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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董狐]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사관(史官)이다. 진 영공(晉靈公)이 조돈(趙盾)을 죽이려 하자 조돈이 도망갔다. 조돈의 아우 조천(趙穿)이 영공을 죽인 뒤에 조돈이 돌아오자, 동호가 “조돈이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趙盾弑其君.]”고 기록하여 조정에 보였다. 조돈이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강변하자, 동호가 말하기를 “그대는 일국의 정경으로 도망을 하면서 국경을 넘지도 않았고, 돌아와서는 역적을 토벌하지도 않았으니, 그대가 죽인 게 아니고 누구인가.[子爲正卿, 亡不越境, 反不討賊, 非子而誰?]”라고 하였다. 이 일과 관련하여 공자가 평하기를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었다. 그의 법대로 써서 숨기지 않았다.[董狐, 古之良史也. 書法不隱.]”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2年>

동호[董狐]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사관(史官)이다. 위세(威勢)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대로 직필(直筆)을 잘하기로 명성이 높았다. 주대(周代) 신유(辛有)의 후예로 태사(太史)의 직(職)을 세습하였다. 또한 사호(史狐)라고도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진(晉)나라 조천(趙穿)이 영공(靈公)을 도원(桃園)에서 시해하자, 진(晉)나라 정경(正卿)인 선자(宣子: 조돈趙盾)가 영공(靈公)이 자기를 살해하려고 하는 것을 피해 도망가다가 아직 진(晉)나라 국경에 있는 산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에 영공(靈公)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왔다. 태사(太史: 동호)는 조돈(趙盾)이 그 임금을 시해하였다.’고 적어 조정에 보이니, 선자(宣子)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나, 동호는 ‘당신은 한 나라의 정경(正卿)이면서 달아났지만 미처 국경을 넘지 못했고, 돌아와서도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으니,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조돈(趙盾)은 ‘아아! 시경(詩經)에 「나를 생각하는 자 너무 많아서 내 스스로 그 시름을 끼쳤도다.」라고 한 것은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라고 하였다. 공자(孔子)는 이에 대하여 ‘동호(董狐)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대로 적어서 조돈(趙盾)이 죄인임을 숨기지 않았다. 조선자(趙宣子: 趙盾)는 옛날의 훌륭한 대부였다. 법을 위하여 달게 악명(惡名)을 받았다. 아깝다! 그가 국경을 넘어가기만 했더라면 죄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동호[東湖]  사가독서(賜暇讀書)하던 동호의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이다. 1517년(중종12)에 두모포(豆毛浦)의 정자를 고쳐서 독서당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고 하였다.

동호[東湖]  중랑천과 한강 본류가 만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의 한강지역을 지칭한다.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 동호대교가 지나가는 한강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동호[東湖]  현재의 절강(浙江) 소흥(紹興) 성 밖 교외에 있는 호수를 가리킨다.

동호[彤毫]  동호란 붉은색 자루의 붓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붓을 뜻한다.

동호[銅虎]  동호부(銅虎符)의 준말. 한(漢)나라 때 지방 수령의 관인(官印)이다. 부절(符節).

동호[銅壺]  구리로 만든 옛날의 물시계이다. 누수(漏水)를 만들 때에 밑에 물 담는 것을 호(壺)라 하는데, 구리쇠로 만들었다. 구리로 병을 만들어 물을 채운 다음 아래 구멍을 열어 놓으면 양쪽 병으로 물이 떨어지는데, 오른쪽 병은 밤에 해당하고 왼쪽 병은 낮에 해당한다. <初學記 卷25 漏刻>

동호[東胡]  흉노(匈奴)의 동쪽 종족(種族). 춘추 시대부터 한(漢)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몽골고원의 동부에 살고 있던 유목민족이다. 삼국 때 조조(曹操)가 정벌한 오환(烏桓), 퉁구스족의 전신이다. 흉노(匈奴)의 동쪽에 살아 동호(東胡)라고 불렸다. 처음에 연(燕)나라 변경에 살다가 연(燕)나라에 패해 서요하(西遼河) 상류로 옮겨 살았다. 나중에 흉노에게 패하여 선비산(鮮卑山)과 오환산(烏桓山)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들을 각각 선비(鮮卑), 오환(烏桓)이라고 불렀다. <史記 卷110 匈奴列傳> 두보(杜甫)의 시 북정(北征)에 “동호의 반적들 진압되지 않아서, 신하된 자 두보의 분한 마음 절절하네.[東胡反未已, 臣甫憤所切.]”라고 하였다.

동호[東胡]  동쪽의 오랑캐로, 흔히 거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동호[東戶]  상고 시대 전설상의 임금인 동호계자(東戶季子)의 준말이다. 그가 다스리던 세상에는 도덕이 확립되고 경제가 번성하였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권10 무칭훈(繆稱訓)에 “옛날 동호계자(東戶季子)의 치세 때에는 길에 떨어진 물건도 사람들이 줍지 않았으며, 농기구나 먹고 남은 양식 등도 모두 밭머리에 그냥 놔두고 돌아올 정도였다. 군자도 소인도, 각각 지분(持分)을 지켜 나갔던 것이다.[昔東戶季子之世, 道路不拾遺, 耒耜餘糧宿諸畝首. 使君子小人. 各得其宜也.]”라고 하였다. 동한(東漢) 고유(高誘)의 주(註)에 “동호계자는 옛날의 인군이다.[東戶季子, 古之人君.]”라고 하였다.

동호[童號]  자는 정서(廷瑞). 명(明) 나라 홍치(弘治) 연간에 공부 시랑(工部侍郞)을 지냈고, 저서에는 고매화시집(古梅花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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