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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교[杜喬], 두교[杜橋], 두구[豆區], 두구[荳蔲], 두구과족[杜口裹足], 두구치수[豆區錙銖]


두교[杜喬]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자는 숙영(叔榮)이다. 순제 때 대사농(大司農)이 되었다. 양기(梁冀)가 질제(質帝)를 시해하고 환제(桓帝)를 세우자, 이고(李固)와 함께 청하왕(淸河王) 산(蒜)을 세우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다. 환제가 양기의 다섯 자제와 중상시(中常侍) 등에게도 봉작(封爵)을 내리자, 그들은 공이 없으니 부당하다고 절간(切諫)하였는데, 이 일로 양기 무리에게 참소를 받아 옥사하였다. <後漢書 卷63 杜喬列傳>

두교[杜橋]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이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두교가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때 궁중에 상례를 돕는 이가 없자 사람들이 ‘상례를 소략하게 한다.’고 하였다.[杜橋之母之喪 宮中無相 以爲沽也]”라고 하였다.

두구[豆區]  두와 구는 모두 용량을 재는 단위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3년 조에 보면 “제(齊)나라에 두량이 네 종류가 있는데 두·구·부·종(豆區釜鍾)이니, 4승이 1두가 되고 4두는 1구가 되며 4구는 1부가 되고 10부는 1종이 된다.”라고 하였다.

두구[斗口]  북두칠성의 자루 부분인 제5성부터 7성까지이다.

두구[荳蔲]  두구(荳蔲)는 육두구(肉荳蔲)라고도 하는 풀로, 엷은 황색 꽃이 피고 열매는 약용으로 쓰인다. 중국의 남방 사람들은 이 풀의 꽃이 활짝 피지 않고 봉오리만 맺혀 있는 것을 함태화(含胎花)라 하여 어린 처녀가 아기를 밴 것에 비유하는데, 이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처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두목(杜牧)의 시 증별(贈別)에 “예쁘고도 간드러져라 십삼 세 남짓한 아가씨여, 이월 초의 가냘픈 두구의 가지로다.[娉娉嫋嫋十三餘 荳蔻梢頭二月初]” 하였으므로, 이후 날씬하고 가냘픈 아가씨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두구[荳蔲]  두구(荳蔲)는 육두구과(肉荳蔲科)에 속하는 상록 교목이다. 약용 또는 조미료로 쓰인다. 파초 비슷하게 생긴 다년생 초본으로 초여름에 담황색 꽃을 피우고 향기가 있으며 열매는 향미(香味)가 있고 약용(藥用)으로 쓴다. 이 꽃이 활짝 피기 전의 불룩한 상태를 함태화(含胎花)라고 하기 때문에, 나이 어린 아가씨가 임신(妊娠)한 모습에 비유하기도 한다.

두구과족[杜口裹足]  입을 다물고 발을 싸맴.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을 동여 매 걷지도 않음. 마음속에 의견이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무슨 일에 함께 종사하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권79 범수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에 “범수가 진(秦) 소왕(昭王)을 만나니, 소왕이 세 번이나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소왕이 네 번째로 무릎을 꿇고 청하자, 범수는 여러 가지 간언(諫言)을 하면서 ‘만약 신(臣)이 기자(箕子)와 같은 행동을 해서라도 어진 군주에게 보탬이 된다면, 이는 신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다만 신이 두려워하는 바는 제가 죽은 뒤에 천하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고도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로 인해서 입을 다물고 발을 싸맨 채 아무도 진나라로 오려 하지 않을까[杜口裹足 莫敢向秦] 염려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는 데서 보인다.

두구초두이월초[豆蔲梢頭二月初]  당(唐) 나라 두목(杜牧)의 시 두증별(贈別)에 “아리따운 아가씨 십삼여 세에, 두구의 초두가 두 달째라네.[娉娉嫋嫋十三餘 荳蔲梢頭二月初]”라 하였다. 두구(豆蔲)는 다년생초(多年生草)에 속하는 식물인데, 초여름에 꽃을 피우며 열매는 향미(香味)가 있고 약용(藥用)으로도 쓸 수 있다. 이월초(二月初)는 두구(豆蔲)가 꽃봉오리인 상태로 아직 꽃을 피우기 전인데, 옛날에는 이것으로 성년이 못된 여자아이를 비유하여 열서너 살의 여자를 두구년화(豆蔲年華)라고 불렀다. 초과(草果)라고도 한다.

두구치수[豆區錙銖]  두(豆)와 구(區)와 치수(錙銖). 두구치수(豆區錙銖)는 양을 헤아리는 단위로, 4승이 1두이고 4두가 1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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