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열사나 탐부나 천자나 걸인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채근담>


열사는 천승의 나라도 사양하고

탐부는 한 푼의 돈으로도 다툰다.

인품이야 하늘과 땅의 차이이지만

명예를 좋아함과 이익을 좋아함은 다를 것이 없다.

천자는 나라를 다스리기에 고뇌하고

걸인은 아침저녁 끼니를 얻으려 부르짖는다.

신분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지만

초조한 생각과 초조한 목소리가 다를 것은 무엇인가.


烈士讓千乘,  貪夫爭一文,  人品星淵也,  而好名不殊好利.
열사양천승,  탐부쟁일문,  인품성연야,  이호명불수호리.
天子營家國,  乞人號饔飧,  分位霄壤也,  而焦思何異焦聲?
천자영가국,  걸인호옹손,  분위소양야,  이초사하이초성?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열사[烈士]  정의로운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 절의(節義)에 몸을 바친 사람. 공업(功業)을 세우는 데 뜻을 둔 사람.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성심껏 장렬하게 싸운 사람. 이해나 권력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는 사람. 참고로, 한나라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탐부는 재물 때문에 죽고 열사는 명예 때문에 죽으며, 뛰어난 사람은 권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을 탐한다.[貪夫殉財兮, 烈士殉名. 夸者死權兮, 品庶每生.]”라고 하였고, 조조(曹操)의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이라는 악부가(樂府歌)에 “늙은 천리마가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뜻은 언제나 천 리 밖이요, 열사의 나이가 비록 늙었어도 장한 마음은 변함이 없네.[老驥伏櫪, 志在千里, 烈士暮年, 壯心不已.]”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진(晉)나라 왕돈(王敦)이 만년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술을 마실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타호를 두드려 박자를 맞춰 타호의 가장자리가 모두 깨지곤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豪爽> <晉書 王敦列傳>
  • 천승[千乘]  병거(兵車) 즉 군용(軍用)의 수레 1천 대를 이른다. 병거 1승(乘)에는 군마(軍馬) 4필(匹), 소[牛] 20두(斗), 갑사(甲士) 3인, 창과 방패를 갖춘 병졸 72인이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어, 천승(千乘)은 약 10만에 가까운 군대이다. 중국 춘추 전국 때 작은 제후국은 천승(千乘), 큰 제후국은 만승(萬乘)이라고 일컬었다. 중국 주(周)나라 때, 전시(戰時)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을 내고, 제후(諸侯)는 천승(干乘)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참고로, 논어(論語) 학이(學而)에서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모든 일을 공경히 행하여 믿을 수 있게 해야 하며, 씀씀이를 절도 있게 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을 부리기를 때에 맞게 해야 한다.[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진심 하(盡心下) 호명지인장(好名之人章)에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승의 나라를 양보할 수 있거니와, 정말로 그러할 만한 사람이 못 되면 한 그릇의 거친 밥과 나물국에서 얼굴빛에 드러난다.[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 苟非其人, 簞食豆羹, 見於色.]”라고 하였다.
  • 탐부[貪夫]  재물을 탐하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내. 탐욕스러운 사내. 욕심 많은 속인. 한나라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탐부는 재물 때문에 죽고 열사는 명예 때문에 죽으며, 뛰어난 사람은 권세에 죽고 평범한 사람은 삶을 탐한다.[貪夫殉財兮, 烈士殉名. 夸者死權兮, 品庶每生.]”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시 용미연가(龍尾硯歌)에 “황종의 옥이나 백호의 구슬이나 하늘이 아낌없이 내주지만, 다만 걱정은 탐부가 그 보물을 품고 있다가 죽는 것.[黃琮白琥天不惜, 顧恐貪夫死懷璧.]”이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성연[星淵]  하늘에 있는 별과 땅에 있는 못. 매우 차이가 현격함을 뜻한다.
  • 불수[不殊]  다르지 않다. 참고로,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보낸 시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양쪽 집에서 아들을 낳으니 어린 아기 때는 서로 비슷하였고, 조금 자라서 놀 적에는 한 무리 속의 물고기와 같아라.[兩家各生子, 提孩巧相如, 少長聚嬉戱, 不殊同隊魚.]”라고 한 데서 보이고, 진서(晉書) 권65 왕도열전(王導列傳)에, 중국 서진(西晉)이 북쪽의 이민족인 유송(劉宋)에 쫓겨 장강(長江)의 동남쪽으로 옮겨가 동진(東晉)이 되었다. 당시 주의(周顗), 왕도(王導) 등 동진의 여러 재상들이 매번 여가가 생길 때면 신정(新亭)에 모여 연음(宴飮)을 하였는데, 주의가 연회 중에 탄식하기를 “풍경은 고금의 차이가 없으나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강하는 다르다.[風景不殊, 擧目有江河之異.]”라고 하자, 온 좌중이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으나, 유독 승상 왕도만은 정색하여 “모두 왕실을 위해 힘을 합쳐 중원을 회복해야 하는 판에, 어찌 서로 마주하여 흐느껴 울었던 초나라 죄수의 짓거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當共戮力王室, 克復神州, 何至作楚囚相對泣邪?]”라고 했던 고사에서 보인다.
