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패[斁敗] 해이하여 무너짐.
두평[斗萍] 두평(斗萍)은 크기가 말[斗]만한 평실(萍實)로, 큰 공훈이나 맛있는 음식을 뜻한다. 평실(萍實)은 평봉초(萍蓬草)에 달린 감미로운 과실이다. 초(楚) 나라 소왕(昭王)이 강을 건널 적에 크기가 말만하고 붉기가 해와 같은[大如斗. 赤如日.] 물체가 배에 다가오자, 소공이 괴이하게 여겨 건져 올리게 한 다음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공자에게 사신을 보내어 물어보니, 공자가 “이것의 이름은 평실(萍實)이라고 하는데, 쪼개면 먹을 수가 있다. 다만 패왕(霸王)이 될 만한 사람이라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는바, 상서로운 징조이다.[此名萍實, 可剖而食之. 惟霸者能獲之, 此吉祥也.]”라고 하였다는 데서 보인다. <孔子家語 致思> <說苑>
두폐[豆幣] 두폐(豆幣)는 조두규폐(俎豆珪幣)의 준말로, 제사 때 쓰는 옥백(玉帛)과 음식 담는 예기(禮器)를 이른다.
두포[斗浦] 두포(豆浦)는 곧 두모포(豆毛浦)를 가리킨다. 두모포는 지금의 한강 동호대교 북단인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정초등학교 부근에 있던 유명한 나루였다. 우리말로는 ‘두뭇개’라고 했는데, 이는 한강과 중랑천의 두 물이 합류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지명이라 한다. 이와 같이 두모포(豆毛浦)가 원래 ‘두뭇개’를 음차(音借)한 것이었으므로, 그 준말인 ‘두포(豆浦)’를 한자음이 같은 ‘두포(斗浦)’로 적기도 했던 듯하다.
두표[斗杓]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루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의 세 별. 즉, 옥형(玉衡)·개양(開陽)·요광(搖光) 등 국자 모양의 손잡이 쪽에 있는 세 별을 가리킨다. 두병(斗柄)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거나 사람들을 대중을 이끄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지구의 연주운동(年周運動)에 따라 천상에 보이는 북두칠성의 손잡이 모양이 초저녁에 가리키는 방향도 1년에 한 바퀴를 도는데, 1년 12개월에 걸쳐 십이진(十二辰) 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정월에는 인(寅)을 가리키고, 2월에는 묘(卯)를 가리키고, 3월에는 진(辰)을 가리키는 등이다. 봄에는 북두칠성 자루가 하늘 동쪽을 가리킨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곡왕팽주(哭王彭州)에 “무협은 늘 구름과 비가 자욱하고 진성은 북두성에 가깝도다.[巫峽長雲雨 秦城近斗杓]”라고 하였고, 원회(元淮)의 시 입춘일상홍매지작(立春日賞紅梅之作)에 “지난밤 봄바람이 북두성 끝을 돌았는지, 길가에 버드나무 눈이 녹기 시작했네.[昨夜東風轉斗杓, 陌頭楊柳雪纔消.]”라고 하였다.
두풍[頭風] 두통(頭痛). 찬바람이 침범하여 목이 켕기고 가렵거나 또는 감각이 둔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귀에서 소리가 나는 병증이다. 참고로, 원진(元稹)의 시 수이육취후견기구호(酬李六醉後見寄口號)에 “자네가 보내준 구호란 시 읊고 난 뒤에, 아픈 머리 순식간에 씻은 듯 나아졌네.[頓愈頭風疾, 因吟口號詩.]”라고 하였다.
두풍[頭風] 머리가 늘 아프고, 부스럼이나 헌데가 자꾸 생기는 병. 일종의 두통으로 머리 아픈 것이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고 수시로 발작하거나 멎는 증상. 혹은 머리에 풍사(風邪)를 받아 생긴 병증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두풍격[頭風檄] 두풍격(頭風檄)은 삼국 시대 진림(陳琳)이 원소(袁紹)의 휘하에 있으면서 조조(曺操)를 성토하는 격문을 지어 보냈는데 조조는 그 격문을 읽고 모골(毛骨)이 송연하여 저도 모르게 숙질(宿疾)인 두풍(頭風)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조조는 말하기를 “진림의 문장은 뛰어나나 원소의 무략이 부족하니 어떠한가.[陳琳文字雖嘉 其於袁紹武略之不足 如何]”라 하였다.
두풍유[頭風愈] 시문이 뛰어남을 이른 말이다. 삼국 시대에 원소(袁紹)가 진림(陳琳)을 시켜 조조(曹操)를 성토하는 격문(檄文)을 초하게 하여 조조에게 보냈더니, 조조는 때마침 두풍(頭風)을 앓고 있다가 그 격문을 보고는 모골이 송연하여 부지중에 두풍이 나았다 한다.
두풍자유수자관[頭風自愈手自盥] 두풍이 절로 낫고 손을 절로 씻게 됨. 두풍(頭風)이 절로 나았다는 것은 곧 삼국 시대 위(魏)의 조조(曹操)가 일찍이 두풍으로 앓아누웠다가, 진림(陳琳)이 초(草)한 격문(檄文)을 보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말하기를 “이 글이 내 병을 치유해 주었다.[此愈我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國志 卷21 魏書 王粲傳注> 손을 절로 씻게 된다는 것은 곧 고인(古人)들이 귀중한 고경(古經)을 읽을 때는 항상 경중(敬重)하는 뜻에서 반드시 손을 씻고 책을 대했던 데서 온 말이다.
두풍전[頭風痊] 삼국 시대 위(魏)의 조조(曹操)가 일찍이 두풍을 앓아누워 있다가, 진림(陳琳)이 초(草)한 격문을 보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말하기를 “이 글이 내 병을 치유해 주었다.[此愈我病]”라 하고,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전하여 앓던 두풍이 나았다는 것은 곧 남의 뛰어난 시문 등을 예찬하는 말로 쓰인다. 두보(杜甫)의 시 풍질주중복침서회운운(風疾舟中伏枕書懷云云)에 “슬퍼함은 유신과 같고 저술은 진림과 달라라.[哀傷同庾信 述作異陳琳]”는 구가 있는데, 집천가주두공부시집(集千家注杜工部詩集)에 겸손하지만 의미는 또한 진림고사와 통한다고 했다.
두피통[肚皮痛] 위(胃)에 맞닿은 뱃가죽에 생기는 통증이다.
두필[頭匹] 소와 말. 노비나 마소를 세는 단위. 노비 등을 셀 때에는 두(頭)자를 쓰고, 마소 따위를 셀 때에는 필(匹)자를 쓰므로, 노비와 마소 따위를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두핍[豆逼] 설문계전(說文繫傳) 10에 皂(벽)자 아래에 인용하기를 ‘촉(蜀) 지방의 아이는 콩의 낟알을 두조(豆皂)이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이 절의 아래 글을 요약해서 말한 것이다. 광운(廣韻) 이십일맥운(二十一麥韻)에 “䑀(벽)은 콩 가운데 작고 딱딱한 것이니 신자림(新字林)에 나오는 자이며 독음이 ‘벽(博厄切)’이다.”라고 하는바, 독음과 뜻이 이 ‘皂’자와 비슷하다. 지금도 사천(四川)에서는 여전히 豆䑀(두벽)이라는 말을 쓴다. 위준(魏濬)의 방언거(方言據) 하(下)에 “소두(小豆)는 두핍(豆逼)이라고 불린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도 이를 말하고 있는데, 지금의 항간에서는 ‘두비(豆婢)라고도 하며, 더 나아가 ‘두노(豆奴)’라고도 말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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