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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우복[斗牛服], 두우성[斗牛星], 두우용광[斗牛龍光], 두우정기[斗牛精氣], 두우지륙[杜郵之戮]


두우복[斗牛服]  명나라의 일품(一品) 관원의 관복으로 규룡(虯龍) 무리의 짐승인 두우(斗牛)가 수 놓여 있었다.

두우사[杜郵祠]  진(秦) 나라 장군 백기(白起)가 진왕(秦王)의 출정 명령을 거절하였다가 면직되어 일반 병사로 출정하게 되었는데, 두우(杜郵) 땅에 이르러 사사(賜死)의 명을 받고 자살하였다. 이에 진인(秦人)들이 그의 억울한 죽음을 불쌍히 여겨 죽은 곳에 세운 사당이다. 두우륙(杜郵戮) 참고.

두우성[斗牛星]  28수(宿) 중의 두성(斗星)과 우성(牛星)으로 북방(北方) 7수(宿)에 해당하는 별자리이다. 용천검(龍泉劍)과 태아검(太阿劍)의 검기(劍氣)가 닿았던 별자리이다. 진(晉)나라 때에 장화(張華)가 천문(天文)을 보니 두성과 우성 사이에 이상한 기운이 쏘아 뻗치므로 그 기운이 생긴 곳을 찾아 땅 밑에서 보검(寶劍)을 파낸 일이 있었다 한다. <拾遺記 卷10> 한나라 무제(武帝)가 장건(張騫)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가 은하수에 도착하여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고 한다. <荊楚歲時記>

두우성[斗牛星]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말한다. 일설(一說)에는 남두성(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옛날, 바닷가에 살던 한 사람이 호기심에 떼를 타고 한없이 가다가 20여 일 만에 문득 어느 곳에 당도하여 보니, 성곽(城郭)이 있고 옥사(屋舍)도 있는데, 멀리 바라보니 궁중(宮中)에는 베 짜는 부인이 있고, 한 남자가 소를 끌고 물가에서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 남자가 깜짝 놀라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물으므로, 그 까닭을 말하고 또 이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 남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돌아가 촉군의 엄군평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알 것이다.[君還至蜀郡嚴君平則知之.]”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과연 돌아와서 엄군평을 찾아가 그 사실을 물으니, 엄군평이 말하기를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객성이 견우성을 침범한 일이 있었는데, 연월일을 따져 보니, 바로 이 사람이 은하에 당도한 때였구나.[某年月日有客星犯牽牛宿. 計年月, 正是此人到天河時也.]”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博物志 卷3>

두우용광[斗牛龍光]  두우(斗牛)는 북두(北斗)와 견우(牽牛)를 가리킨다.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의 문장가로 천문(天文), 방기(方技) 등의 글에도 정통했던 장화(張華)가 일찍이 북두와 견우 사이에 자기(紫氣)가 뻗치는 것을 보고, 뇌환(雷煥)을 그 서기(瑞氣)의 출처인 예장(豫章)의 풍성현(豐城縣)으로 보내 풍성현의 옛 옥사(獄舍) 터를 발굴해서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명검(名劍)을 얻었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또,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물건의 정화는 천연의 보배이니 용천검의 광채가 북두와 견우의 자리를 쏘아 비추고[物華天寶 龍光射牛斗之墟]”라고 하였다.

두우정기[斗牛精氣]  옛날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명검이 땅속에 묻혀서 하늘의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발산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傳>

두우지간[斗牛之間]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임술년 가을 7월 16일에 소자가 손과 더불어 적벽 아래 배를 띄우고 노는데,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이 일지 않는지라,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면서 명월시를 외우고 요조장을 노래하였다. 이윽고 달이 동산 위에서 솟아 나와, 북두와 견우의 사이를 배회할 제, 흰 이슬은 강물 위에 가득 내리고, 강물의 빛은 하늘과 맞닿았다. …… 이에 술을 마시고 즐거움이 고조에 달하여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 상앗대로, 맑은 물결을 치며 달빛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나의 회포여, 하늘 저 끝에 있는 미인을 그리도다.’라고 했다.[壬戌之秋七月旣望 蘇子與客 泛舟遊於赤壁之下 淸風徐來 水波不興 擧酒屬客 誦明月之詩 歌窈窕之章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 白露橫江 水光接天 …… 於是飮酒樂甚 扣舷而歌之 歌曰 桂棹兮蘭槳 擊空明兮泝流光 渺渺兮余懷 望美人兮天一方]”라고 한 데서 보인다.

두우지륙[杜郵之戮]  충신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진(秦)나라의 명장 백기(白起)가 소왕(昭王)에게 불만을 품고 병을 핑계 대며 출전을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함양(咸陽)을 떠나 두우정(杜郵亭)에 이르렀을 때 왕이 사신에게 보낸 칼을 받고는 자결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충신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동정하면서 제사를 지내 준 두우지륙(杜郵之戮)의 고사가 사기(史記) 권73 백기왕전열전(白起王翦列傳)에 전한다.

두우지백기[杜郵之白起]  두우(杜郵)는 옛 지명으로 두우정(杜郵亭)이라고 칭하는데,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함양시(咸陽市) 동쪽에 있었다. 백기(白起)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진(秦)나라 장수로 조(趙)나라 장수 조괄(趙括)을 죽이고 항복한 조(趙)나라 병사 40만을 장평(長平)에 묻어 죽였는데, 정승인 응후(應侯) 범수(范睢)와의 반목으로 결국 진 소왕(秦昭王)으로부터 검(劍)을 하사받고 두우(杜郵)에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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