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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지[杜牧之], 두목진회[杜牧秦淮], 두목탄화[杜牧歎花], 두목해[斗木獬]


두목지[杜牧之]  목지(牧之)는 당(唐) 나라 때 명신(名臣)인 두목(杜牧)의 자(字)이다. 당나라 경조(京兆) 사람이며 만당(晩唐)의 시인(詩人)으로 이름은 목(牧), 호는 번천(樊川)이다. 시부(詩賦)에 능(能)하고 풍류(風流)와 아량(雅量)이 있었다. 벼슬은 감찰어사(監察御史)·선주 단련판관(宣州團練判官)·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 등을 지냈다. 저서에는 번천집(樊川集)이 있다. <唐書 卷一百六十六 杜牧傳>

두목지론산동[杜牧之論山東]  목지(牧之)는 두목(杜牧)의 자(字)이며, 논(論)은 그가 지은 죄언(罪言)을 이른다. 죄언에 “송(宋)나라 무제(武帝)인 유유(劉裕)는 영웅이라고 이름나 촉(蜀)과 관중(關中) 지방을 점령하고 하남(河南) 지역의 10분의 8을 차지하였으나, 단 한 번도 황하(黃河)를 건너 북쪽 오랑캐 지역을 엿보지 못하였는데, 수(隋)나라의 문제(文帝)는 북주(北周)의 우문씨(宇文氏)가 점령하였던 산동(山東) 지방을 점령하여 세력을 떨쳐 마침내 남조(南朝)의 진(陳)을 멸망시킴으로써 5백 년간 남북조(南北朝)로 나뉘었던 중국이 통일되었다. 수(隋)나라 문제(文帝)는 송(宋)나라 무제(武帝)의 적수가 아닌데, 송(宋)나라 무제(武帝)는 산동(山東) 지방을 차지하지 못하였고 수(隋)나라 문제(文帝)는 산동(山東) 지방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수(隋)나라는 황제국이 되고 송(宋)나라는 단지 패자(霸者)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두목진회[杜牧秦淮]  두목(杜牧)의 시 박진회(迫秦淮)에 “연기는 찬 강을 싸고 달빛은 모래톱을 쌌는데, 밤에 진회의 술집 가까운 곳에 배를 대노라니, 장사꾼 아낙은 망국의 한을 알지 못하고, 강 저쪽에서 아직도 후정화를 부르고 있네.[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家.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라고 하였다.

두목참[杜牧慙]  두목(杜牧)은 당(唐) 나라 문장가로 자(字)는 목지(牧之)이며, 진사로 뽑힌 뒤 호주 자사(湖州刺史) 등을 지냈다. 그가 포의(布衣)로 있을 당시 친구가 자사(刺史)로 있는 호주(湖州)에 놀러갔다가 10여 세에 지나지 않는 절색의 기생을 만났는데 그때 그는 10년 후 자기가 자사로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 하고 돌아왔다. 14년 만에 자사로 부임하자 이미 그녀는 결혼하여 자식을 둘이나 거느린 부인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두목탄화[杜牧歎花]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호주(湖州)에서 노닐 적에 10여 세 되는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흠뻑 빠진 나머지, 10년 안에 다시 돌아와 가약(佳約)을 맺겠다면서 폐백을 듬뿍 주고 떠나갔다. 14년 뒤에 돌아와 보니 그 여인이 벌써 시집을 가서 두 아들을 낳기까지 하였으므로 “꽃을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이 한스러워, 그때에는 꽃봉오리 피어나지도 않았었네. 지금은 바람에 날려 꽃잎도 다 흩어진 채, 푸른 잎 그늘 이루고 가지엔 열매만 가득하네.[自恨尋芳到已遲, 往年曾見未開時. 如今風擺花狼藉, 綠葉成陰子滿枝.]”라는 탄화시(歎花詩)를 읊었다고 한다. <唐詩紀事 杜牧>

두목해[斗木獬]  두성(斗星)은 목(木)에 속하고 해치(獬豸)[獬]로 상징된다는 뜻이다. 두수는 이십팔수의 하나로 북방칠수 가운데 첫 번째 별자리인데, 오행에서는 목(木)의 성질을 지니고, 동물 가운데는 해치로 상징된다.

두목호주거교지[杜牧湖州去較遲]  늘 돌아다니다가 늦게야 집에 온 것을 한탄한 말이다. 당(唐) 나라 두목(杜牧)이 호주(湖州)에 노닐 때 그곳 자사(刺史)와는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그는 자사의 주선으로 여러 미녀를 두루 보았으나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다가 10여 세 된 소녀가 하나 왔는데 자세히 보니 참으로 절색이었다. 그러자 두목은 10년 뒤에 맞이하겠다면서 만약 10년 뒤에 맞이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데로 출가해도 좋다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왔는데 14년이 지난 뒤에야 가 보니, 그녀는 이미 3년 전에 출가하여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으므로 두목은 “봄을 찾는 약속이 늦었으니 꽃다운 시절 한할 필요 없으리. 광풍이 붉은 꽃 다 떨어뜨려 푸른 잎 짙게 피고 열매가 주렁주렁하구나.[自是尋春去較遲, 不須惆悵恨芳時. 狂風吹盡深紅色, 綠葉成陰子滿枝.]”라는 시를 남기고 섭섭해하였다. <張君房 麗情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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