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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새싹을 간직하고, 생기는 죽음에 머금어 있다 [落葉蘊牙 生機含殺] <채근담>


초목의 잎이 시들어 지면

뿌리에서 문득 싹이 돋아나고

시절은 비록 몹시 추운 겨울이나

마침내 동지가 되면 봄기운이 감돈다.

죽음의 기운 가운데에도

낳고 기르는 뜻이 항상 주가 되나니

여기서 바로 천지 대자연의 마음을 볼 수 있다.


草木纔零落,  便露萌穎於根底.
초목재영락,  변로맹영어근저.
時序雖凝寒,  終回陽氣於飛灰.
시서수응한,  종회양기어비회.
肅殺之中,  生生之意常爲之主,  卽是可以見天地之心.
숙살지중,  생생지의상위지주,  즉시가이견천지지심.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영락[零落]  권세나 살림이 줄어서 보잘것없이 됨. 세력이나 살림이 보잘것없는 처지가 됨. 초목의 잎이나 꽃이 시들어 떨어짐. 넋을 잃음 시들다. 퇴락하다. 죽다. 떠돌다. 몰락하다. 사물이 쇠퇴하다. 드문드문하다. 쇠락하다. 쌀쌀하다. 쓸쓸하다. 한산하다. 적막하다. 곤경에 처하다. 냉락(冷落). 낙백(落魄). 참고로, 진화(陳澕)의 시 야보(野步)에 “매화 지고 버들가지 흔들흔들 하는데, 한가로이 맑은 바람 따라 천천히 거니네.[小梅零落柳僛垂, 閒踏淸風步步遲.]”라고 한 데서 보이고, 두보(杜甫)의 시 유탄(有歎)에 “건장한 마음이 영락한지 오래니, 센 머리로 인간에 부쳤노라.[壯心久零落, 白首寄人間.]”라고 한 데서 보이고, 백거이(白居易)의 시 비파행(琵琶行)에 “집안이 몰락하니 문앞을 찾아오는 귀한 손님 드물고, 나이 들어 기생 노릇도 할 수 없어서 상인의 아내가 되었소.[門前冷落鞍馬稀, 老大嫁作商人婦.]”라고 하였고, 관자(管子) 경중기(輕重己)에 “마땅히 추수를 진행해야 할 때 수확하지 못한 지방은 비바람이 닥치면 오곡의 수확이 줄어들고 병사들도 죽거나 숫자가 줄게 되는데 수확을 하지 못한 피해라고 할 것이다.[宜穫而不穫, 風雨將作, 五穀以削, 士兵零落. 不穫之害也.]”라고 하였고,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공후인(箜葔引)에 “생전에는 화려한 집에 살더니, 죽어서 산언덕으로 돌아갔네.[生存華屋處, 零落歸山丘.]”라고 한 데에 보이고, 왕창령(王昌齡)의 시 대부풍주인답(代扶風主人答)에 “고향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무덤도 흔적 없이 무너져버렸네.[鄕親悉零落, 塚墓亦摧殘.]”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근저[根底]  사물(事物)의 뿌리나 밑바탕이 되는 기초(基礎). 밑뿌리. 기초. 근본. 바탕.
  • 시서[時序]  돌아가는 시절의 차례. 돌아가는 철의 차례. 계절의 순서. 철의 바뀜. 두보(杜甫)의 시 춘일강촌(春日江村)에 “하늘땅은 만 리를 바라보는 곳이요, 사시 변천은 일생 백 년의 마음이로다.[乾坤萬里眼 時序百年心]”라고 하였다.
  • 응한[凝寒]  음력 섣달의 심한 추위를 이르는 말. 응엄(凝嚴). 몹시 춥다. 매우 춥다. 한사(寒邪)가 응체(凝滯)된 것으로 기혈(氣血)순환이 잘 되지 않게 되고, 몸이 추워지는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는 병증. 참고로, 조익(趙翼)의 시 희작(戱作)에 “추위가 엉겼으며 단단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조각조각 여섯꼴을 갖췄는가.[凝寒所成固其理, 何以片片六出具.]”라고 하였다.
  • 비회[飛灰]  옛날에 갈대 재[葭灰]를 율관(律管) 중에 넣어서 재가 나는 것을 보고 절기(節氣)를 살폈다. 후기법(候氣法)에 의하면, 밀실(密室) 안에 명주베[緹]를 깔고 십이 율관(十二律管)을 각 방위대로 안치한 다음, 각 율관 속에 갈대재[葭灰]를 채워 놓으면, 각 기(氣)가 이를 때마다 해당 율관의 재가 날리게 되는데, 특히 동지(冬至)의 기가 이르면 황종율관(黃鍾律管)의 재가 날므로 이른 말이다. 참고로, 수서(隋書) 율력지 상(律歷志上) 후기(候氣)에 “그가 일찍이 사람과 대화하다가 하늘을 가리키며 ‘맹춘(孟春)의 기(氣)가 이르렀다.’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가서 율관(律管)을 징험해 보니 율관 속의 재가 날아서 이미 기에 응하고 있었다. 그는 달마다 기를 관측하였는데 모두 그의 말과 어긋남이 없었다.[嘗與人對語 即指天曰孟春之氣至矣 人往驗管 而飛灰已應 毎月所候 言皆無爽]”라는 기록이 전하고, 두보(杜甫)의 시 소지(小至)에 “자수에는 다섯 색깔 선이 조금 더해지고, 갈대 불자 여섯 관에 재가 날려 붙으리라.[刺繡五紋添弱線 吹葭六琯動飛灰]”라고 하였다.
  • 숙살[肅殺]  가을의 쌀쌀한 기운이 초목(草木)을 말라 죽게 함. 가을이나 겨울의 엄혹한 추위로 풀이나 나무가 조락하는 것. 쌀쌀한 가을 기운. 엄혹하고 소슬한 계절. 깊은 가을. 냉혹한 분위기. 늦가을 또는 겨울의 추운 날씨와 풍경. 몹시 잔해(殘害)함. 소슬하다. 춥고 스산하다. 숙살(肅殺)은 냉혹하게 죽인다는 뜻인데, 가을이 오면 만물이 시들어 죽어가므로 가을 기운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구양수(歐陽脩)는 추성부(秋聲賦)에서 “가을은 형관(刑官)이니, 사시에 음(陰)이 되고, 또 병상(兵象)이다. 오행으로 금(金)에 속하니, 이것을 천지의 의기(義氣)라고 일컫는바, 항상 숙살을 마음으로 삼는다.[夫秋 刑官也 於時爲陰 又兵象也 於行用金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爲心]”라고 하였다.
