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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거니니 들새가 벗이 되고, 앉으니 흰 구름 와 곁에 머무네 <채근담>


흥치가 철따라 이르러서

향그런 풀밭 맨발로 한가로이 거니니

들새도 다른 생각 잊고 때때로 벗이 되고

경치가 마음과 들어맞아서

낙화 아래 옷깃 풀고 우두커니 앉았으니

흰 구름 말없이 와서 멋대로 곁에 머무네.


興逐時來,  芳草中撒履閒行,  野鳥忘機時作伴.
흥축시래,  방초중살리한행,  야조망기시작반.
景與心會,  落花下披襟兀坐,  白雲無語漫相留.
경여심회,  낙화하피금올좌,  백운무어만상류.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 소창유기小窓幽記 : 운韻)에는 “산보하며 한가롭게 거닐면 들새도 겁내지 않고 때때로 짝이 되어주고, 옷깃 풀어헤치고 꼿꼿이 앉으면 흰 구름 말없이 느릿느릿 곁에 머물러 주네.[散履閑行, 野鳥忘機時作伴;披襟兀坐, 白雲無語漫相留.]”라고 하였다.


  • 흥치[興致]  흥(興)과 운치(韻致: 고상하고 품위를 갖춘 멋).
  • 축시[逐時]  시간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때를 따라. 때맞춰.
  • 방초[芳草]  향초. 향기로운 풀. 향기롭고 꽃다운 풀. 충절을 비유하기도 하고, 세상을 피해 숨어 지내는 현자(賢者)를 가리키기도 한다. 참고로,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어찌하여 옛날에는 향기롭던 풀들이, 지금은 다만 이리 쑥덤불이 되었는가. 그 어찌 다른 까닭 있어서이겠나, 수행을 좋아해서 받은 해가 아니던가.[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 豈其有他故兮, 莫好修之害也.]”라고 하였고,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시 삭풍(朔風)에 “그대가 방초 같은 나를 좋아하거니, 그대가 베푼 은혜를 어찌 잊을쏜가.[子好芳草, 豈忘爾貽.]”라고 하였고, 당(唐)나라 최호(崔灝)의 시 등황학루(登黃鶴樓)에 “비 갠 강엔 선명한 한양의 나무, 방초 금세 무성해진 앵무주로다.[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살리[撒履]  신을 벗고 맨발이 되는 것. 맨발로 거닒을 뜻한다.
  • 철리[撤履]  신을 벗다.
  • 한행[閒行]  한행(閑行). 간행(間行).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 느릿느릿 한가롭게 걸음. 한가롭게 걷는 느린 걸음. 천천히 걷다. 참고로, 장적(張籍)의 시 여가도한유(與賈島閑遊)에 “성 안에 수레와 말 하도 많아서, 천천히 걷는 이 몇인지 금방 알 수 있네.[城中車馬應無數, 能解閑行有幾人.]”라고 하였다.
  • 간행[間行]  사잇길로 감.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주변을 몰래 살피며 다님. 잠행(潛行). 미행(微行). 밀행(密行). 사행(邪行: 옳지 못한 행위).
  • 망기[忘機]  망기(忘機)는 기심(機心)을 잊는다는 것이다. 기심(機心)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묘하게 꾀하는 마음, 교사(巧詐)한 마음, 꾸미고 속이는 마음, 득실과 이해를 계교하는 마음, 이해와 득실을 따지는 마음, 기회를 보아 상대방을 해치려는 마음,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꾀하는 마음, 속임, 거짓됨, 음모의 마음을 이른다. 즉, 망기(忘機)는 계교하는 마음이나 교활한 마음을 잊는 것, 아무 물욕이 없는 상태, 기교(機巧)의 마음을 지우는 것,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꾀하는 마음을 잊는 것. 자기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 경계심(警戒心)을 푸는 것, 뭔가 꾀를 내어 해 보려는 사심(私心)을 모두 잊어버림, 세속의 일이나 욕심을 잊고 세상과 다투지 아니하여 담백하고 수수하게 사는 것, 마음이 순수하여 저절로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 세상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다 털어버리고 물외(物外)의 정취(情趣)를 추구(追求)하는 마음의 상태(狀態)를 말한다. 기심(機心)은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한 노인이 우물에 물동이를 안고 들어가 물을 담아서 밭에 물주는 것을 보고, 기계를 설치하여 두레로 물을 퍼내면 고생을 덜하고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충고하니, 노인이 ‘기계를 갖게 되면 반드시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고, 기계로 인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심(機心)이 생기고, 기심이 가슴 속에 있으면 순수하고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고 순수하고 결백함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신묘한 본성이 안정을 잃는다. 본성이 안정을 잃으면 도가 깃들지 않는다.[有機械者必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라고 대답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또,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갈매기를 몹시 좋아하여 매일 아침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와 놀았는데, 날아와서 노는 갈매기가 백 마리도 넘었다. 그의 아버지가 ‘내가 들으니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함께 논다고 하던데, 너는 그 갈매기를 잡아와라. 