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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은 잡기 어렵고, 사람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 [人心難降인심난강 人心難滿인심난만] <채근담>


눈으로 뻔히 서진이 가시밭 됨을 보면서도

도리어 칼날의 퍼런 서슬을 자랑하고

몸뚱이는 북망산의 여우와 토끼에 딸렸건만

오히려 더욱 황금을 아끼니

옛말에 이르기를 “맹수를 길들이기는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받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를 채우기는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고 하더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眼看西晉之荊榛,  猶矜白刃  ;  身屬北邙之狐兎,  尙惜黃金.
안간서진지형진,  유긍백인  ;  신속북망지호토,  상석황금.
語云 :  “猛獸易伏,  人心難降.  谿壑易塡,  人心難滿.”  信哉!
어운 :  “맹수이복,  인심난강.  계학이전,  인심난만.”  신재!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안간[眼看]  곧. 순식간에. 이제. 빤히 보면서. 눈 뜬 채로. 그대로. 눈으로 직접 보다. 목도하다. 왕적(王績)의 시 과주가(過酒家)에서 “보아하니 취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뉘라서 홀로 깨어 있을 수 있겠는가.[眼看人盡醉, 何人獨爲醒.]”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서진[西晉]  서진(西晉)은 265년 사마염(司馬炎: 무제武帝)이 위(魏)나라의 원제(元帝) 조환(曹奐)을 압박하여 제위(帝位)를 선양받고 낙양(洛陽)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한 나라인데, 316년에 영가(永嘉)의 난(亂)으로 멸망하였다. 304년에 흉노의 족장 유연(劉淵)이 진(晉)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한왕(漢王)이라 칭하며 서진(西晉)을 공격하다가 308년에 평양(平陽)에 도읍하고 한(漢)나라를 건국한 다음 황제를 칭하였다. 310년에 류연(劉淵)의 뒤를 이어 아들 유총(劉聰)이 즉위하자 진(晉)나라를 공격하여 313년에 낙양을 함락시키고 회제(懷帝)를 시해하였으며, 낙양(洛陽)에서 도주하여 장안(長安)에서 즉위한 민제(愍帝)가 316년에 유요(劉曜)에게 항복하여 서진(西晉)은 마침내 멸망하였다. 이에 서진(西晉)의 낭야왕(琅瑘王) 사마예(司馬睿)가 건강(建康: 지금의 남경南京)에서 진(晉)나라의 명맥을 이었는바 이를 동진(東晉)이라 한다. 영가(永嘉)는 회제(懷帝)의 연호로 307년부터 313년까지이다. 서진(西晉)이라는 나라 이름은 낙양이 동진(東晉)의 도읍지(都邑地)인 건강(建康)의 서쪽에 해당하는 곳에 있었던 데서 유래(由來)한 것이다.
  • 형진[荊榛]  가시나무와 개암나무라는 뜻으로, 무성한 잡목림을 이르는 말. 가시덩굴 등이 우거져 막힌 모양. 황무지를 뜻하거나 황야에 묻히는 것을 가리킨다.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 59수 첫째 수에서 “왕의 교화가 덩굴 풀 속으로 쇠퇴하자, 전국시대엔 가시넝쿨이 많았네.[王風委蔓草, 戰國多荊榛.]”라고 하여, 올바른 정치가 쇠퇴한 것을 비유하였다. 참고로, 진서(晉書) 색정전(索靖傳)에 “색정이 장차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낙양궁 문에 있는 구리낙타를 가리키며 ‘장차 네가 가시덤불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라고 하였다.[靖有先識遠量, 知天下將亂, 指洛陽宮門銅駝, 歎曰: ‘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60 索靖列傳>
  • 백인[白刃]  서슬이 번쩍이는 칼. 예리한 칼날. 서슬이 시퍼런 칼날. 서슬이 몹시 날카로운 칼날.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공격. 참고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9장에 “천하와 나라와 집안을 고르게 다스릴 수도 있으며, 작위와 봉록을 사양할 수도 있으며, 흰 칼날을 밟고 죽을 수도 있지만, 중용의 도는 제대로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라는 공자의 말에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임인이월유조령(壬寅二月有詔令……)에 양자(養子)인 여포(呂布)가 동탁(董卓)을 죽인 것을 두고 “흰 칼날이 느닷없이 주하에서 나왔나니, 황금만 공연히 산처럼 쌓아 두었구나.[白刃俄生肘, 黃金謾似丘.]”