  • 숙살지기[肅殺之氣]  숙살(肅殺)한 기운. 가을의 쌀쌀한 매서운 기운(氣運). 초목(草木)을 다 말려 죽이는 가을의 엄혹(嚴酷)하고 차가운 기운. 숙살(肅殺)은 죽인다는 뜻인데, 가을이 오면 만물이 시들어 죽어가므로 가을 기운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보통 형조, 곧 추조(秋曹)가 형벌을 집행하는 위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 생생[生生]  계속하여 낳고 낳음. 만물을 생육하는 일. 만물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모양. 만물이 생기어 퍼지게 하는 것. 끊이지 않고 살아 나감. 끊임없이 생성하는 만물. 힘차게 활동하는 것. 참고로,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낳고 낳음을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라고 하였고,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이기(二氣: 음양)가 교감(交感)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생생함에 변화가 무궁하다.[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라고 하였고, 서경(書經) 반경(盤庚)에 “너희 만민이 생업에 종사하여 즐겁게 살아가지 못하니[汝萬民, 乃不生生.]”라고 하였는데, 채전(蔡傳)에서는 낙생흥사(樂生興事)로 보아 “삶을 즐기며 열심히 일을 하면 생활이 윤택해질 것이니, 이것을 생생(生生)이라 이른다.[樂生興事 則其生也厚 是謂生生]”라고 풀이하였다.
  • 생생지의[生生之意]  살려는 뜻. 생생(生生)하는 의사(意思). 만물(萬物)을 낳고 자라게 하는 의지. 근사록(近思錄) 권14에 “주무숙(周茂叔: 주돈이周敦頤)이 창 앞에 있는 풀을 제거하지 않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말하기를 ‘나 자신의 의사와 똑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周茂叔牕前草不除去, 問之, 云與自家意思一般.]”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천지의 생의가 유행하고 발육하니, 오직 인자는 낳고 낳는 뜻이 가슴속에 충만하므로, 이것을 볼 때 마음에 맞음이 있는 것이다.[天地生意, 流行發育, 惟仁者, 生生之意, 充滿胸中, 故觀之有會於其心者.]”라고 하였다.
  • 즉시[卽是]  이와 같다. 곧 ~이다. 두 현상이 완전히 하나여서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
  • 천지지심[天地之心]  천지의 마음. 하늘과 땅의 공평(公平)한 마음.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 참고로, 주역(周易) 복괘(復卦) 단사(彖辭)에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復其見天地之心乎]”고 하였는데, 정전(程傳)에 “일양(一陽)이 아래에서 회복함은 바로 천지(天地)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 선유(先儒)들은 모두 이르기를 ‘정(靜)에서 천지(天地)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동(動)의 단서가 바로 천지(天地)의 마음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一陽復於下, 乃天地生物之心也. 先儒皆以靜爲見天地之心, 蓋不知動之端, 乃天地之心也.]”라고 하였고, 주자대전(朱子大全) 권32 답장흠부(答張欽夫) 18에 “마음이 보존되어 있을 때는 사려(思慮)가 아직 싹트지 않았어도 지각(知覺)은 어둡지 않다. 이것은 정(靜) 가운데의 동(動)으로, 복괘(復卦)를 통해서 천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方其存也, 思慮未萌而知覺不昧, 是則靜中之動, 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라고 하였고,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장에 “중과 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편안히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註)에 “천지와 만물이 본래 나와 일체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나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가 또한 순하다.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음에 이르는 것이다.[蓋天地萬物, 本吾一體, 吾之心正, 則天地之心亦正矣, 吾之氣順, 則天地之氣亦順矣.]”라고 하였다.

【譯文】 落葉蘊育萌芽,  生機藏於肅殺  :  落葉蘊牙,  生機含殺.
花草樹木剛剛凋零謝落,  卽便在根底部露出萌芽穎片  ;  時節次序雖是嚴寒季節,  終將在冬至後回到溫暖春天.  肅然消殺之中,  常常蘊藏著綿延不絕的蓬勃生機,  如此可以見得天地的好生之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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