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맛을 깊이 알게 되면
비가 되건 구름이 되건 세상인심에 맡겨버려
눈을 뜨고 보는 것마저도 귀찮아지고
인정이 어떤 것인지 다 깨닫고 나면
소라 부르건 말이라 부르건 부르는 대로 따라
그저 머리만 끄덕일 뿐이다.
飽諳世味, 一任覆雨翻雲, 總慵開眼.
포암세미, 일임복우번운, 총용개안.
會盡人情, 隨敎呼牛喚馬, 只是點頭.
회진인정, 수교호우환마, 지시점두.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포암[飽諳] 완전히 다 앎. 충분히 깨달음. 참고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도산잡영(陶山雜詠)을 지을 때 절우사(節友社)라는 제목으로 “도연명의 동산엔 솔·국화·대 세 벗뿐이니, 매형은 어찌하여 동참하지 못했나? 나는 매화까지 함께 동참시켜 풍상의 교분 맺노니, 굳은 절개 맑은 향기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라오.[松菊陶園與竹三 梅兄胡柰不同參 我今倂作風霜契 苦節淸芬儘飽諳]”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세미[世味] 세상맛. 세상의 달고 쓴 맛. 사람 사는 세상의 정리. 사람이 세상(世上)을 살아가며 겪는 온갖 경험(經驗). 세상살이에서 겪고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나 즐거움 따위의 세상사는 재미. 공명을 이루어 벼슬을 하고 싶은 마음. 참고로, 송(宋)나라 육유(陸游)의 시 임안춘우초제(臨按春雨初霽)에 “세상사는 맛은 해 바뀔수록 깁처럼 얇아지는데, 누가 말 타고 서울에 와 나그네가 되게 하였나.[世味年來薄似紗, 誰令騎馬客京華.]”라고 하였고, 한유(韓愈)의 시 시상(示爽)에 “나는 늙어 사는 재미 엷어졌지만, 구습에 젖어 그대로 눌러앉아서. 얼굴 두껍게 백관 속에 보태졌으니, 그 자체가 어찌 잘못 아니겠느냐.[吾老世味薄, 因循致留連. 强顔班行內, 何實非罪愆.]”라고 하였다.
- 복우번운[覆雨翻雲] 변덕이 심한 세상인심. 변하는 세태(世態). 정국이 뒤집힘. 교정(交情)의 반복무상함. 소인배(小人輩)의 우정(友情)의 변덕스러움. 세속의 인정(人情)이 쉽사리 변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 빈교행(貧交行)에 “손을 뒤집으면 구름 일고 손을 엎으면 비 내리니, 경박한 작태 분분함을 따질 것이 있으랴. 그대는 못 보았나 관중 포숙의 가난할 때 사귐을, 지금 사람들은 이 도를 흙처럼 버린다네.[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세인(世人)들의 교제하는 태도의 반복무상함을 비유한 말이다. <杜少陵詩集 卷2 貧交行> 번복(翻覆). 번운복우(飜雲覆雨).
- 개안[開眼] 눈을 뜸. 안 보이던 눈이 보이게 되는 것. 각막 이식 따위를 통하여 시력을 되찾는 일. 또는 그 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이나 진리를 깨우쳐 비로소 사물이나 사건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 개안[開眼] 사물 또는 진리에 대하여 깨닫거나 새로운 의식을 갖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불교의 진리를 깨달아서 앎. 불상을 만든 후에 처음으로 불공을 드리는 의식. 불상(佛像)에 영(靈)이 있게 하는 일. 절에서는 불상을 만들거나 불화를 그린 뒤 부처님을 모시는 봉불식을 하기 전까지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 그러다가 첫 공양을 할 때 눈동자를 그려 넣는 점안(點眼) 의식을 행한다. 이것을 개안공양이라고 하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불상이나 불화에 눈이 생겨 하나의 온전한 불상이나 불화의 구실을 하게 된다.
- 개안[開眼] 뜬눈으로 지내다. 원진(元稹)의 시 견비회3수懷三首) 기3(其三)에 “죽어서 한 무덤에 묻히기를 어찌 바라며, 내세에서의 인연도 기대하기 어렵구나. 오직 이 밤이 다하도록 눈 뜨고서, 그대 평생 펴지 못한 미간에 보답하리라.[同穴窅冥何所望, 他生緣會更難期. 唯將終夜長開眼, 報答平生未展眉.]”라고 한 데서 보인다. 원진(元稹)의 견비회(遣悲懷)는 일찍 죽은 아내를 애도(哀悼)하는 시로 모두 3수이다.
- 회진[會盡] 모든 것을 깨달아 앎.
- 수교[隨敎] 시키는 대로 따라 함. ~하는 대로 따르다.
- 호우환마[呼牛喚馬] 소라고 부르건 말이라고 부르건 상관하지 않음. 시비(是非)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맡기고 자신은 상관하지 않음. 훼예(毁譽)를 남들이 말하는 대로 따름. 이름이 실제에 부합하게 불리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자(莊子) 천도(天道)에 “예전에 그대가 나를 소라고 불렀다면 나도 스스로 소라고 여겼을 것이고, 나를 말이라고 불렀다면 나도 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진실로 그 실제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더 큰 재앙을 받는다.[昔者子呼我牛也而謂之牛, 呼我馬也而謂之馬, 苟有其實, 人與之名而弗受, 再受其殃.]”라고 하였다. 후에는 세상의 근거 없는 칭찬과 비난을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호마호우(呼馬呼牛). 호우호마(呼牛呼馬).
- 점두[點頭] 머리를 끄덕임. 응락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임. 승낙하거나 찬성하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참고로, 동진(東晉) 때 도생화상(道生和尚: 축도생竺道生)이 소주(蘇州)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돌을 모아놓고 열반경(涅盤經)을 강하면서 ‘선심이 없는 자도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一提皆具佛性]’라는 부분에서 묻기를 “내가 말하는 법이 불심에 들어맞는가?”라고 하니 모든 돌이 고개를 끄떡였다는 고사가 있고, 후청록(侯鯖錄)에 “구양수가 지공거로 고시를 보일 때마다, 좌석 뒤에 한 붉은 옷 입은 사람이 있음을 느꼈는데, 그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연후에는 그 글이 뽑혔다.[歐陽修知貢舉日, 每遇考試卷, 坐後常覺一朱衣人時複點頭, 然後其文入格.]”는 고사에서 보인다.
【譯文】 毁譽褒貶, 一任世情.
熟知人世滋味, 任憑他人翻手作雲覆手雨, 總是懶得睜開眼睛去看 : 看透人情世故, 隨意讓人去時呼牛來喚馬, 只是若無其事點頭應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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