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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식[斗食]  세록(歲祿)이 1백 석이 안 되는 하급 관리를 이른다.

두식좌사[斗食佐史]  봉록이 적은 낮은 관리를 이른다. 한서(漢書) 명질부(名秩簿)에 “두식(斗食)은 월봉(月俸)이 11곡(斛)이고, 좌사(佐史)는 월봉(月俸)이 8곡(斛)이다.[斗食月奉十一斛, 佐史月奉八斛.]”라고 하였다.

두신[痘神]  마마(媽媽) 별성(別星). 천연두(天然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한다는 여신(女神)으로, 보통 호구별성(戶口別星)으로 불린다. 윤기(尹愭)의 도두신문(禱痘神文)에 “내가 저녁에 집을 나서다가, 사람들이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싸리나무 말[杻馬]과 높은 볏짚 술잔을 가지고 무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궁금해서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촌 할멈 하나가 나서며 ‘지금 두신(痘神: 마마媽媽)가 우리 집에 머문 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신령함을 드러내어 오묘한 일들을 하셨다오. 처음에는 아이의 병이 가볍다가 무겁다가 하고 병세가 급하다가 더디다가 하고 반점이 깊다가 얕다가 빽빽하다가 드물다가 하더니, 탱탱 붓던 곳에 고름이 지고 고름이 앉았던 자리에 딱지가 생기더이다. 그런데 두신의 영험이 얼마나 신묘하던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더이다. 글쎄, 보름이 지나자 깨끗이 나았지 뭐요. 하지만 연약한 곳이 변하여 단단해지기도 하고 아름다운 곳이 둔갑하여 흉이 지기도 하니, 반드시 정갈하게 재계하고 말과 행동을 삼가서 절대로 바깥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해서는 안 된다오. 냄새나는 것, 더러운 것, 외람된 것, 추악한 것들을 일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니, 혹시라도 금기를 범하면 당장 탈이 나고 말지요. 그동안 몹시 두려워하며 두신을 모셨는데 이제 두신이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어찌 감히 행장을 잘 갖추어서 그동안 돌봐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無名子莫出, 見有折杻爲馬, 編藁崇斝, 若將有事者, 訝而詢之是何故也. 村婆進曰 : 今茲痘神客吾家, 幾一朔于茲, 式顯厥靈, 妙運其機, 始兒之病也. 或輕或重, 或速或遲, 其發癍也. 或深或淡, 或密或稀, 脹而膿膿而痂, 有驗孔神, 不差毫釐. 盖三五日而後良已. 虛軟者或變而爲堅緻, 美妙者或幻而爲險詭, 必齋㓗肅淸, 謹言語愼行止, 不接外人, 不作他事, 凡臭穢猥惡之類, 一切不使邇焉, 苟或犯是, 動有其祟, 茲故俺等奉之甚惴, 神今駕有日矣, 敢不祗戒行李, 以謝其庇.]’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無名子集 文稿 册1 禱痘神文>

두실[豆實]  두(豆)는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이고, 실(實)은 제기에 담는 제수(祭需)를 이른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주례변실두실변증설(周禮籩實豆實辨證說)에 “우리나라에서는 싱거운 저를 담제(淡虀)라 하고, 짠 저를 함제(醎虀)라 하며, 젓갈과 나물을 섞어서 담근 저가 교침제(交沈虀)인데, 통칭 침채(沈菜)라 한다.[我東則淡菹曰淡虀, 醎菹曰醎虀, 雜醢菜沈菹曰交沈虀, 總名曰沈菜.]”라는 구절이 보인다.

두실[斗室]  아주 좁은 방. 아주 작은 집. 기껏 한 말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방. 참고로, 청대(清代) 황중견(黃中堅) 시 문(蚊: 모기)에 “좁은 방에 알락다리모기 어찌나 모여드는지, 천둥소리처럼 시끄럽고 구름 모이듯 하네. 많지 않은 한 방울 영웅의 피를, 한가해진 노년에 참고 그대에게 맡기네.[斗室何來豹脚蚊, 殷如雷鼓聚如雲. 無多一點英雄血, 閑到衰年忍付君.]”라고 한 데서 보인다. 이 시는 송대(宋代) 황정견(黃庭堅)의 시라고도 하고, 청대(清代) 심소희(沈紹姬)의 시라고도 하니, 작자가 확실치 않다.

두심언[杜審言]  당조(唐朝) 때 시인으로 자(字)는 필간(必簡)이며, 양양(襄陽: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사람인데, 훗날 하남성(河南省) 공현(鞏縣)으로 옮겨 살았다. 진(晉)의 명장이자 학자였던 두예(杜預)의 자손이며, 성당(盛唐)의 대시인 두보(杜甫)의 조부(祖父)이다. 함형(咸亨) 원년(670)에 진사가 된 뒤에 습성위(隰城尉)와 낙양승(洛陽丞)을 지냈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저작좌랑(著作佐郞)에 임명되었고, 수문관(修文館) 학사(學士)로 승진하였다. 중종(中宗) 때 간신 장역지(張易之)와 내왕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교지(交趾)로 유배되었다가 돌아와 국자주부(國子主簿)와 수문관직학사(修文館直學士)를 지냈다. 오언시(五言詩)와 서한(書翰)에 능하였다. 서릉(徐陵)과 유신(庾信)으로부터 점차 형성되어 오던 근체시의 정격을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問) 등과 완성하였으며, 이교(李嶠), 최융(崔融), 소미도(蘇味道)와 함께 문장사우(文章四友)로 일컬어졌다. 그가 지은 화이대부사진봉사존무하동(和李大夫嗣真奉使存撫河東)은 40운으로 초당 근체시 중 제1장편으로 꼽힌다. 젊어서부터 문명을 떨쳤지만 시 43수가 전할 뿐이다. 저서에 두심언집(杜審言集) 10권이 있다.

두십이[杜十姨]  명대(明代) 장정사(張鼎思: 자 예보睿甫)의 편저(編著) 낭사대취편‧신선(琅邪代醉編‧神仙)에 “항주(杭州)에 두습유(杜拾遺)의 묘(廟)가 있어 두보의 제사(杜甫)를 지내는데 촌학구가 잘못 두십이(杜十姨)라 쓰고 드디어 여상(女像)으로 만들어 유령(劉伶)과 짝을 지었다.[杭州有杜拾遺廟, 以祀杜甫, 有村學誤爲杜十姨, 遂作女像, 以配劉伶.]”고 하였다.

두십천[斗十千]  술값이 한 말[斗]에 만전(萬錢)이란 뜻으로, 왕유(王維)의 시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십천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 서로 만나 의기로 그대 위해 술 마시니, 높은 누각 수양버들 가에 말 매어 놓았네.[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 相逢意氣爲君飮, 繫馬高樓垂柳邊.]”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십천(十千)은 천의 열 배, 즉 만을(萬) 뜻한다. 당시의 말[斗]은 약 2리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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