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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간[蠹簡], 두간용광[斗間龍光], 두간의[竇諫議], 두간제식[豆間祭食], 두강[頭綱], 두강주[杜康酒]


두간[蠹簡]  두간(蠹簡)은 좀먹은 죽간이라는 말로, 낡은 책을 의미한다.

두간용광[斗間龍光]  진(晉) 나라 무제(武帝) 때, 하늘의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가 뻗치는 것을 보고,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명검(名劍)을 얻었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36>

두간의[竇諫議]  두 간의(竇諫議)는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 때 어양(漁陽) 사람인 두우균(竇禹鈞)을 이른다. 사학(詞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후주(後周)에서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지냈다. 후덕한 인물로 선행을 많이 하였는데 아들 다섯 명이 연이어 등과하자, 세간에서 이는 두우균이 음덕을 쌓은 공덕이라고 칭송하며, 이들을 ‘연산두씨오룡(燕山竇氏五龍)’이라 불렀다. 두우균이 하루는 연경사(延慶寺)라는 사찰에 갔다가 은 2백 냥과 금 3십 냥을 줍고는, 다음 날 다시 연경사로 가서 돈을 잃어버린 사람을 수소문하여 찾았는데, 이것이 사형에 처하게 된 아버지를 속죄시킬 돈임을 알고는 자신의 돈을 더 보태어 구제해 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宋史 卷263 竇儀列傳> <范文正别集 巻4 竇諫議録>

두간제식[豆間祭食]  두간(豆間)에 제식(祭食)함. 식사 때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상 위에 있는 음식을 조금씩 덜어 내어 두간(豆間)에 놓고서 선대(先代) 때 처음으로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제사 지냈는데, 이것을 제식(祭食)이라 한다. 두간(豆間)은 자리를 깐 곳과 흙바닥을 그대로 둔 곳의 사이이다.

두감[痘疳]  두창(痘瘡)을 앓는 중에 감증(疳症)이 동반된 것이다.

두강[斗江]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지역의 강이다.

두강[頭綱]  경칩(驚蟄) 또는 청명(淸明) 전에 만든,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만들어진 공차(貢茶)를 가리킨다. 북원다록(北苑茶錄)에 “백차(白茶)와 승설(勝雪)은 경칩(驚蟄) 전에 따서 경사(京師)에 올라오므로 두강옥아(頭綱玉芽)라 일렀다.[白茶與勝雪, 自驚蟄前興役, 浹日乃成, 飛騎疾馳, 不出仲春已至京師, 號為頭綱玉芽.]”라고 하였다. 웅번(熊蕃)의 선화북원공다록(宣和北苑貢茶錄)에 “해마다 십여 개의 강(綱)을 나누고 백아차와 승설차는 경칩 전에 일을 시작해서 열흘 안에 만드는데, 사월을 넘기지 않고 빠른 말로 도성에 이르게 운송하는 것을 ‘두강’이라 불렀다.[每歲分十餘綱, 惟白芽與勝雪, 自驚蟄前興役, 浹日乃成, 飛騎疾馳, 不出仲春, 已至京師, 號爲頭綱.]”라고 하였다. 소식(蘇軾)은 제문공시권(題汶公詩卷)에서 “조정에서 나눠준 것을 받은 병차 여덟 덩어리, 즉 이 붉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待賜頭綱八餠茶, 卽今粗色紅綾袋餠八者是也.]”라고 하였다.

두강[杜康]  두강은 중국의 황제(黃帝) 때의 재인(宰人)으로 최초로 술을 빚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인데, 후대에는 술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에 “슬퍼 탄식하여도 시름 더욱 깊어지니 근심스런 생각 잊기 어려워라. 어떻게 시름 풀어볼까 오직 두강뿐이로다.[慨當以慷, 憂思難忘. 何以解憂, 唯有杜康.]”라고 하였다.

두강생[杜康生]  중국의 황제(黃帝) 때의 재인(宰人)으로, 맨 처음 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후대에는 술의 이칭으로 쓰였다.

두강주[杜康酒]  두강(杜康)의 술. 두강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술을 보통 두주(杜酒)라고 부르게 되었다. 찹쌀로 한 번 덧술하여 만드는 술. 단시일 내 숙성되는 속성 주류이다. 옛날 중국에 두강(杜康)이라는 술을 잘 빚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방법으로 술을 빚는다 하여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두강주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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