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로[杜老] 노두(老杜). 곧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그의 곤오어숙자위이시(昆吾御宿自逶迤詩)에서 세상이 태평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뜻을 은밀히 부치어 “벽오동은 봉황이 깃들던 가지만 늙은 채로 남았구나.[碧梧棲老鳳凰枝]”라고 하였다. <杜少陵集 卷十七>
두로[頭顱] 두로(頭顱)는 나이가 마흔쯤 되면 자신의 앞길을 머리로 알 수 있음을 이른다. 소식(蘇軾)의 시 송단둔전분득우자(送段屯田分得于字)에 “나이 사십에 어찌 앞길을 예견치 못하랴. 사람 무서워 못 나가면 얼마나 어리석은가.[四十豈不知頭顱, 畏人不出何其愚.]”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3 送段屯田分得于字>
두로[頭顱] 해골. 머리뼈 중에서 대뇌의 뒤를 덮은 좌우 한 쌍의 편편하고 모가 난 뼈를 이른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그 나라는 잔폐해지고 사직(社稷)은 파괴되고 종묘(宗廟)는 허물어졌으며 배가 갈라지고 턱이 깨어지고, 머리와 몸이 각각 떨어지고, 뼈는 초택(草澤)에서 드러나 뒹굴고, 머리뼈는 거꾸로 엎어져 국경까지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本國殘, 社稷壞, 宗廟隳, 刳腹折頤, 首身分離, 暴骨草澤, 頭顱僵仆, 相望於境.]”라고 한 데서 보인다.
두로[頭顱] 자신의 앞날의 행로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남제(南齊) 때의 은사(隱士) 도홍경(陶弘景)이 종형(從兄)에게 보낸 편지에 “전에 내가 나이 40세 전후에 상서랑이 되거든 즉시 관직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려고 기약했었는데, 지금 나이 36세에 비로소 봉조청이 되었고 보면 앞으로 어찌 될지 알 만하니, 일찍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昔仕宦期四十左右作尙書郞, 卽抽簪高邁, 今三十六, 方作奉朝請, 頭顱可知, 不如早去.]”라고 하였다. <疑耀 卷4 三十六奉朝請>
두로가빈[杜老家貧] 두로(杜老)는 두보(杜甫)를 가리키는데, 두보(杜甫)의 시 객지(客至)에 “시장이 멀어 반찬은 여러 가지가 없고, 집이 가난해 술은 묵은 술뿐이로다.[盤餐市遠無兼味, 樽酒家貧只舊醅.]”라고 하였고, 또 그의 시 남린(南鄰)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토란 밤을 주우니 전혀 가난치만은 않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두로가지[頭顱可知] 두로(頭顱)는 백발의 쇠한 머리를 말한다. 남제(南齊) 때의 은사(隱士) 도홍경(陶弘景)이 종형(從兄)에게 보낸 편지에 “전에 내가 나이 40세 전후에 상서랑이 되거든 즉시 관직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려고 기약했었는데, 지금 나이 36세에 비로소 봉조청이 되었고 보면, 40세의 머리를 알 만하니, 일찍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昔仕宦期四十左右作尙書郞 卽抽簪高邁 今三十六 方作奉請 頭顱可知 不如早去]”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로강촌흥[杜老羌村興] 두로(杜老)는 두보(杜甫)를 말한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 5에 오언 고시(五言古詩)로 강촌(羌村) 3수가 실려 있다.
두로견응착[杜老見應錯] 두로(杜老)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의 시 장부성도초당도중유작(將赴成都草堂途中有作)에 “새 솔은 천 척 높이 안 자라서 한스럽고, 나쁜 대는 만 줄기를 낫으로 쳐낼 거네.[新松恨不高千尺, 惡竹應須斬萬竿.]”라고 하였다.
두로고응비호락[杜老故應悲濩落] 두로(杜老)는 두보(杜甫)를 말한다. 그의 시 자경부봉선현영회(自京赴奉先縣詠懷)에 “문득 쇠락해져, 흰머리로 고단함을 달게 여기네.[居然成濩落, 百首甘契濶.]”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4 自京赴奉先縣詠懷>
두로궁[斗姥宮] 북경의 천단(天壇) 서쪽에 위치한 도교 사관이다. 김경선(金景善)은 청나라 강희(康煕) 30년(1691)에 태감(太監) 고시행(顧時行)이 태황태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재를 내어 세웠다고 했고, 김창업(金昌業)은 고문행(顧文行)이 세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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