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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에 올랐으면 뗏목 버릴 생각을 하라 [就筏舍筏취벌사벌 騎驢覓驢기려멱려] <채근담>


뗏목에 올라 곧 뗏목 버릴 생각을 한다면

이는 바로 일없는 도인이요

만약 나귀를 타고 다시 또 나귀를 찾는다면

끝내 깨닫지 못하는 선사가 되리라.


纔就筏便思舍筏,  方是無事道人.
재취벌변사사벌,  방시무사도인.
若騎驢又復覓驢,  終爲不了禪師.
약기려우부멱려,  종위불료선사.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사벌[捨筏]  물을 건넌 사람이 물을 건널 때 사용한 뗏목을 버리는 것을 이른다. 금강경(金剛經) 정신희유분(正信稀有分)에 “너희 비구들은 내 설법을 뗏목의 비유로 알아야 한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라고 하였다. 사벌등안(舍筏登岸). 득어망전(得魚忘筌).
  • 사벌등안[舍筏登岸]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필요하지만 이 세상에서 저세상 彼岸(피안)에 이른 뒤에는 버려야 한다. 즉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배운 말과 글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 진벌[津筏]  나루를 건너는 뗏목. 도선(渡船)과 같은 말인데 마음에 통하기를 구하여 얻지 못할 땐 이로 말미암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비유한 것임. 한유(韓愈)의 시 송문창사북유(送文暢師北遊)에 “상자속의 보물 펼쳐 벌여놓으면, 스스로 나루 건널 뗏목 얻을 수 있네.[開張篋中寶, 自可得津筏.]”이라 하였다.
  • 도인[道人]  도(道)를 닦는 사람. 불문(佛門)에 들어 불도를 닦아 깨달은 사람. 또는 출가한 수행자. 처음에는 도교(道敎)의 도사(道士)를 이르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출가하여 수행하는 이를 이르는 말로도 확대 사용되었다.
  • 기려멱려[騎驢覓驢]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음. 어떤 물건을 자기가 이미 소유하고 있으면서 도리어 밖에서 구함. 본래 지닌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데서 구하는 것에 비유한 말로 깨달음이 곧 마음에 있음을 모르고 밖을 향하여 추구함을 비판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도원(道原)의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28에 “불경을 읽으면서 의미를 살피지 않는다면 실로 나귀를 타고서 다시 나귀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誦經不見有無義, 眞似騎驢更覓驢.]”라고 하였고,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인 줄을 모르는 것이 참으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即心即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주자대전(朱子大全) 권64 답혹인(答或人)에 “이것이 병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약이니,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는가 묻는다면 이는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격이라 다만 한바탕 쓸데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知得如此是病, 卽便不如此是藥. 若更問何由得如此, 則是騎驢覔驢, 只成一塲閑說話矣.]”라고 하였다. 또,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의 기황룡청로(寄黃龍淸老)의 세 번째 작품에 “당나귀를 타고 당나귀를 찾으니 가소롭고, 말도 아닌데 말에 비유함도 어리석음이리라. 한 하늘의 달빛은 누굴 위해 아름다운가, 두 늙은이의 풍류는 단지 스스로만 알리라.[騎驢覓驢但可笑, 以馬喩馬亦成痴. 一天月色爲誰好, 二老風流只自知.]”라고 하였다. 기우멱우(騎牛覓牛). 즉심즉불(卽心卽佛).
  • 선사[禪師]  선종(禪宗)에서 참선하여 진리를 통달한 스님. 선종의 법리에 통달한 승려(僧侶).

【譯文】 求心內之佛,  卻心外之法  :  求心內佛,  去心外法.
剛才登上竹筏就想著舍棄竹筏,  方才是不爲外物所累的道人  ;  假如騎著毛驢又另外尋覓毛驢,  最終成爲不了解佛理的和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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