나 역시 갈매기를 좋아한다.’ 하였다. 다음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기만 하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海上之人有好漚鳥者, 每旦之海上, 從漚鳥游, 漚鳥之至者百住而不止. 其父曰 : 吾聞漚鳥皆從汝游, 汝取來! 吾玩之. 明日之海上, 漚鳥舞而不下也.]”라고 하는 ‘구로망기(鷗鷺忘機)’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이는 전에는 갈매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기심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갈매기들도 무심하게 가까이 한 것이요, 뒤에는 갈매기를 잡겠다는 기심이 있기 때문에 갈매기가 이를 알고 피했다는 것이다. 기심이 없는 경지에 대해 장자(莊子) 산목(山木)에서 “짐승들 속에 들어가면 짐승들 무리가 놀라 어지러워지지 않고 새들 속에 들어가면 새들 행렬이 놀라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새와 짐승도 싫어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入獸不亂群 入鳥不亂行 鳥獸不惡 而況人乎]”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에 “나 또한 마음을 씻은 자이니, 기심을 잊고 너를 따라 노닐련다.[吾亦洗心者, 忘機從爾遊.]”라고 하였고, 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에 “나는 취하고 그대는 즐거워, 둘이 함께 술에 취해 세상 걱정 잊네.[我醉君復樂, 陶然共忘機.]”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견흥(遣興) 3수 중 셋째 수에 “다만 녹피옹이 기심을 잊고 방초를 보는 게 의아해라.[但訝鹿皮翁 忘機對芳草]”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만 생각하고 고기는 잊고서,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라.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며 사물의 변화를 완상한다.[意釣忘魚 樂此竿綫 優哉悠哉 玩物之變]”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심회[心會]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것. 마음으로 파악함. 마음으로 이해하다. 마음을 모으다. 마음이 닿다. 마음이 통하다.
  • 피금[披襟]  옷깃을 풀어 헤치다. 흉금(胸襟)을 털어놓다. 진심을 보이다. 정성껏 대하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제자인 송옥(宋玉)의 난대부(蘭臺賦) 서두에 “초 양왕(楚襄王)이 난대(蘭臺)의 궁전에서 노닐 적에 송옥과 경차(景差)가 모시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자 왕이 가슴을 열어 제치고[披襟] 말하기를 ‘상쾌하도다, 바람이여. 과인이나 서인(庶人)이나 똑같이 맞는구나.’라고 하였다. 송옥이 말하기를 ‘이것은 오직 대왕만이 쐴 수 있는 숫바람(雄風)이니 일반 백성들이 어찌 함께 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楚襄王從宋玉·景差於蘭臺之宮, 有風颯然至者, 王披襟當之曰: ‘快哉此風! 寡人所與庶人共者耶?’, 宋玉曰: ‘此獨大王之雄風耳, 庶人安得共之!’]”라고 한 데서 보이고, 당 태종(唐太宗)의 시 영우(詠雨)에 “온화한 기운 푸른 들판에 불고, 매우는 꽃밭에 뿌리네. 새 물결 옛 여울에 더해지고 묵은 안개는 아침 이내 밑에 깔렸네. 비 맞은 기러기는 행렬에 차례가 없고 젖은 꽃잎은 색깔이 더욱 선명하다. 이 비를 보고 풍년이 들 것을 기뻐하여, 옷깃을 풀어헤치고 오현금을 탄다네.[和氣吹綠野, 梅雨灑芳田. 新流添舊澗, 宿霧足朝煙. 雁溼行無次, 花沾色更鮮. 對此欣登歲, 披襟弄五弦.]”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올좌[兀坐]  우뚝 앉는 것.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음. 꼼짝도 하지 않고 한곳에 똑바로 앉아 있음. 어깨를 추켜세우고 앉음. 홀로 태연히 앉아 있다. 똑바로 앉다. 꼿꼿이 앉다. 바르게 앉다. 어깨를 한 번 들먹이며 앉다. 꼼짝도 하지 않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똑바로 앉아 있음. 오뚝이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불가(佛家)의 참선(參禪)과 같다. 참고로,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시 기최이십육입지(寄崔二十六立之)에 “오만하게 시험장에 앉으니 깊은 숲의 한 마리 큰 곰 같았네.[傲兀坐試席, 深叢見孤羆.]”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상류[相留]  서로 붙잡다. 곁에 머무르다. 서로 만류하다. 대숙륜(戴叔倫)의 시 객사여고인우집(客舍 與故人偶集)에 “가지에 바람 불어 밤 까치를 놀래키고, 이슬 맺힌 풀잎에서 가을 벌레가 흐느낀다. 나그네 된 우리 오래도록 취해야 하리, 서로 머물고 싶은데 새벽 종소리가 두렵구나.[風枝驚暗鵲, 露草泣寒蟲. 羈旅長堪醉, 相留畏曉鐘.]”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人我合一之時,  則雲留而鳥伴  :  人我合一,  雲留鳥伴.
興致隨時機到來,  花草叢中放開步履悠閑前行,  野鳥忘記危機時常來做伴  ;  景致與心靈融會,  落花簷下敝開衣襟獨自端坐,  白雲沒有話語隨意相挽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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