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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초당([杜草堂], 두촉병풍[頭觸屛風], 두추랑[杜秋娘], 두축[頭畜], 두충[蠹蟲]


두초[斗筲]  두소. 두(斗)는 1말, 소(筲)는 1말 2되가 들어가는 죽기(竹器)로, 모두 적은 수량을 담는 그릇이다. 짧은 재주와 얕은 도량(度量)을 지닌 소인을 “두소의 사람”이라 한다.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 “두소 정도의 사람들을 굳이 따질 것이 뭐가 있겠는가.[斗筲之人何足算也]”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참고로, 부(釜)는 6말 4되, 곡(斛)은 10말이 들어가는 그릇으로 두소보다 조금 큰 그릇이며, 종(鍾)은 여덟 곡(斛)이 들어가는 그릇이며, 정(鼎)은 큰 솥이니, 도량이 상당히 넓은 것을 말한다.

두초당([杜草堂]  당(唐)나라 두보(杜甫)가 성도(成都)의 완화계(浣花溪) 가에 지은 초당을 가리킨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조추고열퇴안상잉(早秋苦熱堆案相仍)에 “매번 밤마다 전갈로도 충분히 시름겨운데, 가을이 온 뒤에도 매미까지 기승이네.[每愁夜中自足蝎 况乃秋後轉多蠅]”라고 하였고, 도보귀행(徒步歸行)에 “푸른 도포의 조사로 가장 곤궁한 사람, 백발의 습유는 도보로 돌아간다네.[靑袍朝士最困者 白頭拾遺徒步歸]”라고 하였다.

두초소인[斗筲小人]  두소소인. 두소지인. 변변치 못한 사람. 국량이 작은 사람.

두촉병풍[頭觸屛風]  머리로 병풍을 받는다는 것은 곧 졸음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병풍에 머리를 부딪치게 됨을 이른 말이다. 한서(漢書) 권66 진만년전(陳萬年傳)에 “진만년이 병들었을 때 그의 아들 함을 와상 아래로 불러 놓고 경계의 말을 이를 적에 한밤중에 이르자 함이 졸다가 머리로 병풍을 받았다.[萬年嘗病, 召咸敎戒於牀下. 語至夜半, 咸睡頭觸屛風.]”라고 하였다.

두추[杜秋]  당대(唐代) 금릉(金陵) 사람으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두중양(杜仲陽)으로 적고 있지만 후대 사람들은 그녀를 두추랑(杜秋娘)이라고 불렀다. 열다섯 살 때 종실 이기(李錡)의 첩이 되었다. 원화(元和) 2년(807) 이기가 반정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궁으로 들어간 뒤 헌종(憲宗)의 총애를 받았다. 원화 15년(820) 목종(穆宗)이 즉위하면서 황자 이주(李湊)의 부모(傅姆)로 임명되었으나, 나중에 이주가 장왕(漳王)으로 강등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훗날 시인 두목(杜牧)이 금릉을 지나던 중에 늙은 그녀가 어렵게 지내는 것을 보고 두추랑시(杜秋娘詩)를 지으면서 서문에 그녀의 이력에 대해 적었다고 전한다.

두추[頭酋]  추장(酋長).

두추랑[杜秋娘]  당(唐)나라 금릉(金陵: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출신의 창녀. 열다섯 살 때 진해(鎭海) 절도사 이기(李錡)의 첩(妾)이 되었는데 노래를 잘 했다고 한다. 후에 궁에 들어가 헌종(憲宗)의 총애를 받았다. 목종(穆宗)이 즉위해서는 황자(皇子) 이주(李湊)의 부모(傅姆)가 되었으나, 이주(李湊)가 장왕(漳王)의 지위에서 폐위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두목의 두추랑시병서(杜秋娘詩幷序)에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두축[頭畜]  가축(家畜).

두충[蠹蟲]  좀.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 두충(蠹蟲)은 두서충(蠹書蟲)으로, 책 속의 좀벌레를 말한다. 책만 읽는 사람을 책을 파먹는 좀[蠹蟲]에 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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