  • 천자[天子]  천제(天帝)의 아들, 즉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代身)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군주(君主) 국가(國家)의 최고(最高) 통치자(統治者)를 이르는 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왕(王)이라고 하였다.
  • 가국[家國]  집과 나라. 자기의 집안과 나라를 아울러 이르는 말. 참고로, 초(楚)나라의 공자(公子)가 진(秦)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으면서 지은 왕자사귀곡(王子思歸曲)에 “동정호의 나무숲엔 가을이 들고, 잠양 땅의 풀잎들은 다 시들었네. 천승의 나라인 초나라를 떠나와서, 함양 땅의 포의 신세 되어 있구나.[洞庭兮木秋, 涔陽兮草衰. 去千乘之家國, 作咸陽之布衣.]”라고 하였고, 유종원(柳宗元)의 참곡궤문(斬曲几文)에 “황후가 심은 물건은 무엇보다 곧아야 한다. 그리하여야 성주가 그것을 가지고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皇后植物, 所貴乎直. 聖主取焉, 以建家國.]”라고 하였고, 남조(南朝) 양 무제(梁武帝)가 “우리나라는 마치 황금 단지와 같아서 하나도 상하거나 부서진 곳이 없다.[我家國猶若金甌 無一傷缺]”라고 말한 고사에서 보인고, 진(晉) 나라 손작(孫綽)이 천태산(天台山) 자락인 적성산(赤城山)에 푯말을 세우고 은거 생활을 즐기면서 ‘수초부(遂初賦)’를 지었는데, 뒤에 벼슬하다가 환온(桓溫)의 뜻을 거슬려 반대 상소를 올리자, 환온이 불쾌하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수초부대로 살려 하지 않고 남의 국가에 대한 일을 간섭하는가.[何不尋君遂初賦 知人家國事邪]”라고 했던 고사에서 보인다.
  • 걸인[乞人]  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고 사는 사람.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 참고로,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혀를 차고 꾸짖으면서 주면 길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발로 차서 주면 걸인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一簞食, 一豆羹, 得之則生, 弗得則死, 嘑爾而與之, 行道之人, 弗受. 蹴爾而與之, 乞人不屑也.]”라고 하였다.
  • 걸인[傑人]  뛰어난 사람.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
  • 옹손[饔飱]  옹손(饔飡). 아침밥과 저녁밥.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진상(陳相)이 맹자에게 허행(許行)의 말을 전하면서, “어진 자는 백성과 함께 농사짓고 손수 밥 짓고서 정치한다.[賢者, 與民竝耕而食, 饔飧而治.]”라고 한 말데서 보인다.
  • 옹손이치[饔飱而治]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유학자인 진량(陳良)의 제자 진상(陳相)이 신농씨(神農氏)의 학설(學說)을 행한다는 허행(許行)에게 도취되어 허행의 말을 맹자(孟子)에게 전해 말하기를 “어진 이는 백성과 함께 농사를 짓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지금 등나라에는 창름과 부고가 있으니, 이것은 곧 백성을 괴롭혀서 자신만을 봉양하는 행위인데, 어찌 어질다 할 수 있겠는가.[賢者與民幷耕而食, 饔飱而治. 今也, 滕有倉廩府庫, 則是厲民而以自養也. 惡得賢.]”라고 하자, 맹자가 여기에 대하여, 윗사람의 할 일과 백성의 할 일이 따로 있고, 마음을 쓰는 사람과 힘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어, 마음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는 것이고, 힘을 쓰는 사람은 남에게서 다스림을 받는 것이므로,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사람은 결코 농사까지 손수 지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 분위[分位]  신분과 지위. 지위의 구분. 단계. 순서에 따라 나아가는 과정·상태. 특수한 상태.
  • 소양[霄壤]  하늘과 땅. 격차가 매우 심한 것. 천양지차(天壤之差). 천양(天壤). 천지(天地).
  • 소양지차[霄壤之差]  소양지판(霄壤之判).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이니, 곧 사물이 엄청나게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의(義)의 높음은 하늘과 같고, 이(利)의 낮음은 땅과 같은 것이다.
  • 초사[焦思]  애를 태우며 생각함. 연모(戀慕)하다. 십팔사략(十八史略) 권1 태고(太古)에 “곤이 홍수를 막으매 순이 우를 등용하여 대신 다스리게 하니, 몸을 수고로이 하고 생각을 전념하여 밖에 8년 동안 거처하면서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鯀陻洪水, 舜擧禹代之, 勞身焦思, 居外八年, 過家門不入.]”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초성[焦聲]  애타는 목소리.

【譯文】 欲望雖有尊卑,  貪爭並無二致  :  欲望尊卑,  貪爭無二.
義烈的人拱讓千乘大國  ;  貪婪的人力爭一文小錢.  人的品德天壤之別啊,  而喜好功名與喜好利祿沒什麼不同  ;  做皇帝的經營開國承家,  當乞丐的呼號早飯晚餐,  身份地位天地之差啊,  而當焦苦思慮和焦急哀聲有什麼差異.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