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불고 노래하며 한창 흥이 오른 곳에서
문득 스스로 옷소매를 떨치고 멀리 떠나는 것은
달인이 벼랑에서 손을 놓는 것처럼 바람직한 일이다.
시간이 이미 다 됐는데도 여전히 밤길을 서성이는 것은
속된 선비가 고해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이다.
笙歌正濃處, 便自拂衣長往, 羨達人撤手懸崖.
생가정농처, 변자불의장왕, 선달인철수현애.
更漏已殘時, 猶然夜行不休, 笑俗士沈身苦海.
경루이잔시, 유연야행불휴, 소속사침신고해.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생가[笙歌] 생황(笙簧)과 노래. 생황을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 생황(笙簧)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다. 악기를 타며 노래하다. 생황(笙簧)은 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管樂器)이다. 큰 대로 판 통에 많은 죽관(竹管)을 돌려 세우고, 주전자(酒煎子) 귀때 비슷한 부리로 불게 되어 있다. 옛날 연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생황(笙簧)을 연주하곤 했는데, 이 노래와 연주곡은 모두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있는 것들로, 합쳐서 생가(笙歌)라 하며, 바뀌어 전아한 노래로서의 아악(雅樂)을 뜻하기도 한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공자가 상제를 지낸 지 5일 만에 거문고를 탔으나 소리를 이루지 못했고, 10일 만에야 생황을 불고 노래를 할 수 있었다.[孔子旣祥, 五日彈琴而不成聲, 十日而成笙歌.]”라는 내용이 이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연산(宴散)에 “생가 소리 집 안에 돌아가고, 등불은 누대에서 내려오네.[笙歌歸院落 燈火下樓臺]”라고 한데서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증왕자직수재(贈王子直秀才)에 “물 밑의 생가 소리는 개구리의 양부고취요, 산중의 노비 대신은 귤나무 천 그루로다.[水底笙歌蛙兩部 山中奴婢橘千頭]”라고 한데서 보인다.
- 생황[笙簧] 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管樂器)의 하나이다. 簧(황)은 笙(생)을 부는 곳에 끼어 소리를 내게 하는 황편(簧片: 관의 구멍에 붙인 엷은 조각), 즉 리드(reed 笙中簧片)를 가리킨다. 큰 대[竹]로 판 통(桶) 모양의 대마디 위에 길고 짧은 17개의 죽관(竹管)을 둥글게 돌려 세운 것인데, 그중에 두개는 무음(無音)이고 다른 15개는 그 안팎에 지공(指孔)이나 음공(音孔)이 있고, 끝에 소리를 울리게 하는 혀를 박아서 주전자(酒煎子) 귀때 비슷한 부리로 불거나 들이마시어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한 음(音)씩 내는 식과 5~6음씩을 한 번에 울리게 하는 합죽(合竹)식이 있다. 생황은 기후가 차갑고 더움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나므로, 이것을 아첨 잘하는 간신들이 때에 따라 말을 달리하는 데에 비유하고, 소리 나는 구멍이 여럿이므로 그와 같이 말하는 입이 여럿임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 예로, 시경(詩經) 교언(巧言) 제5장에 “부드러운 나무를 군자가 심었으며 오고 가는 길에서의 말을 마음에 분변하느리라. 편안하고 느린 훌륭한 말은 입으로부터 나오거니와 생황의 혀 같은 공교로운 말은,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란다.[荏染柔木, 君子樹之. 往來行言, 心焉數之. 蛇蛇碩言, 出自口矣. 巧言如簧, 顔之厚矣.]”라고 하여 소인들이 교묘하게 꾸며대는 참언(讒言)에 비유하였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칠월일일제종명부수루[七月一日題終明府水樓]에 “절벽에 지나가는 구름은 금수암(錦繡巖) 열고, 성근 솔은 물 건너 생황을 연주하는구나.[絶壁過雲開錦繡, 疏松隔水奏笙簧.]”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鹿鳴)에 “젓대 불면 설관 떨며 소리를 내고, 광주리에 예물 담아 정성껏 올리네.[吹笙鼓簧, 承筐是將.]”