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두극소주[斗極所周], 두근[杜根], 두급[斗級], 두기[杜機], 두기[豆萁], 두기[杜畿], 두기[杜夔]


두극소주[斗極所周]  두극(斗極)이 중심이 되어 천체가 운행함을 말한다. 두극(斗極)은 북두칠성의 손잡이 부분의 세 별, 즉 두병(斗柄)이다. 고대인들은 이 두병(斗柄)이 천체 운행의 축이 되어 천체가 도는 것으로 보았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에 “북두(北斗) 자리의 일곱 별은, 이른바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살펴 칠정(七政)을 바로잡는다는 별이다. 표(杓)는 각수(角宿)를 끌고, 형(衡)은 두수(斗宿)를 마주하며, 괴(魁)는 삼수(參宿)의 머리를 베고 있다. 황혼에 인(寅)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표(杓)인데, 표(杓)의 분야(分野)는 화산(華山) 서남 지역이다. 한밤중에 인(寅)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형(衡)인데, 형(衡)의 분야(分野)는 중주(中州)의 황하와 제수(濟水) 사이 지역이다. 새벽에 인(寅)을 가리키는 것은 괴(魁)인데, 괴(魁)의 분야(分野)는 동해(東海)에서 태산(泰山)에 이르는 동북 지역이다. 북두(北斗) 자리는 천제(天帝)가 타는 수레로서 하늘의 정중앙을 운행하면서 사방을 통제한다. 음양(陰陽)을 나누고 사계절을 정하고 오행(五行)을 조절하며 절기를 바꾸고 제기(諸紀: 세歲, 일日, 월月, 성신星辰, 역수曆數 등의 법도)를 확정 짓는 것이 모두 북두(北斗) 자리에 연계된다.”라고 하였다.

두근[杜根]  동한(東漢: 후한後漢) 말기 정릉(定陵) 사람으로 한 안제(漢安帝) 때 태후 등씨(鄧氏)가 섭정을 하는 동안 외척이 권세를 휘두르고 환관들이 전횡을 일삼자 태후가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등태후(鄧太后)가 노하여 두근을 비단 주머니에 싸서 때려죽이려고 하였다. 두근은 형 집행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後漢書 杜根列傳>

두급[斗級]  세곡을 징수할 때 마질하는 일을 맡은 관사의 역원(役員)이며, 창고의 쌀을 출납하는 인부이다.

두기[杜機]  두기(杜機)는 두덕기(杜德機)의 줄임말이다. 덕을 막는다는 것은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경지를 뜻한다. 생기(生機)를 완전히 잃어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모습. 마음을 안으로 수렴하여 부동(不動)의 경지를 견지함.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정(鄭)나라 신무(神巫) 계함(季咸)이 열자(列子)의 스승인 호자(壺子)의 관상을 보고는 축축하게 젖은 재[濕灰]의 형상을 보았다면서 ‘그대 스승은 이제 죽었다.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子之先生死矣 弗活矣]’라고 하자, 열자가 눈물을 흘리며 호자에게 그 말을 전하니, 호자가 ‘아까는 내가 그에게 대지(大地)의 형상을 보여 주었다. 멍한 상태로 움직이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았으니, 그는 아마도 나의 생기가 막힌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鄕吾示之以地文 萌乎不震不正 是殆見吾杜德機也]’라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두기[杜杞]  두기(杜杞)는 송(宋)나라 사람으로 자는 위장(偉長)이며 상주(常州) 무석(無錫) 사람이다. 양절전운사(兩浙轉運使)를 거쳐 천장각대제(天章閣待制)가 되었다. 기억력이 좋고 서책을 두루 읽었으며 음양술수에서 통달하여 스스로 “나는 46세에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대로 되었다. <宋史 卷300 杜杞列傳>

두기[斗氣]  남두성(南斗星)의 기(氣)를 지칭한 것인데, 보통 두우(斗牛)로 많이 쓴다.

두기[斗箕]  두 별의 이름이다. 이 두 별의 사이는 은하(銀河)가 가로놓였으므로, 간격이 멀리 떨어져 있어 왕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을 비유한다.

두기[豆萁]  콩과 콩깍지. 형제끼리 화목하지 못하고 상대를 해치려 하는 것을 이른다. 조식(曹植)의 칠보시(七步詩)에 “콩 삶는데 콩대 태우니, 콩이 솥 가운데에서 울고 있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났는데, 서로 볶기를 어이 그리 급하게 하는가.[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根同生, 相煎何太急.]”라고 하였다. 이 시는 조조(曹操)의 아들인 위 문제(魏文帝)가 아우인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으로 하여금 입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詩)를 완성하게 하고 만일 시를 짓지 못하면 큰 벌[死刑]을 시행하겠다고 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지었기 때문에 칠보시(七步詩)라고 제목한 것이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시로, 민간에서 애송되어 구전하는 과정에서 자구(字句)에 변화가 생겨 수록된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두기[豆萁]  중국 삼국(三國) 시대 위 문제(魏文帝)가 자기 아우인 조식(曹植)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사이에 시(詩)를 짓게 하면서 그 사이에 시를 짓지 못하면 큰 처벌을 내리겠다고 하자, 조식이 바로 시(칠보시七步詩)를 지어 읊기를 “콩을 달여서 국을 끓이고, 콩을 걸러서 즙을 만드니, 콩대는 솥 밑에서 활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어대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 왜 그리 급하게 서로 볶아대는고.[煮豆持作羹 漉菽以爲汁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콩대와 콩은 곧 골육상잔(骨肉相殘)을 의미한다. <世說新語 文學>

두기[杜畿]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 두릉(杜陵) 사람으로 자는 백후(伯候), 시호는 대(戴)이다. 건안(建安: 후한헌제後漢獻帝의 연호) 연간에 하동태수(河東太守)가 되어 농상(農桑)과 무사(武事)를 권장하고 학교를 일으키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어 치적이 높았고, 16년의 재임 기간 동안 고과(考課)가 항상 천하제일로 꼽혔으며, 문제(文帝) 때 상서복야(尙書僕射)에 이르렀다. 조조(曹操)가 원정(遠征)할 때마다 거의 대부분의 물자를 하동에서 조달한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16 魏書 杜畿傳>

두기[杜畿]  두기(杜畿)는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대신으로, 친구였던 이회(李恢)의 아들 이풍(李豐)을 보고 “효의(孝懿)가 아들이 없으니 장차 집안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풍은 위 제왕(魏齊王) 가평(嘉平) 4년(252)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는데, 사마사(司馬師)가 집정(執政)할 때 사마사를 죽이고자 모의하였다가 피살되었다. 효의(孝懿)는 이회의 자(字)이다. <資治通鑑 卷76 魏紀8 高貴鄕公 上 正元 元年>

두기[杜夔]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하남(河南) 사람으로 자는 공량(公良)이다. 음악가로 음률(音律)에 정통하였다. 한(漢) 나라 영제(靈帝) 때 아악랑(雅樂郞)을 지내고,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탁하였는데 뒤에 조조(曹操)에게 귀순하여 위(魏)의 태악령(太樂令)에 이르렀다. 위 문제(魏文帝)가 빈객 가운데서 생(生)과 금(琴)을 연주하게 하였는데 두기는 난색을 지었다. 문제는 이를 좋아하지 않아 두기를 내쫓아 버렸다. 종률(鍾律)과 구악(舊樂)에 뛰어났다. <三國志 卷29 魏書 杜夔傳>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