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숙[豆菽] 콩류를 총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豆’는 팥[小豆]이다.
두숙고[杜叔高] 송나라 때의 금화(金華) 사람으로 이름은 유(斿)이다.
두숙향[竇叔向] 당(唐) 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유직(遺直)이고 장안(長安)사람이다. 평릉(平陵)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대력(大曆 766~779) 초기에 진사가 되었고 시명을 널리 알렸으나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그는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모두 부친의 이름을 능가할 만큼의 시적 성취를 이뤄 당시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아쉽게도 그의 시는 대부분 산실되고 남은 것이 많지 않은데 전당시(全唐詩)에 겨우 9수가 전한다.
두순[杜順] 두순은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인 법순(法順)으로 제심존자(帝心尊者)로 불리기도 한다. 18세 때 출가하여 인성사(因聖寺)의 진(珍)에게 선(禪)을 배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병을 고치고 불법(怫法)을 가르쳤다.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關門), 법계관문(法界觀門) 등의 저서가 있다.
두순법계관[杜順法界觀] 두순(杜順)의 법계관(法界觀). 두순(杜順)은 당나라의 승려 이름이고, 법계관(法界觀)은 그가 화엄경(華嚴經)을 풀이하여 지은 책 이름이다. <文獻通考 卷227>
두순압[杜荀鴨] 당나라 두순압(杜荀鴨)은 시인(詩人) 두순학(杜荀鶴)을 사모하여 순압(荀鴨)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두순학[杜荀鶴] 만당(晩唐)의 대시인 두목(杜牧)의 막내아들로서 미자(微子: 다른 집에 입양한 아들)라고 한다. 자(字)는 언지(彦之), 자호(自號)는 구화산인(九華山人). 벼슬은 지제고(知制誥)에 이르렀으며 시를 잘하였다. 농촌에서 낳고 자랐으며 난리를 만나 피난생활을 했다. 질곡에 빠진 민간의 삶을 근체시로 썼으며 도탄에 빠진 사회를 비판하였다.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풍격이 청신하여 후인들이 그의 작품을 두순학체(杜荀鶴體)라고 불렀다. 당풍집(唐風集) 10권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두목(杜牧)의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하는데, 두목(杜牧)의 첩 정씨(程氏)가 두순학을 임신했을 때에 집에서 쫓겨나 홀로 두순학을 낳았다고 한다. 그는 술과 산수를 좋아하였고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구화산(九華山)에 살아 구화산인이라고 자칭하였다.
두순학[杜荀鶴] 만당(晩唐)의 현실주의 시인으로 자(字)는 언지(彦之)이고 호는 구화산인(九華山人)이며, 지주(池州) 석태(石埭: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석태현石埭縣) 사람이다. 당(唐)나라 소종(昭宗) 대순(大順) 2년(891)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말년에 양(梁)나라의 주전충(朱全忠)에게 인정받아 주전충이 당나라를 찬탈하여 칭제(稱帝)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하였으나 5일 만에 세상을 떴다. 당말(唐末) 격변기에 농민의 삶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며 당풍집(唐風集)이 전한다. 두목(杜牧)에게 첩이 있었는데, 이 첩이 임신한 상태에서 쫓겨나 두균(杜筠)에게 출가하여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두순학(杜荀鶴)이라는 내용이 고금사문유취후집(古今事文類聚後集) 권16 인륜부(人倫部) 총첩(寵妾) 첩잉이가(妾孕而嫁) 등에 보인다.
두습유[杜拾遺]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두보가 한때 좌습유左拾遺를 역임했다. 두보(杜甫)의 시 도보귀행(徒步歸行)에 “청포 입은 조사 중에 가장 빈곤한 나는, 백발의 습유로서 도보로 돌아가노라.[靑袍朝士最困者 白頭拾遺徒步歸]”라고 하였다. 청삼(靑衫: 푸른 도포)은 당(唐) 나라 때 8품, 9품의 관복(官服)으로, 전하여 미관말직을 의미한다.
두승[斗升] 말과 되. 아주 작은 수량의 곡식을 말한 것으로, 전하여 미관말직의 하찮은 녹봉을 가리킨다.
두승지수[斗升之水] 현재의 곤경을 해결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을 이른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장주(莊周)가 일찍이 어디를 가는데 붕어 한 마리가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있으면서 길 가는 장주(莊周)에게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자신을 살려줄 수 있겠느냐고 하므로, 장주가 장차 오월(吳越) 지방으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대주겠다고 하자, 그 붕어가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만 얻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니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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