堂肆考) 137권에 “이릉(李陵)이 흉노(匈奴)에게 패전하여 투항하였다. 소무가 돌아갈 적에 이릉이 하량에 나와 전별의 시를 짓기를 ‘서로가 손잡고 다리에서 노닐더니, 떠도는 나그네 저녁에 어디 가나?[携手上河梁, 遊子暮何之.]’라고 하니, 소무가 화답하기를 ‘노란 고니 저 멀리 이별한 뒤에, 천 리에서 돌아보며 배회하겠지.[黃鵠一遠別, 千里顧徘徊.]’라고 하였다.”고 한 데서 보인다.
- 행락[行樂] 즐겁게 놀고 즐김.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지냄. 이백(李白)의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 제7수에 “찬 눈이 매화 속에 스러지고, 봄바람이 버들 위로 돌아왔네. 대궐 꾀꼬리 소리에 취한 듯하고, 처마 제비가 지저귀며 다시 나네. 긴긴 해가 노래 자리에 밝고, 새로 핀 꽃에 춤옷이 곱네. 저물녘에 의장대를 옮기니, 즐거운 놀이에 봄 햇살이 좋네.[寒雪梅中盡, 春風柳上歸. 宮鶯嬌欲醉, 簷燕語還飛. 遲日明歌席, 新花艶舞衣. 晩來移綵仗, 行樂好光輝.]”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누사[累榭] 중첩된 누각과 정자. 여러 층으로 된 높은 누각.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층층이 높이 솟은 누대는 높은 산을 마주하고 있다.[層臺累榭, 臨高山些.]’라고 하였는데, 왕일(王逸)은 ‘층(層)과 루(累)는 모두 겹의 뜻’이라고 주(注)하고 있다.
- 균각[菌閣] 화려한 누각. 버섯처럼 층층이 쌓인 누각. 향이 나는 나무로 만든 누각. 대자리. 초사(楚辭) 구회(九懷)에 균각혜루(菌閣蕙樓)라 하였는데 균(菌)과 혜(蕙)는 모두 향초(香草)이다. 또, 위(魏) 나라 명제(明帝) 때 장읍(張揖)의 박아(博雅)에 “균(菌)은 향풀이다. 그 잎이 혜란(蕙蘭)과 같다.[菌薰也. 其葉謂之蕙.]”라고 하였다. 또는 ‘고각(高閣)의 모양이 지균(芝菌)과 같은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 천천[芊芊] 초목이 무성한 모양. 초목이 매우 무성하다. 위장(韋莊)의 시 장안청명(長安淸明)에 “이른 아침 봄 꿈 깨는 비가 내렸어도, 견뎌낸 방초는 더욱 푸르고 푸르구나.[蚤是傷春夢雨天, 可堪芳草更芊芊.]”라고 하였고, 조위(曺偉)의 시 반월성(半月城)에 “신라 왕의 궁전은 먼지 되어 없어졌고, 푸른 풀 우거진 속에 사슴 노루들만 뛰노네.[羅王宮殿盡爲塵, 碧草芊芊走麋鹿.]”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막막[漠漠] 아득하고 조용한 모양. 구름·안개·연기 등이 자욱한 모양. 널리 깔려있는 모양. 초목이 널리 무성한 모양. 어둠침침한 모양.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멀다. 막막하다. 광활하여 아득하다. 소리가 없이 고요하다. 빽빽하게 들어차다. 짙게 덮이다. 어둑어둑하다. 우거지다. 흐릿하고 몽롱한 모습으로, 안개나 연기에 의하여 끝이 안 보이는 경치를 형용하는 말이다. 참고로, 구양수(歐陽修)의 시 진사(晉祠)에서 “진수가 지금은 병주로 흘러가, 벼꽃 핀 너른 들에 물을 대주네.[晉水今入并州裏, 稻花漠漠澆平田.]”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 “순식간에 바람 멎고 구름 까매지더니, 어둑하던 가을 하늘 깜깜해지네.[俄頃風定雲黑色, 秋天漠漠向昏黑.]”라고 하였고, 왕유(王維)의 시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에 “드넓은 논밭에선 백로가 날고, 그늘 짙은 여름 숲에선 꾀꼬리가 지저귀네.[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라고 하였고, 제기(齊己)의 시 잔춘연우중우작우고인(殘春連雨中偶作遇故人)에 “대문은 소리 없이 오랫동안 닫혀 있고, 하늘의 해는 느릿느릿 서쪽으로 지고 있네.[漠漠門長掩, 遲遲日又西.]”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신하[新荷] 새로 난 깨끗한 연(蓮)잎. 한대(漢代)의 악부 相和歌 江南편의 ‘魚戱蓮葉間’에서 취한 구절이다.
- 청산[靑山] 푸른 산. 청산(靑山)은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塗縣) 동남쪽 30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육조(六朝) 시대 제(齊)나라의 시인 사조(謝朓)가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을 때 이 산 남쪽에 높은 누대(樓臺)를 짓고 앞산의 경치를 감상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이 누대를 사공루(謝公樓), 사루(謝樓) 혹은 북루(北樓)라 하고 산 이름을 사공산(謝公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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