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소지배[斗筲之輩] 두(斗)는 10되(升), 소(筲)는 12되의 용기(容器)이니, 두소의 무리는 속이 좁고 얕은 자질구레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오늘날의 위정자는 어떻습니까?[今之從政者 何如]”라는 자공(子貢)의 물음에, 공자가 “두소의 무리야 따질 것이 뭐가 있겠느냐.[斗筲之輩 何足算也]”라고 대답한 데서 보인다.
두소지인[斗筲之人] 두(斗)는 한 말 들이의 양명(量名)이고, 소(筲)는 한 말 두 되 들이의 대그릇을 말하는데, 모두 작은 그릇으로서 국량(局量)이 좁은 사람에 비유한다. 자공(子貢)이 일찍이 공자에게 묻기를 “지금 세상의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아, 두소 같은 사람들을 어찌 셀 것이나 있겠느냐.[噫 斗筲之人 何足算也]”라고 하였다. <論語 子路>
두소지재 천유지지[斗筲之才 穿窬之智] 두(斗)는 말이고 소(筲)는 대나무로 만든 작은 용기인데, 두(斗)는 10승(升)을 담고 소(筲)는 1두(斗) 2승(升)을 담으므로, 인신하여 기량이 협소하고 변변치 못한 재주나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천유(穿窬)는 도둑이 남의 담을 뚫거나 넘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천유지지(穿窬之智)는 좀도둑의 작은 지혜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상군론(商君論)에 “상홍양(桑弘羊)에 이르러서는 하찮은 국량의 보잘것없는 재주요 남의 집 담을 뚫고 담을 넘어가 도둑질하는 작은 지혜로 말할 만한 것이 못 되는데, 사마천(司馬遷)이 그를 칭찬하기를 ‘세금을 더 부과하지 않고도 나라의 재용을 풍족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至於桑弘羊, 斗筲之才, 穿窬之智, 無足言者, 而遷稱之曰 不加賦而上用足.]”라고 한 데서 보인다.
두소진순[杜召陳荀] 예전 목민관으로 칭송된 사람들을 말한다. 두소(杜召)는 전한(前漢) 두시(杜詩)와 소신신(召信臣)을 가리키며, 진순(陳荀)은 동한(東漢)의 진식(陳寔)과 순숙(荀淑)을 가리킨다.
두소천유[斗筲穿窬] 두(斗)는 한 말이고 소(筲)는 한 말 두 되들이로 두소(斗筲)는 지식이 짧고 기국이 좁은 사람을 비유하며, 천(穿)은 남의 집 담을 뚫는 것이고 유(窬)는 담을 넘어가는 것으로 모두 좀도둑을 가리킨다.
두속[斗粟] 한 말 정도의 적은 곡식. 두속(斗粟)은 박봉(薄俸)을 말한다. 도연명(陶淵明)이 “다섯 말 쌀 때문에 허리를 꺾어 향리의 어린아이에게 굽실거릴 수는 없다.[吾不能爲五斗米折腰 拳拳事鄕里小人邪]”라고 하고는, 즉시 수령의 인끈을 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가 전한다.
두속가용[斗粟可舂]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을 기롱한 말. 한 고조(漢高祖)의 여섯째 아들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이,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자, 반역하는 짓을 하므로 왕위(王位)를 폐하고 촉군(蜀郡)의 엄도(嚴道)로 추방하니 먹지 않고 굶다가 죽으매, 백성들이 회남왕을 위한 노래를 지어 기롱하기를 “한 자의 베도 오히려 기워서 옷을 만들어 같이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조도 오히려 찧어서 밥을 지어 함께 먹을 수 있는데, 형제 두 사람이 천하를 가지고도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一斗布尙可縫 一斗粟尙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라고 하였다. 사기(史記) 회남왕류장전(淮南王劉長傳)에 보인다.
두속절요[斗粟折腰]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현령(彭澤縣令)으로 있다가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힐[折腰] 수는 없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94 隱逸列傳 陶潛>
두속지가[斗粟之歌] 두속(斗粟)의 노래. 형제 간에 서로 화목하지 못한 것을 풍자한 노래. 사기(史記) 회남여왕장전(淮南厲王長傳)에 “한 문제(漢文帝)가 회남 여왕 장(淮南厲王長)을 촉(蜀) 지방으로 귀양보내자 민간에 ‘한 자 베도 오히려 꿰매서 같이 옷 해입을 수 있고 한 말 곡식도 방아 찧어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인데, 형제 두 사람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다니.[一斗布尙可縫 一斗粟尙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라고 하는 노래가 유행했다.”라고 하였다.
두속지자[斗粟之刺] 아우를 죽인 것에 대한 풍자를 말한다.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역모를 꾀한 아우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을 촉(蜀)에 귀양 보내 죽게 하자 백성들이 “한 자의 베도 바느질하여 함께 옷을 해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곡식도 절구질하여 함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건만, 형제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구나.[一斗布尙可縫 一斗粟尙可舂 兄弟二人不能相容]”라고 비난하였다. <史記 淮南衡山列傳>
두손[蠹損] 벌레 먹음.
두솔궁[兜率宮] 도솔궁은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있는 칠보(七寶)로 된 궁전. 석가여래가 전생에 도솔궁에서 머물렀는데, 중생 제도의 인연을 품부받고 이 세계에 내려왔다 한다.
두솔궁[兜率宮] 도솔궁. 옥황상제와 신선이 살고 있다는 궁전을 말한다.
두송[杜松] 자는 내청(來靑). 명(明) 나라 말기의 장수로 담력과 지혜가 뛰어나 주요 군직(軍職)을 역임하면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다. 1619년에 양호(楊鎬)가 후금(後金)을 공격할 때 그의 주력(主力)이 되어 함께 출전하였으나, 자신의 용맹을 믿고 경솔하게 진격하다 후금의 군대에 크게 패하고 자신도 전사하였다.
두송[杜松] 명말(明末)의 장군으로 산해관(山海關)을 지키고 있다가 청군(淸軍)과 싸워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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