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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杜佑], 두우[杜宇], 두우[杜郵], 두우[斗牛]


두우[杜佑]  당(唐)나라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군경(君卿), 시호는 안간(安簡)으로 장안(長安) 사람이다. 덕종(德宗)·순종(順宗)·헌종(憲宗)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영남(嶺南)과 회남(淮南)의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고 정원(貞元) 말에는 검교사도동평장사(檢校司徒同平章事)에 발탁되었다. 왕숙문(王叔文)이 개혁 정치를 펼 때 도지염철사(度支鹽鐵使)에 임명되어 재정(財政)을 주관하였다. 기국공(岐國公)에 봉해졌다. 그의 활동기는 안녹산의 대란(大亂)이 있은 뒤이므로 사회적·정치적 변동기였으나, 국가 재정을 잘 관리하여 사회 안정과 부국안민(富國安民)에 전력하였다. 그러나 만년에 첩을 부인으로 삼으니, 당시 사람들이 흠으로 여겼다고 한다. 사학에 정통하여 역사서 통전(通典)을 지었다. 통전(通典)은 유질(劉秩)이 만든 정전(政典)에다 신례(新禮)를 더 첨가하여 엮은 200권의 방대한 책으로, 식화전(食貨典)·선거전(選擧典)·관직전(官職典)·예전(禮典)·악전(樂典)·병전(兵典)·형전(刑典)·주군전(州郡典)·변방전(邊防典)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전에 손자(孫子)를 인용하고 풀이한 글이 많이 있어 이를 손자십가주(孫子十家註)에 넣고 손자십일가주(孫子十一家註)라 하였다. 그 외 저서로 도리요결(理道要訣) 등이 있다.

두우[杜佑]  자는 군경(君卿)으로 경조(京兆) 만년(萬年) 사람이다. 시호는 안간(安簡)이다. 아버지 두희망(杜希望)이 항주 자사(恒州刺史)를 지냈으므로 문음(門蔭: 음보蔭補)으로 제남(濟南) 참군(參軍)이 된 이후 어사대부(御史大夫)·형부상서(刑部尙書) 등을 거쳐 덕종(德宗) 정원(貞元) 19년(803)에 검교사공(檢校司空)·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순종(順宗)이 즉위한 후에 검교사도(檢校司徒)에 오르고 도지염철사(度支鹽鐵使)가 되어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였다. 이때 왕숙문(王叔文)이 도지염철부사(度支鹽鐵副使)가 되었다. 헌종(憲宗) 원화(元和) 원년(806)에 사도(司徒)가 되고 기국공(岐國公)에 봉해졌다. 정치에 종사하는 여가에 35년에 걸쳐 통전(通典) 200권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중국 최초의 전장제도사(典章制度史) 저작이다. 그 외 저서로 이도요결(理道要訣) 등이 있다.

두우[杜佑]  당(唐)나라 만년(萬年) 사람으로 자(字)는 군경(君卿)이다. 정치가이자 역사가로 덕종(德宗), 순종(順宗), 헌종(憲宗) 등 3제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그의 시대는 안녹산의 대란(大亂)이 있은 뒤여서 사회적·정치적으로 변동기에 해당하였으나, 사회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정치에 밝았으며, 부국안민(富國安民)을 자기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헌종(憲宗) 때에 태보(太保)로 치사(致仕)하였다.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한(漢)나라의 사마 천(司馬遷) 이후 제1의 역사가로 인정받았다. 유질(劉秩)의 정전(政典)이 소략하다 하여 통전(通典) 200편을 지었는바 후대 장고(掌故)의 보전(寶典)으로 여겨진다. 통전(通典)(200권)은 상고(上古)로부터 당의 현종조(玄宗朝)까지 역대의 제도와 전고(典故)를 식화(食貨), 선거(選擧), 직관(職官) 등 아홉 부문으로 분류하여 수록한 역사서로서 오늘날에도 제도사 연구상 불가결한 자료이다. 그 밖의 저서로 통전(通典)의 요점을 쓴 것으로 생각되는 이도요결(理道要訣) 등이 있다.

두우[杜宇]  두우(杜宇)는 두견새의 별칭으로, 원래 옛날 촉왕(蜀王) 망제(望帝)의 이름인데 죽어서 원혼이 두견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새는 울음소리가 흡사 사람의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不如歸去]’라는 말과 같다고 하여 ‘불여귀(不如歸)’라고도 하는데, 망제혼(望帝魂), 귀촉도(歸蜀道), 자규(子規), 촉혼(蜀魂) 등으로도 불린다. 그 울음소리가 자못 처절하여 능히 객수(客愁)를 자아낸다. 전설에 의하면 서촉(西蜀)의 군왕 두우(杜宇)가 재상 별령(鱉靈)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았는데, 그 사이 별령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두우를 쫓아냈다. 두우는 왕위를 빼앗기고는 부끄러움과 한을 품고 죽었는데, 그 후 자규 한 마리가 날아와 궁궐 앞에서 슬피 울자, 촉나라 사람들이 이 새를 망제의 혼으로 여겨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였고, 그 울음소리가 불여귀거(不如歸去)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불여귀(不如歸)라고 불렀다 한다. <太平御覽 卷166> <華陽國志 蜀志>

두우[杜宇]  두우(杜宇)는 두견화, 즉 진달래를 지칭하는 말이다. 두우(杜宇)는 원래 촉왕(蜀王) 망제(望帝)의 호(號)이다. 진(晉)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에 의하면, 촉왕(蜀王) 망제(望帝)가 신하 별령(鱉靈)의 처(妻)와 음행(淫行)을 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을 갔다가, 자살하여 그 넋이 소쩍새가 되었는데, 망향(望鄕)의 그리움 때문에 봄철이면 밤낮으로 피를 토할 때까지 슬피 울었는데, 토한 피가 물든 꽃이 두견화, 즉 진달래라 한다.

두우[杜郵]  두우(杜郵)는 지명(地名)이니, 지금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함양현(咸陽縣) 동쪽(서안시西安市 경내의 북서쪽)이다. 진(秦)나라 백기(白起)가 이 두우에서 억울하게 사사(賜死)되었다고 한다. 두우륙(杜郵戮).

두우[斗牛]  예전에, 손발과 목을 매어 형벌을 가하거나 고문하는 데 쓰던 도구의 하나. 전설에 나오는 규룡(虯龍) 무리의 신수(神獸).

두우[斗牛]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북방에 해당하는 두수(斗宿)와 우수(牛宿)로, 오(吳)·월(越) 지방의 분야(分野)에 해당한다. 참고로, 유신(庾信)의 애강남부(哀江南賦)에 “상수·한수에서 길이 나누어지니 두성·우성을 바라본다.[路已分於湘漢 星猶望於斗牛]”라고 하였다.

두우[斗牛]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의 합칭이다. 일설(一說)에는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옛날 진(晉)나라 때 오(吳) 땅에 용천(龍泉)·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풍성(豊城)의 옥에 묻혀 있었는데, 장화(張華)가 두우성(斗牛星) 사이에 항상 자기(紫氣)가 있음을 듣고 뇌환(雷煥)에게 물으니, 뇌환이 말하기를 “이는 보검의 정기가 위로 하늘에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화가 뇌환을 풍성 수령으로 임명하자, 뇌환이 부임하여 옥의 터를 파고 그곳에서 두 개의 보검을 얻었는데, 바로 용천·태아였고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두우[斗牛]  천자의 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옛날 하늘의 은하수와 통해 있는 뱃길로 뗏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를 만나보고 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博物志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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