라고 한 데서 보이고, 한서(漢書) 권62 사마천전(司馬遷傳)에 “피로써 얼굴을 적시고 눈물을 삼키면서 빈 활을 당기고, 적의 시퍼런 칼날을 무릅쓰며 북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죽음으로써 적과 싸우고자 하였다.[沬血飲泣, 張空弮, 冒白刃, 北首爭死敵.]”라고 한 데서 보이고,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서릿발 같은 칼날이 눈앞에 마구 날아들어도 죽음을 마치 삶처럼 생각하는 것은 烈士의 용기이다.[白刃交於前 視死若生者 烈士之勇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북망[北邙]  북망(北芒).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동북쪽에 있는 망산(邙山)을 가리킨다. 낙양은 기원전 11세기에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도읍으로 정한 이래 후한(後漢)을 비롯하여 서진(西晉), 북위(北魏), 후당(後唐) 등 여러 나라의 도읍지로서 번창한 곳이었으므로, 망산(邙山)에는 역대 왕후공경(王侯公卿) 등 명사들의 무덤이 많아, 전하여 묘지(墓地)가 많은 곳이나,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박박주(薄薄酒)에 “구슬로 만든 수의(壽衣)와 옥으로 만든 관 속에서 만인이 전송하여 북망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메추라기처럼 다 해진 옷 입고 홀로 앉아 아침 햇볕을 등에 쬐는 것만 못하다오.[珠襦玉匣萬人祖送歸北邙, 不如懸鶉百結獨坐負朝陽.]”라고 하였고, 구양첨(歐陽詹)의 시 관송장(觀送葬)에 “무슨 일로 슬프고 쓰려 눈물이 수건 적셨는가, 부질없는 인생 모두 북망의 티끌 되었구나.[何事悲酸淚滿巾? 浮生共是北邙塵.]”라고 하였다. 북망산(北邙山).
  • 호토[狐兎]  여우와 토끼는 모두 교활하고 음흉한 무리를 가리킨다.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억석(憶昔)에 “낙양의 궁전은 불타서 없어졌고, 종묘에선 새로 여우 굴, 토끼 굴을 제거하네.[洛陽宮殿燒焚盡, 宗廟新除狐兎穴.]”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북풍(北風)에 “안 붉다고 여우가 아니며, 안 검다고 까마귀가 아니랴. 우리 서로 정다운 사람끼리, 손잡고 한 수레 타고 가리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으랴, 이미 급박하게 되었도다.[莫赤匪狐, 莫黑匪烏. 惠而好我, 携手同車. 其虛其邪, 其亟只且.]”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석에 “모두 불길한 동물이니,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바이다. 보이는 것이 모두 이러한 것들이라면 나라가 장차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 계학[谿壑]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 큰 계곡(溪谷). 끝이 없는 욕심.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 심한 탐욕(貪欲). 계학(谿壑) 즉 산속의 골짜기는 탐욕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참고로, 남제서(南齊書) 권25 원숭조열전(垣崇祖列傳)에 “빈번히 발탁되어 올라가면서도, 계학처럼 만족할 줄을 몰랐다.[頻煩升擢, 谿壑靡厭.]”라는 말이 나오고,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양설부(羊舌鮒)가 태어났을 때, 양설부의 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이 아이는 호랑이 눈에 돼지 입을 가진 데다 매처럼 두 어깨가 솟아 있고 소의 배처럼 옆구리가 불룩하니, 산의 계곡은 채울 수 있겠지만 이 아이는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필시 뇌물 때문에 죽을 것이다.[是虎目而豕喙 鳶肩而牛腹 谿壑可盈 是不可饜也 必以賄死]”라고 하였는데, 뒤에 형후(邢侯)와 옹자(雍子)가 토지를 다툴 때 이 소송을 심리하면서 옹자에게 딸을 받고는 옹자의 손을 들어주었다가 형후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國語 卷14 晉語8> <春秋左氏傳 昭公14年> 계학욕(溪壑欲)은 욕심이 매우 큰 것을 말한다.

【譯文】 猛獸易服,  人心難制.
眼見西晉的滿目荒蕪情景,  仍然自矜的武力  ;  身體屬於北邙的狐兔食物,  尙且愛惜著權力.  俗諺說 :  “猛禽野獸容易制伏,  人的心念難以降服  ;  山穀溝壑容易填平,  人的欲望難以滿足.”  確實如此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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