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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주[杜酒], 두주[頭籌], 두주백편[斗酒百篇], 두주번쾌[斗酒樊噲], 두주불사[斗酒不辭]


두주[杜周]  두주(杜周)는 한(漢)나라 때의 혹리(酷吏)로 장탕(張湯)과 더불어 법을 각박하게 적용하기로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두주는 장탕의 뒤를 이어 정위(廷尉)가 되어 황제의 뜻에 따라 혹독한 법으로 사람들을 다스렸으므로 황제의 총애를 얻어 부귀영화를 누렸다. <史記 卷122 酷吏列傳>

두주[杜周]  서한(西漢) 남양군(南陽郡) 두연현(杜衍縣) 사람으로, 자는 장유(長孺)이다. 서한 기린각(麒麟閣) 11공신(功臣) 중 하나인 두연년(杜延年)의 아버지이다. 남양태수(南陽太守) 의종(義縱)의 추천으로 장탕(張湯)의 심복이 되어 정위사(廷尉史)가 되었다. 장탕을 본받아서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황제의 의중을 살펴 그에 맞게 법을 집행하였다. 수년 동안 정위(廷尉)로 있다가 잠시 파직되었으나 다시 집금오(執金吾)가 되었는데, 도적을 잡으면서 상홍양(桑弘羊)과 위황후(衛皇后)의 조카들을 매우 혹독하게 다룬 일로 무제(武帝)에게 사사로움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천한(天漢) 3년(기원전 98)에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2년 뒤에 병으로 죽었는데, 정위(廷尉)와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지낸 10여 년간 모은 재물이 수만금이었다고 한다. <前漢書 卷60 杜周傳>

두주[杜酒]  두강주(杜康酒). 술 이름인데 옛날 술을 잘 만들었던 두강(杜康)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두강은 중국의 황제(黃帝) 때의 재인(宰人)으로 최초로 술을 빚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인데, 후대에는 술의 이칭으로 쓰였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단가행(短歌行)에 “슬퍼 탄식하여도 시름 더욱 깊어지니 근심스런 생각 잊기 어려워라. 어떻게 시름 풀어볼까 오직 두강뿐이로다.[慨當以慷 憂思難忘 何以解憂 唯有杜康]”라는 구절이 있다.

두주[斗酒]  말술. 한 말[斗] 정도(程度)의 분량이 되는 술. 참고로, 왕유(王維)의 시 소년행(少年行)에 “신풍의 맛 좋은 술은 한 말에 만 전(錢)인데, 함양의 유협들은 대부분이 소년이로세.[新豊美酒斗十千, 咸陽游俠多少年.]”이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 장진주[將進酒]에 “진왕(陳王)이 옛날 평락관(平樂觀)에서 잔치할 때에는 한 말 술에 만전(萬錢) 주고 실컷 즐기고 농담하였다네.[陳王昔日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시 종필삼수(縱筆三首) 제3수[其三]에 “곡식 실은 배가 북쪽에서 못 와 쌀이 진주처럼 귀하고, 보름 동안 술과 밥을 구경 못해 생기가 없다오. 내일은 동쪽 이웃집이 조왕신께 제사 지내는 날이라, 지금 닭 잡고 말술도 있어 내가 고기를 먹게 되리.[北船不到米如珠, 醉飽蕭條半月無. 明日東家知祀竈, 隻雞斗酒定膰吾.]”라고 한데서 보인다.

두주[頭籌]  제일 첫머리의 산가지. 어떤 기예(技藝)를 겨루어서 먼저 승리를 거둔 것을 이른다.

두주[杜註]  두예(杜預)의 주(註). 진(晉)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두예(杜預)가 단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주석을 말한다. 두예는 진(晋)의 두릉(杜陵) 사람으로, 자(字)는 원개(元凱)이며, 대학자인 두서(杜恕)의 아들이다. 벼슬은 진주 자사(秦州刺史),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춘추좌씨경전집해(春秋左氏經傳集解)와 춘추석례(春秋釋例)가 있으며, 좌씨전(左氏傳)을 춘추(春秋) 연구의 정통적인 주석서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두주[竇犨]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이다.

두주백편[斗酒百篇]  이태백(李太白)처럼 한자리에서 술 한 말을 해치우고 백 편의 시를 지을 만큼 문재(文才)가 뛰어나고 기개가 호방한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 “한 말 술에 시 백 편 짓는 우리 이태백, 장안 저자 주막에서 잠을 자누나.[李白一斗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라고 하였다.

두주번쾌[斗酒樊噲]  번쾌(樊噲)는 한(漢)나라 유방(劉邦)의 공신이다.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항우(項羽)의 참모인 범증(范增)이 항장(項莊)을 내세워 유방을 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장량(張良)이 이 사실을 번쾌에게 알렸다. 번쾌가 눈을 부릅뜨고 들어가니, 항우가 장사라고 하면서 말술을 주게 하였고[項王曰壯士, 賜之卮酒, 則與斗酒.], 번쾌가 단숨에 들이키자, 항우가 생돼지 다리 하나를 주게 하였다. 번쾌가 칼을 뽑아 잘라서 그대로 먹으니, 항우가 장사라고 말하면서 더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이때 번쾌는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잔술을 어찌 사양하겠느냐[死且不避, 卮酒安足辭.]’고 말하였다. <漢書 卷41 樊噲傳>

두주불사[斗酒不辭]  말술도 사양(辭讓)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주량(酒量)이 매우 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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