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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릉노인[杜陵老人], 두릉대아[杜陵大雅],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옹[杜陵翁], 두릉운자[杜陵雲子]


두릉노[杜陵老]  두릉(杜陵)에 살았던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이른다. 이백(李白)과 함께 당대(唐代) 시인의 쌍벽(雙璧)으로 일컬어지는 불후의 시성(詩聖)으로서, 두릉야로(杜陵野老)라고 자호(自號)하기도 하였다.

두릉노인[杜陵老人]  두릉(杜陵)에 살았던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이백(李白)과 함께 당대(唐代) 시인의 쌍벽(雙璧)으로 일컬어지는 불후의 시성(詩聖)으로서, 두릉야로(杜陵野老)라고 자호(自號)하기도 하였다.

두릉대아[杜陵大雅]  두릉(杜陵)은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 말이고 대아는 곧 큰 문장이라는 뜻이다.

두릉대아질소사[杜陵大雅軼騷些]  두릉은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 말이고, 대아는 곧 큰 문장이라는 뜻이다. 초소(楚騷)는 춘추시대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을 말한 것으로, 즉 두보의 문장이 굴원보다 훌륭하다는 뜻이다.

두릉수[杜陵愁]  두릉은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일찍이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대략에 의하면 “팔월이라 한가을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리 지붕 세 겹 띠 이엉을 다 말아갔네.……침상 머리의 지붕은 새서 마른 곳이 없는데, 삼대 같은 빗줄기는 끊이지를 않는구나.[八月秋高風怒號 卷我屋上三重茅……牀頭屋漏無乾處 雨脚如麻未斷絶]”라고 하여, 대단히 비참한 심경을 서술한 데서 온 말이다. <杜少陵集 卷10>

두릉야객[杜陵野客]  두보(杜甫)의 자칭이다. 그의 조부가 두릉에서 살았고, 그 또한 장안에 있을 때 두릉에서 멀지 않은 소릉(少陵)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두릉야객(杜陵野客) 또는 두릉야로(杜陵野老)라고 불렀다.

두릉야로[杜陵野老]  당(唐) 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두릉옹[杜陵翁]  당(唐) 나라 때의 시인으로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높여 이른 말이다. 두보가 일찍이 뇌양현(耒陽縣) 악사(岳祠)에 가 노닐 적에 갑자기 큰물이 져서 열흘이 넘도록 갇혀 밥을 먹지 못하다가 그곳 현령이 구운 쇠고기와 탁주를 배에 실어 보내 주자 그것을 먹고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그의 자는 자미(子美)로 소갈증(消渴症)을 앓았을 뿐만 아니라 시편 곳곳에서 병 많음을 탄식하였다.

두릉운자[杜陵雲子]  두릉은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가리킨 것으로, 두보(杜甫)의 시 여호현원대소부연미피득한자(與鄠縣源大少府宴渼陂得寒字)에 “밥으로는 하얀 운자를 떠먹고, 오이는 차가운 수정을 씹는 듯하네.[飯抄雲子白 瓜嚼水精寒]”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운자는 본디 흡사 밥알처럼 자잘한 흰 자갈을 말하는 데서, 전하여 쌀밥을 비유한다.

두릉인[杜陵人]  난리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하며 우국(憂國)의 심정을 읊었던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릉증식노장군[杜陵曾識老將軍]  두릉(杜陵)은 두보(杜甫)를 지칭하고 노장군(老將軍)은 엄무(嚴武)를 지칭한다. 두보가 성도(成都)를 다스리던 엄무(嚴武)의 깊은 지우(知遇)를 입어 보살핌을 받다가 그가 죽은 후 의지할 데 없이 유랑하였다. <舊唐書 列傳 卷一百九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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