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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민[頭民], 두밀[杜密], 두발상지[頭髮上指], 두방[杜房], 두방소조[杜房蕭曹]


두민[頭民]  동네의 나이가 많고 식견이 높은 사람. 두민(頭民)은 나이가 많고 식견이 있어 한 마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토호(土豪)를 말한다.

두밀[杜密]  두밀(杜密)은 후한 영천(穎川) 양성(陽城) 사람이다. 환제(桓帝) 때 상서령(尙書令)이 되고 태복(太僕)에 올랐다. 환관(宦官)의 전권(專權)을 반대하다가, 영제(靈帝) 건녕(建寧) 2년(169)에 환관들로부터 이른바 ‘당고(黨錮)의 화’를 당하여 투옥되자 자결하였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두밀[杜密]  중국 후한(後漢)의 관리로, 자는 주보(周甫)이다. 사도(司徒) 호광(胡廣)에게 발탁되어 태산 태수(太山太守), 북해상(北海相)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현(鄭玄)을 발탁하기도 하였다. 환관의 자제 가운데 간악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체포하다가 파직되고 귀향하였다. 환제(桓帝) 때 다시 기용되어 태복(太僕)에 올랐으나 166년(연희9) 당고(黨錮)의 화를 당하여 면직되고 돌아왔다. 이응(李膺)과 명성을 나란히 하여 ‘이두(李杜)’로 불렸으며, “천하의 훌륭한 보필 두주보[天下良輔杜周甫]”라는 칭송을 들었다. 영제(靈帝) 초 두무(竇武)가 정권을 잡았을 때 태복이 되어 환관을 일소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이 누설되어 투옥된 뒤 자살하였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두발상지[頭髮上指]  노여움으로 머리털이 곤두선다는 뜻으로 몹시 노하는 모습의 형용으로, 진(秦)나라 말기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홍문(鴻門)에서 만나 베풀었던 잔치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범증(范增)이 항장(項莊)을 시켜 유방을 죽이려 하였는데 유방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은 번쾌(樊噲)가 연회석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묘사하여 “번쾌(樊噲)는 즉시 칼을 차고 방패를 들고 군진의 문으로 들어갔다. 창을 엇갈리게 들고 지키고 있는 호위병들이 막으며 들여보내려 하지 않았다. 번쾌가 그들의 방패를 비껴 치자 호위병들이 땅에 엎어졌다. 번쾌는 안으로 들어가 장막을 들추고 서쪽을 향해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항우를 바라보는데 그의 머리카락이 모두 솟구치고 눈초리가 찢어질 대로 찢어져 있었다.[噲卽帶劍擁盾入軍門. 交戟之衛士欲止不內, 樊噲側其盾以撞, 衛士扑地, 噲遂入, 披帷西嚮立, 瞋目視項王, 頭髮上指, 目眥盡裂.]”라고 한 데서 보인다. 진목열자(瞋目裂眦).

두방[杜房]  두(杜)와 방(房)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개국 공신(開國功臣)이자 명상(名相)인 방현령(杜如晦)과 두여회(房玄齡)를 가리킨다. 당 태종(唐太宗)을 도와 정관(貞觀)의 치적을 구현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방현령은 작전을 잘 세우고 두여회는 결단을 내렸으므로 방모두단(房謀杜斷)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종조의 쌍벽이었다. <당서(唐書) 卷96> <구당서(舊唐書) 卷66 방현령열전(房玄齡列傳), <두여회열전(杜如晦列傳)>

두방소조[杜房蕭曹]  두방(杜房)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상이었던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의 병칭인데, 두여회는 결단에 뛰어났고, 방현령은 모책에 뛰어났다고 한다. 소조(蕭曹)는 한(漢)나라 초기의 제일공신(第一功臣)으로 첫 번째 승상인 소하(蕭何)와 두 번째 승상인 조참(曹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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