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杜序] 진(晉) 나라 두예(杜預)의 서문을 이른다.
두서기평선[杜書記平善] 평선(平善)은 무사(無事)하다는 뜻과 같다. 두목(杜牧)이 일찍이 양주(揚州)에서 우승유(牛僧孺)의 막료(幕僚)로 있을 때, 밤이면 으레 미복(微服) 차림으로 홍등가(紅燈街)를 누비고 다녔으므로, 우승유가 그 사실을 알고는 가졸(街卒)들을 시켜 몰래 두목의 뒤를 수행하면서 뜻밖의 봉변에 대비하도록 했다. 뒤에 두목이 조정으로부터 습유(拾遺)를 제수받고 돌아가게 되자, 작별하는 자리에서 우승유가 두목에게 지나친 방종을 경계하면서 한 상자의 문서를 꺼내어 두목에게 보였던바, 그 내용은 모두 가졸들이 우승유에게 보고한 문서로서, 즉 ‘두 서기는 무사하다.[杜書記平善]’라는 문서뿐이었으므로, 두목이 크게 감복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두목(杜牧)은 당(唐) 나라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강직한 성품으로 당 나라의 쇠운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였다. 산문과 시에 뛰어났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잘 하였다.
두석[豆錫] 놋쇠. 구리에 아연(亞鉛)을 10~45% 넣어 만든 합금(合金). 가공(加工)하기 쉽고 녹슬지 않아 공업(工業) 재료(材料)로 널리 쓴다.
두석산[豆石山]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리 소재지 남동쪽 개성시와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두석원환[豆錫圓環] 두석(豆錫)으로 된 둥근 쇠고리. 두석은 구리와 아연을 합금한 금속이다.
두석장[豆錫匠] 구리와 아연 등을 합금하여 두석으로 장식을 만드는 장인을 이른다.
두석조이변철[豆錫召伊邊鐵] 조각을 한 두석으로 만든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쇳조각을 이른다.
두석침자[杜錫針刺] 진서(晉書) 권53 민회태자전(愍懷太子傳)에, 진(晉)나라 태자사인(太子舍人) 두석(杜錫)이 태자에게 덕을 닦고 선행을 쌓으며 참소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멀리하라고 권면하자, “태자가 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두석이 항상 앉는 방석에 바늘을 꽂게 해서 그가 앉을 때 찔리게 하였다.[太子怒, 使人以鍼著錫常所坐氈中而刺之.]”라는 기록이 나온다.
두석토환[豆錫吐環] 두석으로 만든 요대(腰帶)를 꾸미는 둥근 고리를 이른다.
두선[頭癬] 머리에 회백색의 비듬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증으로 어린아이에게 많다.
두설장[豆屑匠] 팥가루를 만드는 공장(工匠)을 이른다.
두섬[杜暹]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명신으로 예부 상서를 지내고 효성, 절검(節儉), 청렴, 장서가 등으로 저명한 인물이다. 초년에 친한 이들로부터 물품을 받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평생 지켰고, 무주 참군(婺州參軍)이 되었다가 이임할 때 고을 아전이 종이 1만 장을 선물로 주니 1백 장만 받고 나머지를 돌려주어 ‘백지참군(百紙參軍)’이라는 칭송을 들었고, 감찰어사가 되어 지방의 분쟁을 안찰할 때 뇌물로 바치는 금을 사양하다가 받아 땅에 묻고는 퇴임하면서 공문을 보내 파내어 취하도록 하였다. <新唐書 杜暹傳> 집에 많은 책을 소장하고는 모든 책에 발문(跋文)을 써서 자손에게 훈계하기를 “이 책들은 내가 녹봉(祿俸)을 받아 구입해서 손수 교정한 것이니, 자손들이 읽으면 성인(聖人)의 도를 알 것이다. 그러니 이를 팔거나 남에게 빌려 주는 것은 모두 불효(不孝)이다.[請俸寫來手自校 子孫讀之知聖敎 鬻及借人爲不孝]”라고 하였다. <太平廣記> 또 어릴 때 하수를 건너기 위해 배에 탔는데, 어떤 노인이 한사코 부르며 내리라고 하여 내려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다리던 배가 두섬의 짐을 내려놓고 지레 떠나다가 곧 좌초되어 사람들이 다 죽었고 두섬만 살아남았다. 그 노인이 “당신은 재상의 사업이 매우 귀중하다. 그래서 불러서 구해준 것이다.[子卿業貴極, 故來相救.]”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廣異記>
두섬장서[杜暹藏書] 두섬(杜暹)은 당 현종(唐玄宗) 때의 재상이다. 두섬(杜暹)은 만 권의 책을 모았는데, 책마다 뒤에 ‘녹봉을 털어 베껴와서 직접 교감한 것이니, 자손들은 이를 읽고 성인의 가르침을 알게 될 것이다. 팔거나 남에게 빌려준다면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다.[請俸寫來手自校 子孫讀之知聖敎 鬻及借人爲不孝]’라고 썼다. 이 내용이 고금사문유취 별집(古今事文類聚別集) 권3 유학부(儒學部) 장서(藏書) 제장서후(題藏書後)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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