라고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은 소(疏)에 “주나라 천자가 신하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고, 악기를 연주하여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周天子召集臣下共行宴亨之禮, 要吹笙鼓簧以娛樂嘉賓.]라고 하였다. 또, 봉황의 울음소리가 생황과 비슷했다고 하는데,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 즉 왕자교(王子喬)가 생황[笙]을 잘 불어 봉황(鳳凰)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이락(伊洛)의 사이에 노닐다가, 신선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숭고산(崇高山)에 올라가서 30여 년 동안 선술을 닦고 뒤에 하남성(河南省) 구지산(緱氏山) 정상에 백학(白鶴)을 타고 내려왔다가 며칠 머무른 뒤 사람들과 작별하고 다시 떠났다는 절설이 있다. <列仙傳 王子喬> <類說>
- 불의[拂衣] 불의(拂衣)는 옷소매를 떨치고 떠나가는 것으로 은거함을 이른다. 사직하다. 소매를 떨치고 떠나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귀은(歸隱)하다. 옷소매를 휘젓다. 격분하다. 옷자락을 걷어올림. 힘차게 일어나는 모양. 옷의 먼지를 떪. 붙잡는 옷소매를 뿌리침. 옷자락을 추어올림. 분연히 일어나는 모양. 결연히 떠나감. 은자(隱者)가 됨. 참고로, 진(晉)나라 은중문(殷仲文)의 해상서표(解尙書表)에 “물러나서는 수양산에서 곡식을 사양하고 옷깃을 떨치며 고상하게 은거하지 못하였습니다.[退不能辭粟首陽拂衣高謝]”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곡강대주(曲江對酒)에 “벼슬에 얽매인 정 창주가 멂을 새삼 깨달으니, 나이 먹음에 옷 털고 일어나지 못함을 슬퍼하네.[吏情更覺滄州遠 老大徒傷未拂衣]”라고 하였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제사공동산장자(題謝公東山障子)에 “오직 풍류 높은 사안석만 있어, 옷 털고 기녀 거느린 채 동산으로 들어갔네.[唯有風流謝安石, 拂衣攜妓入東山.]”라고 하였고, 왕유(王維)의 시 송장오귀산(送張五歸山)에 “함께 지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느닷없이 벼슬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네.[幾日同携手, 一朝先拂衣.]”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 등금릉치성서북사안돈(登金陵治城西北謝安墩)에 “공을 이루면 관복을 벗고 떠나서, 무릉도원 꿈꿈던 곳으로 돌아가리라.[功成拂衣去, 歸入武陵源.]”라고 한데서 보인다.
- 장왕[長往] 세상을 피해 멀리 은거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음. 세상을 버리고 아주 은둔함. 멀리 가서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는다[長往不返]. 한번 떠난 뒤에 돌아오지 않다.[一去不返]. 속세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다[背俗入山.]. 세상을 피해 은거하다[避世隱居]. 죽음의 완곡한 표현[死亡的婉死]. 참고로,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풍류스런 마음은 해보다도 왕성하고, 서릿발 같은 기상은 가을을 덮었으니, 은자들이 오래전에 가버렸음을 탄식하는가 하면, 왕손(王孫)이 이곳에 노닐지 않음을 원망하기도 하였다.[風情張日, 霜氣橫秋, 或歎幽人長往, 或怨王孫不游.]”라고 하였고, 반악(潘岳)의 서정부(西征賦)에 “산림 속에 깊이 숨은 선비여,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았네.[悟山潛之逸士 卓長往而不返]”라고 한데서 보인다.
- 달인[達人]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 속이 넓고 호방한 사람. 사리에 통달한 사람. 활달하고 호방한 사람.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작은 지혜는 스스로 사사로이 여겨서 상대는 천하게 보고 나 자신은 귀하게 여기나, 통달한 사람은 대관하여 누구에게든 불가할 게 없다네.[小智自私兮, 賤彼貴我. 達人大觀兮, 物無不可.]”라고 하였다.
- 현애[懸崖] 높이 솟은 절벽.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 벼랑에 걸침. 분재(盆栽)에서 줄기나 가지가 뿌리보다 낮게 처지도록 가꾸는 일.
