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다촌[杜茶村] 다촌(杜茶)은 청(淸) 나라 두준(杜濬)의 호이다. 명말(明末)에 청(淸)에 벼슬하지 않고 금릉에 은거하였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에는 변아당집(變雅堂集)이 있다.
두단물[頭段物] 두단(頭段)은 고귀(高貴)한 가문(家門)을 이른다.
두담[斗膽] 담이 매우 큼을 뜻한다. 두담(斗膽)은 담 즉 쓸개의 크기가 말만한 것으로, 옛날에는 담이 크면 담력이 있어 두려움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대장군이었던 강유가 제갈량(諸葛亮)의 뒤를 이어 아홉 차례나 중원(中原)을 공략하였는데, 나중에 그가 위(魏)나라에 잡혀 죽을 적에 배를 갈라 보니 쓸개가 말 만큼 컸다[維死時見剖, 膽如斗大.]는 기록이 전한다. <三國志 卷44 蜀書 姜維傳> 담대(膽大).
두당[頭當] 당두(當頭)라는 말과 같으니, 정처(定處)의 의미이다.
두당양[杜當陽] 두 당양(杜當陽)은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진 진(晉) 나라 두예(杜預)를 가리킨다. 진나라 경조(京兆) 두릉(杜陵) 사람으로 자는 원개(元凱)인데, 하남 윤(河南尹)과 탁지 상서(度支尙書)를 역임하였다. 오나라 정벌을 도와 양호의 뒤를 이어 양양에서 도독형주제군사로 있었다. 태강(太康) 1년(280)에는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평정하고 그 공로로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졌다. 문제(文帝)의 누이동생인 고륙공주(高陸公主)와 결혼했는데, 청빈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도록 유명(遺命)을 남겼다. <晉書 卷34 杜預列傳>
두대[斗大] 크기가 말만하다. 작은 물체에 대해 그 크기를 형용하는 것과 큰 물체에 대해 그 작기를 형용하는 두 경우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두대[斗大] 한 말 크기를 말하는데, 큰 것에 비해 한 말이 작다는 뜻으로 작은 고을을 의미한다.
두대경[杜臺卿] 수(隋)나라 사람으로, 자가 소산(少山)이며,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저작랑(著作郞)으로 있으면서 옥촉보전(玉燭寶典), 제기(齊記) 등을 저술하였다.
두대량지문[杜大梁之門] 대량(大梁)은 위 혜왕(魏惠王)이 도읍(都邑)한 곳으로 지금의 진류(陳留) 준의(浚儀) 서쪽 대량성(大梁城)이 이곳이다.
두대립자일탁오[頭戴笠子日卓午] 이백(李白)이 산길에서 두보(杜甫)를 만나 그를 기롱한 시에 “반과산 꼭대기에서 두보를 만났는데, 머리엔 대삿갓 썼고 해는 마침 정오였네. 묻노니 작별한 뒤로 어찌 그리 수척해졌나, 모두가 전부터 괴로이 시 읊조린 탓이라네.[飯顆山頭逢杜甫, 頭戴笠子日卓午. 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25 補遺 戱贈杜甫>
두대발이구함치[頭戴髮而口含齒]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7척의 몸뚱이에 손과 발의 형상이 다르고 머리털을 이고 치아를 머금어 의지하여 달리는 것을 사람이라고 한다.[有七尺之骸 手足之異 戴髮含齒 倚而趣者 謂之人]”라고 하였다.
두대장[頭隊長] 각색군사(各色軍士)와 차비군(差備軍)의 패(牌)를 거느리던 대장(隊長)을 이른다.
두대제좌통호흡[頭擡帝座通呼吸]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제좌(帝座)와 호흡(呼吸)이 통(通)한다’는 말이다. 제좌(帝座)는 옥황상제의 어좌(御座)라는 말로, 선계(仙界)를 뜻한다. 명(明)나라 교우(喬宇)의 화산서봉부[華山西峰賦]에 “천상 세계와 숨결이 통하는 곳에, 인적이 왕래가 시작되었도다.[通呼吸於帝座兮 啓人迹之來往]”라고 하였다. <御定歷代賦彙 卷15>
두대주[斗大州] 말만한 고을이라는 뜻으로, 보통은 작은 읍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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