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과[豆顆] 콩알. 해당화 봉오리.
두관[杜觀] 두보(杜甫)의 아우 두관(杜觀)을 가리킨다. 두보에게는 두영(杜穎), 두관(杜觀), 두풍(杜豊), 두점(杜占) 등 네 명의 아우가 있었는데, 안사의 난이 일어났을 때, 막내 점만 장형 두보를 따라 촉(蜀)으로 갔을 뿐, 나머지 동생 셋은 전란 중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두광국[竇廣國] 두광국(竇廣國)은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비(妃)인 두 황후(竇皇後)의 동생으로 자(字)는 소군(小君)이다. 그의 형은 두장군(竇長君)이다. 어려서 남의 집에 팔려가 살았으나 누이가 황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호소하여 형인 두장군과 함께 토지와 집을 하사받아 장안(長安)에서 살게 되자, 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이 외척 세력을 두려워하여 “두 형제가 출신이 미천하여 예의도 없고 학문도 없으니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되고 절행과 학문이 있는 스승을 가려 함께 살게 하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문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형제가 모두 근신(勤愼)하고 겸양(謙讓)한 군자가 되었다. 문제(文帝)의 문제는 외척(外戚)이 국정에 간여하는 것을 꺼려 그에게 재물을 많이 주어 장안(長安)에 살게 하고 제후로 봉하지 않았고 경제 때에 이르러서야 장무후(章武侯)에 봉해 주었다. <漢書 卷97上 外戚傳 孝文竇皇后>
두광국[竇廣國] 두광국(竇廣國)은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후비(后妃)인 두황후(竇皇后)의 남동생이자 경제(景帝)의 외삼촌이다. 자는 소군(小君)이다. 두광국은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팔려 갔다. 산에 들어가 땔나무를 하다가 언덕 아래에 누웠는데, 언덕이 무너져 100여 명이 압사하였으나 두광국 만이 벗어났고, 점을 쳐보니 후(侯)가 되리라는 점괘가 나왔다. 두광국이 주인을 따라 장안(長安)으로 와서 누이가 황후로 등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궁궐로 찾아가 어려서 겪은 일을 두루 진술하여 두 황후와 재회하니, 문제는 집과 재물을 하사하여 장안에서 함께 살게 하였다. 뒤에 과연 후(侯)에 봉해졌다.<史記 卷49 外戚世家>
두광국[竇廣國] 서한 문제(西漢文帝)의 황후인 두씨(竇氏)의 동생으로, 늘 검소하고 겸손하며 자신이 부귀하다고 해서 남에게 교만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퇴양군자(退壤君子)로 일컬었다. 문제는 어질고 덕행이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승상에 임명하고 싶었지만, 사사로운 정을 베푼다는 오해를 살까 봐 결국 그만두었다고 한다. <史記 卷96 張丞相列傳>
두광국[竇廣國] 한(漢)나라 관진(觀津) 사람으로 자(字)는 소군(少君)이다. 한(漢) 문제(文帝)의 비 두 황후(竇皇后) 동생이자, 경제(景帝)의 외삼촌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여 남의 집에 팔려가 살았는데 두 황후가 섰다는 말을 듣고 상서(上書)하여 자신이 두 황후의 형제간임을 아뢰니, 나라에서 그 형 두장군(竇長君)과 함께 살도록 장안(長安)에 전택(田宅)을 잘 마련해 주었다. 주발(周勃)·관영(觀嬰) 등이 ‘두 사람은 출신 성분이 미천하니 스승을 선택하여 가르쳐야 된다.’고 건의하여 이에 절행(節行)이 있는 선비를 골라 함께 살도록 하니 나중에는 덕성을 갖춘 군자(君子)가 되었다. 경제(景帝)가 등극하자 장무후(章武侯)로 봉하였다. 문제(文帝)가 두광국이 현명하다고 여겨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이 사적인 처사라고 여길까 염려하여 오래도록 생각한 끝에 포기하고 신도가(申屠嘉)를 정승으로 삼았다. <漢書 卷42 申屠嘉傳>
두광정[杜光庭] 당(唐) 말 오대(五代)의 도사(道士)이다.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도교를 공부하여 도사가 되었다. 전촉(前蜀)을 세운 왕건(王建)에게 중용되어 호부시랑(戶部侍郞)까지 벼슬이 오르기도 했다. 881년 황제의 서천(西遷)을 따라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다. 왕건(王建)이 사천 땅에서 독립하여 전촉(前蜀)을 세우자 그에 의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간의대부(諫議大夫)로 중용되었다. 호부시랑(戶部侍郞)에까지 벼슬이 올랐으나 신왕 즉위 후로 청성산(靑城山) 백운계곡(白雲溪谷)에 은거하여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도교의 완성에 중요한 공로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는 간서(諫書) 100권, 녹이기(錄異記) 10권, 태상동연신주경(太上洞淵神呪經), 도문과범대전집(道門科範大全集), 태상로군설상청쟁경주(太上老君說常淸爭經注) 등이 있다.
두괴[斗魁] 북두칠성(北斗七星) 가운데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별인 천추(天樞)·천선(天璇)·천기(天璣)·천권(天權)을 이른다. 북두칠성의 범칭으로도 쓰인다. 다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까지는 두표(斗杓) 혹은 두표(斗標)라고 한다. 괴(魁)는 머리이고, 표(杓)는 꼬리이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 영설증장적(詠雪贈張籍)에 “눈이 많이 내리면 계곡을 메울까 걱정이요, 눈이 높이 쌓이면 두괴에 닿을까 걱정일세.[厚慮塡溟壑 高愁㨖斗魁]”라고 하였다.
두괴[竇瓌] 후한(後漢) 장제(章帝)의 비 두 황후(竇皇后)의 남동생이다.
두괴성[斗魁星] 북두칠성의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별을 말한다. 다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까지는 표(杓) 혹은 표(標)라고 한다. 괴(魁)는 머리이고, 표(杓)는 꼬리이다.
두괵[頭馘] 머리와 자른 귀.
두굉[杜紘]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 사람이다. 자는 군장(君章)이다. 벼슬은 영년 영(永年令)을 거쳐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을 지냈으며, 경례(經禮)에 밝았다. 저서에는 주의(奏議), 역설(易說) 등이 있다. <宋史 卷330 杜紘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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