- 철수[撤手] 살수(撒手). 방수(放手). 동사 손을 놓다. 손을 풀다. 손을 떼다. 포기하다. 방치하다. 세상을 저버리다. 세상을 뜨다. 별세하다. 하직하다. 돌아가다. 운명하다. 죽다. 원(元)나라 석옥청홍선사(石屋淸洪禪師)의 시에 “멀리 바라보매 길이 험해 대개가 물러서는데, 어느 누가 손 늫는 것을 기꺼이 감당하겠는가.[望見嶮巇多退步, 有誰撒手肯承當.]”라고 하였다.
- 철수현애[撤手懸崖] 현애철수(懸崖撤手). 현애살수(懸厓撒手). 벼랑에서 손을 놓음.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을 때 과감하게 손을 놓아 떨어짐. 세상의 큰 것을 잃음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용기를 말함. 벼랑에 매달려서 손을 놓아 버린다는 뜻으로 도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용맹정진의 결기를 나타낸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와 유사한 표현이다. 송(宋)나라 승려 야보도천(冶父道川)의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의 게송(偈頌)에 “나무에 오르려 가지를 잡는 것은 특이할 것이 없으니, 낭떠러지에 매달려 손을 놓는 것이 대장부로다.[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라고 한데서 보이고, 역대 선승들의 화두를 모아놓은 무문관(無門關)과 간화선(看話禪)의 완성자로 알려진 송(宋)의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어록인 대혜어록(大慧語錄)에도 보인다.
- 경루[更漏] 밤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 하루 오경의 시간을 알리는 물시계. 밤 동안의 시간(時間)을 알리는 누수(漏水). 물시계를 이용하여 때를 알리는 설비.
- 유연[猶然] 여전히. 아직도. 히죽이. 빙그레. 미소 짓는 모습. 참고로, 통감(通鑑)에 “당나라 사람들이 서로 부탁하는 것을 관절(關節)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러하다.[人謂相屬請爲關節此語至今猶然]”라고 한 데서 보이고,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런데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자기만족의 인물들을) 빙그레 비웃는다. 그리하여 그는 온 세상이 모두 그를 칭찬하더라도 더 힘쓰지 아니하며 온 세상이 모두 그를 비난하더라도 더 기(氣)가 꺾이지 아니한다[而宋榮子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 而不加勸, 擧世而非之, 而不加沮.]”라고 한데서 보인다.
- 종명루진[鍾鳴漏盡] 시간이 늦었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물시계가 다함. 치사(致仕)할 나이가 넘었는데도 벼슬길에 머물고 있는 것. 늙어서까지 계속 벼슬길에 남아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사람이 늙어서 죽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전예(田豫)가 노년에 위위(衛尉: 종3품 벼슬, 태후삼경太后三卿 중의 하나)에 임명되자 늙고 병들었다는 핑계로 사양하며 “70세가 넘었는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늦은 시각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물시계의 물이 다하였는데도 밤길을 걸어 쉬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는 바로 죄인이다.[年過七十而居位 警猶鐘鳴漏盡 而夜行不休 是罪人也]”라고 하고는 이윽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종명누진(鍾鳴漏盡).
- 야행불휴[夜行不休] 늙고 병들었는데도 벼슬에서 물러날 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인물인 전예(田豫)가 남양태수(南陽太守)로 승진했을 때 여러 번 사직을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자 “나이가 일흔을 넘어서도 벼슬자리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인경이 울리고 통금 시간이 끝났음에도 야간 통행을 멈추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죄인이다.[年過七十而以位居, 譬猶鍾鳴漏盡而夜行不休, 罪人也.]”라고 하고는 이윽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는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26 田豫傳>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2 退隱部 鍾鳴漏盡>
-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 고통스런 환경. 곤경. 현세(現世)의 괴로움이 깊고 끝없음을 바다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의 세계라는 뜻으로, 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불가(佛家)의 말에 “고해는 끝이 없으나 머리만 돌리면 바로 거기가 언덕이다.[苦海無邊, 回頭是岸.]”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기왕의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질 것을 면려하는 말이다.
【譯文】 勿待興盡, 適可而止.
笙樂歌舞正到濃烈處, 就自己整拂衣衫長往遠引, 羨慕豁達的人懸崖勒馬而猛然回頭 ; 深更滴漏已近殘餘時, 仍然是整夜行走不加休止, 可笑庸俗的人沉淪苦海而渾然不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