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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남위[董狐南威], 동호당[東湖堂],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 동호동사[同號同辭]


동호기무식[侗乎其無識]  멍하게 아는 것이 없는 듯함. 장자(莊子) 제20편 산목(山木)에 “저는 멍하게 아는 것이 없는 듯, 아무 생각 없이 어리석은 듯하며 황홀한 가운데 가는 사람을 보내고 오는 사람을 맞이함에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아서 사나운 백성들은 사나운 채로 맡겨 두고 잘 구부리고 따르는 사람은 따르는 대로 내맡겨 두어 그들 스스로 이르는 것을 따랐을 뿐입니다.[侗乎其無識, 儻乎其怠疑 ; 萃乎芒乎, 其送往而迎來 ; 來者勿禁, 往者勿止 ; 從其彊梁, 隨其曲傅, 因其自窮.]”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호남위[董狐南威]  동호(董狐)와 남위(南威). 모두 춘추 시대의 직필(直筆)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진(晉)나라의 태사(太史) 동호가 조순(趙盾)이 임금인 영공(靈公)을 시해한 일을 직필한 일이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 남위(南威)는 제(齊)나라의 사관(史官)인 남사(南事)를 이른다. 제나라 최서(崔抒)가 그 임금을 시해하자 태사(太史)가 그 사실을 기록하니 죽였다. 그 아우가 또 이어 기록하니 죽였고, 셋째 아우가 기록하니 그대로 두었다. 남사는 태사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달려오다가 이미 기록했다는 말을 듣고 돌아갔다.

동호당[東湖堂]  1426년(세종8)에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는데, 이때에는 집이나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게 하였다. 그 뒤 성종 때 마포(麻浦)의 한강 가에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개설하였고, 중종 때에는 동대문 근처의 정업원(淨業院)을 독서당으로 만들었다가 1517년(중종12)에 두모포(豆毛浦)의 정자를 고쳐서 독서당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동호독서당(南湖讀書堂)이라고 하였다.

동호대순[同乎大順]  위대한 순응에 동화함. 저절로 자연의 도(道)에 순응(順應)하여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완전하게 합일이 이루어지면 마치 어리석은 듯하고 어두운 듯하니,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한다. 위대한 순응에 동화하는 것이다.[其合緍緍, 若愚若昏, 是谓玄德, 同乎大順.]”라고 하였다.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  1426년(세종8)에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는데, 이때에는 집이나 산사(山寺)에서 글을 읽게 하였다. 그 뒤 성종 때 마포(麻浦)의 한강 가에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개설하였고, 중종 때에는 동대문 근처의 정업원(淨業院)을 독서당으로 만들었다가 1517년(중종12)에 두모포(豆毛浦)의 정자를 고쳐서 독서당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고 하였다.

동호동사[同號同辭]  춘추필법(春秋筆法)의 하나로, 호칭과 표현은 일반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적용해서 쓰는 것을 말한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은공(隱公) 7년 조에 “춘추의 체제를 보면, 귀군(貴君)이나 천군(賤君)이나 똑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혐의로 여기지 않고, 호인(好人)이나 악인(惡人)이나 똑같은 문사를 사용하는 것을 혐의로 여기지 않는다.[春秋貴賤不嫌同號 美惡不嫌同辭]”라는 말이 나온다.

동호류속 합호오세[同乎流俗 合乎汚世]  맹자(孟子)가 일찍이 향원(鄕原)의 인간됨을 일러 “유행하는 풍속과 어울리고, 더러운 세상과 부합하여, 처신은 흡사 충신한 사람 같고, 행위는 마치 청렴결백한 것 같아서,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여 그와 더불어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그를 덕의 적이라고 하는 것이다.[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下>

동호린봉[東湖麟鳳]  동호(東湖)는 독서당의 별칭이고, 인봉(麟鳳)은 현인들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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