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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坐독좌 / 궂은 날 홀로 앉아서 / 徐居正서거정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찾아올 손 없이 홀로 앉아 있나니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빈 뜰이 비 올 듯이 어둠침침하네

魚搖荷葉動[어요하엽동]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 움직이고

鵲踏樹梢翻[작답수초번]   까치가 밟았나 나뭇가지 휘청이네

琴潤絃猶響[금윤현유향]   거문고는 눅눅해도 줄은 울려지고

爐寒火尙存[노한화상존]   화로는 차가워도 불씨는 남아있네

泥途妨出入[니도방출입]   진창이 나들이길 가로막고 있으니

終日可關門[종일가관문]   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을 수 있네

<獨坐독좌 / 혼자 앉아서 / 徐居正서거정>


  • 서거정[徐居正]  조선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조수(趙須)·유방선(柳方善) 등에게 배웠으며, 학문이 매우 넓어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복서(卜筮)·성명(性命)·풍수(風水)에까지 관통하였다. 1444년(세종26) 문과에 급제하고 1452년(문종2) 수양대군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인연을 맺어 세조의 집권 이후에도 계속 신임을 받았다. 1460년 사은사(謝恩使)로 중국에 갔을 때 그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하여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는 찬탄을 받았다. 6명의 왕을 섬기며 45년간 조정에 봉사했으며, 조선 초기 관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벼슬은 대제학(大提學)·좌찬성(左贊成)을 지냈다.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수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그 자신도 뛰어난 문학저술을 남겨 조선시대 관인문학이 절정을 이루었던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디딤돌을 이루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연주시격언해(聯珠詩格言解), 동문선(東文選) 등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왕명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언해했다. 그의 저술서로는 역대연표(歷代年表), 객관적 비평태도와 주체적 비평안(批評眼)을 확립하여 후대의 시화(詩話)에 큰 영향을 끼친 동인시화(東人詩話), 간추린 역사·제도·풍속 등을 서술한 필원잡기(筆苑雜記),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이 있으며, 관인의 부려호방(富麗豪放)한 시문이 다수 실린 사가집(四佳集) 등이 있다. ★
  • 수초[樹梢]  나무 꼭대기. 나무 끝. 나뭇가지의 끝. 옹도(雍陶)의 시 추거병중(秋居病中)에 “고요한 은거지에 누가 찾아왔는지, 해질녘 맑은 기운 나무 끝에 가득하네.[幽居悄悄何人到, 落日清凉满树梢.]”라고 하였다.
  • 니도[泥途]  진흙탕길. 질척질척한 길.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한 길. 진흙탕. 흙탕길. 진흙투성이가 되는 것. 천한 지위나 처지. 곤고한 경지. 비천한 지위. 재난과 고통을 비유한다. 더럽다. 천하다. 이도(泥塗).
  • 관문[關門]  문을 닫음. 문을 잠그다. 소식(蘇軾)의 시 북사(北寺)에 “호랑이 무서워 문을 일찍 잠갔는데, 사람 사는 마을 없어 쌀 얻기가 더디네.[畏虎關門早, 無村得米遲.]”라고 하였다.
  • 관문[關門]  국경이나 요새의 성문.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꼭 거쳐야 할 단계. 또는 중요한 고비. 다른 지역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지점.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세워 지나가는 사람이나 물품을 조사하는 곳. 지리적 또는 군사적 요충지에서 사람들의 출입을 관리하는 곳을 가리킨다.
  • 폐관니[閉關泥]  폐관니(閉關泥)는 관문을 막아 버리는 흙덩어리라는 뜻으로, 후한(後漢) 시대 외효(隗囂)의 부장(副將)인 왕원(王元)이 “제가 흙덩어리 하나를 가지고 대왕을 위해 동쪽으로 함곡관을 봉해 버리겠습니다.[元請以一丸泥, 爲大王, 東封凾谷關.]”라고 하였다. 흙덩어리란 지세(地勢)가 험준하여 강토를 지킬 만한 요새를 뜻한다. <後漢書 卷13 隗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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